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명)를 만나고 나서 오래전 기억 하나가 느닷없이 살아났다.
내가 어느 날 회사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던 사람이라는 기억.
그 사실을 나는 거의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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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 번호는 010으로 통합되던 초창기에 번호이동을 하면서 골드번호를 선택한 이후 한 번도 바꾼 적 없이 25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SNS에는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가끔 다시 나타난다.
얼마 전 20대 초반 회사생활을 함께했던 한 살 어린 동생, 지혜의 출산 소식을 봤다.
완경이 다가오는 우리 나이에 출산이라니!
퇴사하고 드문드문 연락하다가 전혀 연락 없이 지낸 게 15년쯤 된다.
그런데 출산 소식 하나가 그 긴 공백을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렸다.
바로 연락했다.
아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함께 키웠다면 이토록 눈물겹게 축하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혜 말대로 우리 또래는 이미 성인 자녀가 있거나 중고등학생 아이를 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신은 이제야 첫아이를 낳았으니,
모든 게 낯설고 두렵기도 하지만
잊혀 있던 인연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는 것은 또 다른 선물 같다고 했다.
그리고 두어 달쯤 지났나 지혜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야, 얼굴 보자.”
연락받은 다음 날 바로 점심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꽤 설쳤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지?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봤던가?
그런데 우리 둘째 생일과 지혜 생일이 같다는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는 걸 보면 한동안 인연이 이어지기는 했는데...
도무지 마지막이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다 맞춰진 줄 알았던 퍼즐이 다시 바닥에 쏟아져 조각조각 흩어진 기분이었다.
그 조각들을 주워 맞추다가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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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 지하주차장에 미리 나와 있는 지혜를 보자마자 알아봤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데 지혜가 말했다.
“언니야, 여전하네! 옛날에는 스틱도 그렇게 멋지게 운전하더니!”
20년도 더 전의 우리가 그 말 한마디로 그냥 이어졌다.
“내가 운전은 좋아하나 봐.”
서로 와락 끌어안았다.
이동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차를 마시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삶을 묻고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지혜가 말했다.
“언니야, 그때 그렇게 갑자기 퇴사해서 사람들 다 언니한테 연락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던 퍼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그래! 맞네. 나 갑자기 도망가듯 나왔네!”
지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린 우리대로 언니 찾으려 했고, 언닌 언니대로 꽁꽁 숨고... 그게 지금 떠올려 보면 웃기기도 한데 최선이기도 했어.”
그 말이 이상하게 남았다.
“나 처음 회사생활 하면서 바로 옆에서 언니가 꼼꼼하게 알려주고, 어떨 때는 나 대신 화도 내주고 해서 얼마나 멋져 보였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똘똘하던 사람이 갑자기 퇴사한다고 하고는 안 나와서 얼마나 서운했는데...”
“그러네. 그랬네.”
그러다가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근데 우리 그러고도 연락했나 보다. 너랑 우리 둘째랑 생일 같은 것도 기억나고... 나 너 다른 곳 옮겨서 유니폼 입고 있던 모습도 생각나는데?”
“아! 맞네! 맞다, 맞아. 우리 또 만났었지?”
“맞아.”
우리 둘 다 한참 웃었다.
나는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나가고 나서도 연락되는 사람들하고는 지금도 지내고 있어. 요즘 OO언니는 지휘자로 열일하고 있어. 대학 강의도 나가고.”
“우와. 둘 다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뒤늦게 자기 인생들을 잘 찾아갔어?”
수다는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내게 다음 일정이 있어서 진하게 두 시간을 채우고 헤어졌다.
그 시절이 떠오르는데 모든 게 다 엊그제 일 같았다.
그런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 달라서
‘시차’를 느끼는 게 살짝 어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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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직 가지고 있는 회사 야유회 사진을 찾았다.
사진 속 얼굴들을 하나씩 보다가 지혜에게 보냈다.
나에게 선명한 기억은 지혜에게 지워져 있었고,
내게 지워진 기억은 지혜에게 선명했다.
