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선택하는 연습

by석은별

내 삶 속으로 쏙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갑자기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남편의 기분을 살피지 않고, 아이들의 일정을 먼저 챙기지 않고,

가족이 필요로 할 것들을 미리 예상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어색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가족과 관련된 모든 것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누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누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아침은 무엇을 먹을지.

비가 오면 누가 우산을 챙겨야 하는지.

누가 늦잠을 자면 누구를 깨워야 하는지.

오늘 저녁은 누가 집에 있고 누가 없는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생각했다.

그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아마 어느 정도는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 삶 쪽으로 몸을 돌리고 보니 이상한 것이 하나 보였다.

내 머릿속에는 늘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내 일정 앞에 가족의 일정이 있었고,

내 피로 보다는 가족의 필요가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앞에는 늘 ‘그래도 지금은.’이라는 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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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아들을 태워다 주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딸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들은 걸어서 등교할 수 있었는데

내심 부러워하기에

‘너도 중학생 되면 아침에 데려다 줄게!’라고 말 한 이후로 의무가 됐다.

스스로 내뱉은 말이라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마음.

어찌 보면 바카라임감 있고 당연할지도 모르나

매일 아침이 그렇게 규칙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들 등교와 일이 겹치면 일을 미루는 방식이었다.

내가 피곤한 날도 그랬다.

전날 늦게까지 일을 한 날도 그랬다.

내 일정이 촉박한 날도 그랬다.

아들을 태워주는 일이 아주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쉽게 내 몫이 되었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어차피 하기로 했던건데’

‘이렇게 아침에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서로가 편하잖아.’

익숙한 문장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아침, 몸이 무거웠다.

일어나자마자 알았다.

오늘은 가고 싶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바로 다음 문장이 따라왔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인데.’

그런데 얼마전부터 조금씩 마음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시간되면 오늘은 당신이 데려다줘. 안되면 버스타고 가라고 할게.”

말을 하고 나서 가만히 내 마음을 살폈다.

어딘지 어색했다. 아니 불편했다.

아주 조금.

아들이 서운해할까.

엄마가 갑자기 왜 저러나 생각할까.

남편이 내가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할까.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이 시간이 되지 않아 아들은 버스를 타고 갔다.

아들은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걸었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물었고,

나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관계는 그대로였다.

서운해하는 사람 없이, 일상 중 한 부분이었을 뿐임을...

그러나 내게는 이상할 만큼 새로웠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그렇게 무서워했던 걸까.

내가 한 번 데려다주지 않으면 엄마의 자리가 흔들릴까 봐?

내가 피곤하다고 말하면 서운해 할까봐?

내가 내 사정을 먼저 생각하면 누군가와의 관계가 금이라도 갈까 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한 번 쉬었다고 해서 가족이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나를 생각했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경계는 관계를 끊는 선이 아니라,

관계를 망치지 않고 내가 남아 있기 위해 필요한 거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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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의 실직 소식을 들었다.

‘왜 하필...’

순간 머릿속이 아주 빨라졌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수입은.

생활비는.

보험은.

아이들한테 들어갈 돈은.

내가 더 일을 해야 하나.

무엇부터 줄여야 하지.

가족의 앞날이 한꺼번에 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한 생각이 따라왔다.

여행을 취소해야겠다.

이미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여행이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나만의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으고,

일정을 비워두고,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도 상상했다.

그런데 남편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여행 일정부터 보류할지 취소할지 살피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에는 그것이 당연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여행을 가는 건 무바카라임하지 않나.

가족의 상황이 이런데 내가 혼자 즐기러 가도 되나.

돈을 아껴야 하는데.

혹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예약 화면을 열었다.

취소 버튼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올렸다.

그런데 누르지 못했다.

마음 한쪽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왜 또 네 것부터 없애려고 해?’

잠깐 멈췄다.

나는 아주 익숙하게 가족 전체의 바카라임을 내 쪽으로 끌어오고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부족해질지 계산해보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벌써 내가 가장 기대하던 것부터 없애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가족에게 변수가 생기면

나는 가장 먼저 나의 계획부터 바꾸려 들었다.

나중에.

다음에.

지금은 때가 아니야.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아이들이 크면.

돈이 조금 더 모이면.

남편 일이 괜찮아지면.

그렇게 미룬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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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했던 것도 아니다.

예약을 그대로 둔 채 며칠을 보냈다.

괜찮나.

정말 가도 되나.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건 아닐까.

예전의 내가 계속 물었다.

그럴 때마다 이번에는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이게 정말 무바카라임한 행동일까.’

아니면

‘나는 지금도 또 나를 제일 먼저 포기하려는 건 아닐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여행 하나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부터 지워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살펴보고,

필요한 바카라임을 지고,

그래도 내 몫의 삶까지 모두 반납하지는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취소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망둥어는 팔딱였다.

“이래도 돼?”

“가족이 힘든데?”

“너만 놀러 가겠다고?”

녀석은 아주 익숙한 목소리로 재촉하다시피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어.”

망둥어가 다시 팔딱였다.

“그래도 만약에.”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너 무바카라임한 거 아니야?”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바카라임지는 것과 나를 포기하는 건 같은 말이 아니잖아.”

망둥어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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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사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가족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바카라임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해서 생각하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가족이라는 원 안에 나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있고,

남편이 있고,

집이 있고,

생활이 있고,

일정이 있고,

돈이 있고,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내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원 안에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늘 바깥에서 원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빠질까 봐 붙잡고,

무엇인가 무너질까 봐 받치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먼저 달려가고.

이제는 나도 그 안에 들어가 보려고 한다.

가족과 나를 저울에 올려놓고 하나를 선택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선택할 때도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선택할 때도 가족을 버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

오래된 습관은 자꾸만 나를 원 밖으로 밀어낸다.

‘너는 괜찮잖아.’

‘너는 참을 수 있잖아.’

‘너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지금은 가족이 먼저잖아.’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발 안으로 들어온다.

‘아니.’

‘나도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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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태워주지 않았던 아침에도, 여행을 취소하지 않았던 날에도, 나는 누군가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처음으로 나를 버리지 않는 연습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작은 방식으로.

차 키를 내려놓고.

버스 타고 가라고 말하고.

취소 버튼을 누르지 않고.

내 컨디션을 먼저 확인하고.

내 일정도 가족의 일정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보고.


그렇게.

내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마다 반복되던 작은 행동 하나를 바꾸는 일.

습관처럼 포기하려던 계획 하나를 그대로 두는 일.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차린 뒤

내 필요도 함께 알아차리는 일.

그리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일.

‘지금 나는 또 나를 지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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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렵다.

어떤 날은 가족의 일이 생기면 다시 마음이 먼저 그쪽으로 뛰어간다.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고,

미리 바카라임질 것을 계산하고,

내 계획부터 줄일 궁리를 한다.

오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알아차릴 수 있다.

아. 또 시작했구나.


그리고 잠시 멈춘다.

정말 그래야 하는지.

내가 해야 할 몫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안에 나는 어디에 있는지.

예전에는 이런 질문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어쩌면 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한 번의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포함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내일도.

가족의 삶을 생각하면서도 그 안에서 내 자리를 지우지 않는 것.

나는 아직 그 연습을 하는 중이다.

망둥어는 가끔 어항 안에서 팔딱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녀석을 본다.

그리고 말한다.


“걱정 마. 이번에는 아무도 버리지 않을 거야.”


잠시 멈추고 덧붙인다.


“나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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