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다. 내 안의 스나이퍼는 단 한 번도 조준을 실패한 적이 없다. 대상은 언제나 명확하다. 바로 나 자신이다.
식탁 위에서 메뉴를 고를 때나 사소한 약속 시간을 정할 때, 혹은 누군가의 무리한 부탁이 슬며시 발을 밀어 넣을 때, 내 안의 킬러는 소리 없이 깨어난다. 마음 밑바닥에서는 분명 다른 목소리가 출렁이지만, 입술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오는 문장은 언제나 잔인하리만치 매끄럽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으니, 네 편한 대로 해.” 상대의 얼굴에 번지는 안도감을 의뢰서 삼아, 나는 기묘한 평화를 대가로 받는다. 싫은데도 싫다는 말을 삼키는 찰나마다 내 안의 욕구와 감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워진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삼키는 일은 내게 비용도 들지 않는 가장 익숙한 생존 방식이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외투를 입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나를 향한 가해자가 되어 왔다.
그러나 완전 범죄를 끝마친 뒤 손에 쥐는 안식의 유통기한은 처참할 정도로 짧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할수록, 내 안의 우울은 메마른 우물처럼 깊고 아득해진다. 타인의 만족으로 가득 찬 풍경 속에 정작 ‘나’라는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거친 풍파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먼저 죽이던 서글픈 버릇은, 결국 나를 가장 확실하게 갉아먹는 잔인한 독약이 되었다.
그늘이 길어지는 오후, 문득 보이지 않는 내 손을 내려다본다. 무수한 거절의 실패와 억압된 감정을 홀로 감당해 온 나의 내면은 이미 피멍이 들어 있다. 오직 타인의 평화를 위해 내 영혼을 제물로 바쳐온 이 지독한 청부 살인을,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할 때다.
내가 나를 겨누던 그 서슬 퍼런 조준선을 거두어, 상처 입은 나의 손을 가만히 잡아본다. 프로 킬러로서의 그 정교한 시선을 이제는 타인의 눈치를 보는 데가 아니라, 내 안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진짜 내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데 쓰고 싶다. 비록 “아니요”라고 말하는 첫마디가 서툴고 가슴이 쿵쾅거릴지라도, 이제는 나를 죽이던 이 손으로 내 삶의 숨을 불어넣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내려놓는다.
오늘의 생존자는 처음으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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