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두께

by선비천사

정수리를 찌르던 정오의 폭포 속에서

담벼락 밑 마른풀들이

간신히 몸을 들이밀던 손바닥만 한 그늘,

나무는 제 몸을 넓혀

가장 서늘한 지붕을 짓고 있었다


시린 바람이 문틈을 서성이던 저녁

가스 불 위에 얹은 양은냄비가

덜컹거리며 뿜어내던 허연 김 한 자락,

무 한 토막 띄운 국물이

언 손가락보다 먼저 목구멍을 데워 올 때

비로소 허기진 무릎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가장 눈부신 조명이 꺼진 무대 뒤편

박수 소리가 썰물처럼 물러간 분장실에는

누군가 잊고 간 빛바랜 손수건 한 장이

식어가는 체온의 가장자리를 말없이 받아내고 있다


모든 것을 주었던 손이 텅 비고서야

비로소 창가에 앉아 돌아본다

나를 날게 하던 것은

하늘 위의 화려한 날개가 아니라

진흙 바닥을 묵묵히 버티고 있던

닳아 터진 신발 밑창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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