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몸이 굽은 길을 찾기 시작했다

by선비천사

아침마다 머리맡에서 날카롭게 고막을 찌르는 알람 소리에 내 몸은 기계적인 반사작용으로 빳빳하게 기립한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보도블록과 8차선 아스팔트 도로는 나에게 한 치의 오차 없는 직선적 보행을 강요한다. 하지만 예순다섯의 무릎은 이제 그 매끄러운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삐걱거린다. 연골이 닳아버린 관절 사이로 도심의 딱딱한 지면이 정직하게 충격을 되돌려줄 때마다, 나는 마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속이 뒤틀려 급히 화장실을 찾듯, 직선의 강박을 이기지 못한 육체가 굽이굽이 휘어진 오솔길로 숨어들어 제 몸을 누이고 싶어 하는 절박한 신호다. 늙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내 몸의 리듬이 직선의 속도에서 이탈하여, 저 구불구불한 대지의 곡선을 닮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소래산 자락으로 발길을 옮겨 이름 없는 오솔길로 접어들면, 비로소 길은 내 몸 안의 장기들처럼 휘어지기 시작한다. 오솔길은 끈적하고 투박하다. 직선 도로 위에서 나는 그저 통과하는 물체였다.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굽은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소화하는 존재가 된다. 모퉁이 하나를 돌 때마다 발바닥에 닿는 흙의 탄성이 달라진다. 어느 지점에서는 축축한 습기가 발목을 잡고, 어느 지점에서는 바짝 마른 흙먼지가 콧등을 간지럽힌다. 그 불규칙한 리듬에 맞춰 숨을 몰아쉬다 보면, 도심에서 삼켰던 텁텁한 긴장들이 그제야 꾸룩 거리며 소화되는 기분이 든다.


오래된 굽은 길은 기억의 갈피가 많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잊고 지냈던 흙냄새와 누군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걸려 있다. 길 끝자락, 제 몸을 가누지 못해 스스로 뒤틀린 채 서 있는 늙은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한다. 가지들은 햇빛을 탐하고 바람을 피하며 기묘한 곡선을 그려 하늘을 할퀴고 있다. 비정형적인 실루엣. 초라함 대신 지독한 생명력이 남아 있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비틀림. 나는 잠시 그 나무의 거친 껍질에 굽은 등을 기대 본다.


길은 이내 낮은 돌담집으로 이어진다. 이끼 낀 돌담은 완벽하지 않다. 제멋대로 생긴 돌들이 서로의 모난 부분을 어깨로 받치며 위태롭게, 그러나 단단하게 서 있다. 담장 너머로 주황색 등불 같은 감나무가 마당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 하나가 저녁 어스름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저것은 결실일까, 아니면 나무가 토해낸 마지막 고독일까.


뒷산 밤나무 숲에서는 툭, 툭 하며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게 주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대지로 귀환하는 무심한 소리다. 돌아간다는 말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와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만 한다는 서늘한 자각이 동시에 밀려온다.


마당의 툇마루에 앉아 내가 지나온 굽은 길을 가만히 바라본다. 직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출발지가 있으면 목적지가 있었고, 오답이 아니면 정답이었다. 그러나 이 오솔길 위에서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길은 끊길 듯 이어지고, 나무는 죽은 듯 살아있으며, 내 몸은 노쇠해 가는 동시에 깊어지고 있다.


이제 나는 정답을 내리지 않기로 한다. 굽은 길이 따뜻한 위로인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생의 퇴로인지 굳이 따지지 않는다. 그저 해 질 녘 감나무 그림자가 돌담을 타고 느릿하게 번져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내 육체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다. 그저 이 굽은 길 위에서 마음껏 느려지고, 마음껏 비틀거려도 괜찮다는 자연의 무심한 허락이다.


밤나무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홍시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몽당연필을 꺼낸다. 내 몸의 장기를 닮은 저 굽은 길의 문장들을 종이 위에 천천히 옮겨 적기 시작한다. 굴곡진 문장 사이로, 흙내음 섞인 그리움이 비린내처럼 번져 나온다. 무언가가 울컥 치민다.


나는 돌아왔다. 직선의 횡포에 지워졌던 나의 곡선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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