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어느 날, 대학 신문 한구석을 채웠던 학우의 기행문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일본은 우리에게 좀처럼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었고, 여행을 떠난 이는 그 성벽의 균열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는 일본의 빈틈을 뒤지다 마침내 아스팔트 틈새에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를 발견하고서야 '일본도 별수 없구나'라며 안도 섞인 승리감을 고백했다. 그 안도감의 밑바탕에는 우리가 가졌던 깊은 열등감이 서려 있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도쿄는 여전히 질서 정연했으나, 그곳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과거와 달라져 있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추월했다는 지표가 일상이 된 시대, 내 마음 한쪽에는 부채의식 대신 상대를 은근히 얕잡아 보는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의 정체된 풍경을 보며 우리가 앞선 것이 무엇인지를 저울질하는 시선으로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그 오만함은 숙소라는 사소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했다.
욕실 세면대 위에 놓인 일회용 면도기와 칫솔. 한국의 호텔에서 만나는 그것들은 대개 '일회용'이라는 이름 뒤에 품질의 타협을 당연한 듯 감추고 있다. 면도기는 수염이 깎이기는커녕 턱의 살점을 앗아가기 일쑤여서 쓰고 나면 붉은 핏방울이 맺히곤 하며, 칫솔은 잇몸을 할퀴는 조악한 솔 때문에 손가락보다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도쿄의 호텔에서 만난 것들은 달랐다. 칫솔은 섬세하면서도 탄탄해 여러 번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했고, 면도기의 묵직한 그립감과 섬세한 날은 이것이 소모품을 넘어 투숙객의 아침을 존중하려는 정교한 배려였다.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쓰시던 일본산 ‘스메끼리(손톱깎이)’가 생각났다. 국산 제품은 몇 번 쓰다 보면 날이 무뎌져 손톱을 짓이기던 시절, 일본제는 ‘딱’ 하는 명쾌한 소리와 함께 단면을 유리처럼 매끄럽게 잘라냈다. 그때의 기술 격차가 냈던 파열음이 21세기 호텔 욕실의 비품들 곳곳에 여전히 배어 있었다. 우리는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 규모와 IT의 화려함에서는 일본을 앞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는 품질의 깊이에서 나는 여전히 그들의 저력을 보았다.
우리는 효율과 속도를 위해 너무 많은 사소한 배려들을 생략하며 달려온 것은 아닐까. 일회용품 하나에도 깃든 그들의 세심함은 기술력을 넘어 타인의 일상을 존중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었다. 거울 속 매끄럽게 정리된 턱 끝을 만져보며 나는 얕잡아 보려 했던 마음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깨달았다. 경제의 덩치는 키웠으나, 그 덩치에 걸맞은 예의를 갖추기까지 우리는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비행기 안에서 다시금 턱을 쓸어본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가 여행 내내 내가 가졌던 부끄러움을 일깨워준다. 80년대 학우가 발견한 꽁초 하나가 일본의 허점이었다면, 내가 마주한 면도기 하나는 그들의 견고한 기본기였다. 도쿄의 작은 욕실이, 그 사실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