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바가지의 미학(美學)

by선비천사

강원도 철원의 겨울은 사람까지 쇠붙이처럼 얼려 놓곤 했다. 갓 자대에 배치받은 이등병의 시간도 그 추위 속에서 단단히 굳어 있었다. 행정실 선임이 중대장의 식사를 타 오라고 시켰다. 취사장 한구석, 정렬된 플라스틱 식판들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 들었다. 고슬고슬한 밥과 뜨거운 국을 담아 복귀했으나,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호된 질바카라이었다.


“너 미쳤냐? 정신 안 차려?”


선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식판의 모퉁이였다. 손톱만 하게 깨지고 빛이 바랜 흔적. 밥을 담는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그것만으로도 꾸중을 듣기에는 충분했다. 선임은 한참을 혼낸 뒤 한마디를 툭 던졌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A급’으로 가져와. 알겠냐?”


그날 나는 군대가 말하는 ‘A급’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배웠다. 그것은 단순히 상태가 좋다는 의미를 넘어, 줄을 바짝 세운 군복과 거울처럼 빛나는 군화처럼 조직이 요구하는 흠 없는 완벽함의 기준이었다. 그 질서 속에서 조금 깨진 식판을 들고 서 있던 나는 규격에 맞지 않는 불량품처럼 작아지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끝내 그 세계에 머물지 못했다. 오히려 내 시선은 자꾸만 규격에서 벗어난 것들, 상처 입고 모가 난 것들에게로 향했다.


애초에 내 삶의 결은 매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안방에는 언제나 범접할 수 없는 단단한 질서가 존재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늘 묵직하고 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놋그릇에 밥을 드셨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시커먼 재를 짚단에 묻혀 그 그릇들을 닦고 또 닦으셨다.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던 그 놋그릇들은 집안의 격식이었고, 삶을 정성스레 대접하려던 어머니의 엄숙한 헌신이었다. 나름의 숭고함을 지닌 규격의 세계였다.


그러나 어린 내가 좋아했던 공간은 안방이 아니라, 어둡고 퀴퀴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던 부엌바닥이었다.


남정네들의 식사가 끝나고 조용해지면, 어머니는 비로소 당신의 허기를 채우셨다. 어머니의 식기는 거창한 놋그릇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썼는지 알 수도 없고, 한쪽 귀퉁이가 툭 깨져나가 볼품없이 투박한 박바가지였다. 어머니는 그 깨진 바가지에 찬밥을 덩어리째 넣고, 남은 나물 몇 가지와 고추장 한 숟갈, 그리고 들기름을 쪼르륵 떨어뜨리셨다.


숟가락이 바가지 벽면에 부딪히며 내는 서글프고도 경쾌한 소리가 부엌 가득 울려 퍼지면, 나는 어느새 어머니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엄마, 나 한 입만.”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 커다랗게 한 숟가락을 떠서 내 입에 쑥 넣어주셨다. 매콤하고 고소한 비빔밥이 입안 가득 퍼질 때의 황홀함이란. 갈라진 바가지 틈새로 배어든 들기름 냄새는 안방의 놋그릇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였다. 내게 가장 완벽한 밥상은 늘 깨진 바가지 안에 있었다. 그 바가지 안에는 밥보다 어머니의 시간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주한 세상은 군대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계급을 매기고 있었다. 어느새 나 역시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명함의 직함을 들여다보고, SNS의 반응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금이 가거나 뒤처지면 불량품이 될까 보아, 흠 없는 포장지를 고르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말이다.


분명 세상의 외형을 세우고 지탱하는 것은 놋그릇처럼 단단하고 흠 없는 이들의 바카라임감일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서재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 내 시선은 여전히 자꾸만 뒤처진 것들에게로 향한다. 바카라상 위에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오래된 나무 연필꽂이가 놓여 있고, 새벽녘 집 근처 산자락을 걸을 때도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곧게 뻗은 낙엽송보다 모진 바람에 꺾이고 뒤틀려 기묘한 궤적을 품게 된 고목의 둥치다. 완벽한 것은 경외감을 자아내지만, 상처 입은 것들은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완벽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먹고 자랐다. 흠이 없는 것일수록 더 쉽게 흔들렸다. 반면, 이미 깨진 바가지는 더 숨길 것도 없다. 완벽하지 않기에 그 어떤 투박한 것과 부딪혀도 부끄러움이 없다.


도심의 밤거리는 저마다의 완벽함을 뽐내는 불빛들로 화려하다. 그 눈부신 창문들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내 마음속 오래된 부엌을 복원한다. 어머니의 거친 손에 들려 있던 그 깨진 바가지, 그리고 갈라진 틈에 오래 배어 있던 들기름 냄새.


매끄러운 놋그릇 대신, 나는 내 삶의 깨진 여백을 사랑한다. 세상의 온기는 늘 그 갈라진 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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