달빛이 지각(遲刻)을 핑계로 문창을 넘을 때,
아내는 희디흰 광목의 침묵 위로
붉은 얼룩 한 점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여자로 새겨지기 시작한 생(生)의 첫 고백이자,
지상에서 가장 고요하게 터지던 비명.
이제 그 희던 광목도,
붉은 꽃을 놓던 손길도 바람처럼 사라져 곁에 없으나
세월이라는 거친 개울물에 씻길수록
그날의 얼룩은 오히려 내 살결 깊숙이 스며들었다
비벼 빨수록 뼈에까지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각인으로 남은 사람아
당신이 남기고 간 붉은 문장(文章)이
내 오래된 마디마다 뿌리내려
오늘도 가시 돋친 장미로 아프게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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