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식탁은 가끔 거대한 우주의 축소판이 된다. 아내와 마주 앉아 낡은 담요 위에 화투장을 섞는 시간, 그 마찰음은 고요한 서재를 흔드는 유일한 파동이다. 화투는 묘한 놀이다. 내가 아무리 활자 속에서 길어 올린 통찰로 판의 흐름을 읽으려 해도, 어떤 날은 아내의 손끝에만 은총 같은 패들이 깃든다. 뒤집는 것마다 붉은 꽃들이 만개하고, 내가 내미는 패는 번번이 낙화가 되어 흩어진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된다. 인간의 의지라는 얄팍한 담장 너머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해일, 우리는 그것을 '운'이라 부른다.
생은 결코 공평한 적이 없었다. 서재 속 인과응보의 논리는 창밖의 현실 앞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누구는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금빛 안장을 얻고, 누구는 해가 저문 뒤에야 찢어진 고무신을 받는다. 평생을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는 생과, 지독한 가시덤불 속에서 살점이 뜯기는 생의 비대칭성. 그 앞에서 내가 쌓아온 독서와 사색은 헐거웠다.
한때는 그 설계도의 뒷면을 훔쳐보고 싶어 사주의 미로를 헤매고 점집의 문턱을 넘었다. 내 삶에 낀 불운의 얼룩에 정당한 이유라도 붙이고 싶었던 갈망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은 답은 유효기간이 지난 처방전 같았다. 확인되지 않는 내세를 담보로 오늘을 유예하라는 말들. 증명할 수 없는 필연은 신앙의 탈을 쓴 기만일 뿐이었다. 나는 그 가짜 지도들을 불태우고 매일 아침 소래산으로 향한다.
등산로의 안락함을 버리고 가시덤불 우거진 사면으로 발을 들이는 일은, 우연에 맡겨진 삶 위에 내가 만든 필연을 덧씌우는 의식이다. 발목을 낚아채는 가시의 악력은 생경하고 날카롭다. 낡은 등산화 위로 흙먼지가 쌓이고 종아리에 붉은 선혈이 맺힐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만든 것과 내가 견딘 것이 일치하는 지점에 선다. 이 통증은 누구에게 빌려온 것도 아니다. 내 근육이 기억하고 내 의지가 밀어 올린, 지독하게 정직한 궤적이다.
정상에 서면 시흥의 굽이진 길들이 거대한 화투판처럼 펼쳐진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게 돌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의 구렁텅이에서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신의 거처는 여전히 안갯속이며, 내일 내 손에 들어올 패의 색깔 또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운이라는 바람은 제 마음대로 불겠지만, 그 바람의 결을 읽으며 가시덤불 속에 길을 내는 고집스러운 발걸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아내와 화투를 치는 사소한 소란, 그리고 서재에서 문장을 짓는 고독한 노동.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인생은 주사위의 숫자를 바꾸는 게임이 아니라, 우연히 던져진 그 숫자를 필연적인 삶의 무늬로 승화시키는 예술이다. 판이 기울어 있을지언정, 나는 나의 가시를 헤치며 걷는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이 화려한 '광'이 아니라 낡은 '펜'일지라도, 그 끝에서 피어나는 문장들은 세상 그 어떤 운도 가로챌 수 없는 나만의 보석이다.
산을 내려가는 길, 노을이 등 뒤를 적신다. 운이 오지 않아도 좋다. 내가 걸어온 이 가시 돋친 길이, 이미 답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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