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한 가지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황희 정승의 일화. 서로 다투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네 말도 옳다." 하고, 이어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그 말도 옳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것을 시비를 가리기보다 화합을 중시한 지혜와 너그러움으로 배워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그것이 너그러움이었을까.
집안의 주인이 앞마당에서 벌어진 다툼을 두고 이편도 옳고 저편도 옳다고 말하는 모습. 뒤이어 보다 못한 아내가 "전후 사정을 따져 누가 옳은지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당신 말도 옳소."라며 미소를 지었다는 그 장면.
나는 한동안 그 모습에서 너그러움보다 줏대 없음을 먼저 보았다. 혹시 그는 다툼을 귀찮아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하인들의 언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적당히 넘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시비를 가리지 않는 태도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억울한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는 무바카라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그러움과 줏대 없음.
두 단어는 오래도록 내 안에서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길에서 바람을 만났다.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능선을 걷다 문득 이름 모를 풀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가장 먼저 허리를 숙이는 것은 작은 풀들이었다. 바람은 사정없이 몸을 눌렀지만, 풀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의 결을 따라 몸을 낮출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쉽게 눕는 풀들이 정작 뽑히지는 않았다.
바람이 잦아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섰다. 눕기를 반복하면서도 제자리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오래된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황희의 일화가 실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네 말도 옳다."는 말은 시비를 가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처지에서 바라본 삶의 무게를 먼저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억울한 사람의 사정도 이해되고, 화가 난 사람의 이유도 이해되었을 것이다.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아내의 말 역시 틀리지 않았다. 그는 어느 한쪽의 논리만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까지 함께 바라보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 모습은 산길의 풀과 닮아 있었다.
풀은 바람 앞에서 몸을 낮춘다. 그러나 뿌리까지 내어주지는 않는다. 흔들리지만 떠밀려 가지 않고, 굽히지만 꺾이지 않는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 안의 중심이 단단하지 못할 때 하는 양보는 갈등을 피하기 위한 비겁한 타협이 되기 쉽다. 그러나 뿌리가 깊을수록 사람은 자신의 생각만 붙드는 대신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품을 수 있다.
중심이 없어서 흔들리는 것과 중심이 단단하기에 몸을 낮추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줏대 없음은 바람에 떠밀리는 것이고, 너그러움은 뿌리를 지킨 채 바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도 창가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는다.
세상은 여전히 서로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서 나 역시 쉽게 판단하고 쉽게 단정하려는 마음과 마주한다.
내일도 풀들은 바람에 몸을 기울일 것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 풀들을 바라보며 생각할 것 같다.
바람에 눕는 풀은 왜 뽑히지 않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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