우리는 각자의 기억 조각을 하나씩 꺼내
“맞아!”
“그랬지!”
하면서 퍼즐을 다시 맞췄다.
그게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저녁에 남편 얼굴을 보는 순간.
왜 내가 그 회사를 그렇게 갑자기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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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도 남편은 사업을 했다.
사업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거래처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그중 한 사람이 내가 일하는 회사까지 찾아왔다.
24살.
갓 결혼한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돈을 갚으라는 것도 힘들었지만
남편 일 때문에 누군가가 내가 다니는 회사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을 회사 사람들이 아는 게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쪽팔렸다.
나는 그때 이른 나이에 결혼한 새댁이었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남편은 변변한 사람이고,
먹고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가정을 꾸렸다고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온라인 게임까지 찾아왔다.
내가 숨겨놓은 것을 몽땅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남편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알아서 하지 못했다.
계속 그 사람의 전화를 피했고, 그 사람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퇴직하면서 받은 돈으로 대금을 치렀다.
결혼하기 전부터 다니던 온라인 게임에서 나는 그렇게 야반도주하듯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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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를 떠올리다가 문득 망둥어가 생각났다.
지금은 손바닥만 한 몸으로 어항 안에서 팔딱거리는 녀석.
내 앞에서
“버려졌어.”
“무시당했어.”
“당장 화내.”
라고 소리쳐도
“그래?”
하고 바라볼 수 있는 녀석.
그런데 24살의 내 앞에서는 녀석이 망둥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괴물이었다.
아주 커다란.
입을 벌리면 나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은 괴물.
‘들켰어.’
‘다 알게 될 거야.’
‘네가 어떤 사람하고 결혼했는지 다 알게 될 거야.’
‘불쌍하게 볼 거야.’
‘한심하게 볼 거야.’
‘여기 있으면 안 돼.’
‘얼른 나가.’
그때는 그것이 내 생각인지,
공포인지,
수치심인지도 몰랐다.
그냥 나가야 했다.
그곳에서 사라져야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괴물이 나를 쫓아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괴물이 나를 살리려고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이 '도망치는 것'이었을 테니까.
나는 회사를 나왔고,
돈을 갚았고,
사건을 끝냈다.
괴물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해결했다.’
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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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다시 했다.
“나 그때 왜 그렇게 갑자기 회사 그만뒀는지 이제 생각났다.”
그런데 남편이 바로 발끈했다.
“그 사람 때문에 퇴사했다고 나한테 뒤집어씌우지 마라.”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욕이 나왔다.
다 지난 일이고,
퇴사는 내가 선택한 것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내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해졌다.
맞다.
그때도 이랬다.
회사를 그만둔 뒤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서 많이 싸웠다.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도망쳐서라도 수습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회사까지 찾아와 돈을 달라고 언성을 높이고,
그 사실을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된 것에 대해 내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무서웠는지
남편은 그때도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자기도 억울했다고 했다.
자기도 대금 결제를 못 받아서 그랬다고 했다.
자기에게도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랬구나.
나는 부끄러워서 숨고 도망치는 사람이었고,
남편도 자기 방식으로 부끄러워하고 도망치는 사람이었구나.
다만 나는 수습하면서 도망쳤고,
남편은 바카라임을 피하면서 도망쳤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하면 더 빨리 해결됐으니까
하나씩 대신 처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일을 수습하고,
생활을 지키고,
아이들을 살피고,
남편의 마음까지 이해하려 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가족이 안전해지는 줄 알았다.
괴물이 나타나기 전에 내가 먼저 지뢰를 찾아내고,
터지기 전에 제거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많이 이해하고,
내가 더 빨리 움직이고,
내가 더 단단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의 뒷수습을 맡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 와서 내가 남편을 지금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한 말은 그가 한 것이고, 그가 선택한 행동은 그의 것이다.
다만 내가 너무 오랫동안 그의 뒤를 치워주면서
그가 자기 몫을 직접 마주해야 할 기회를 줄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 부분에는 내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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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러 상황을 거쳐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 과정을 수락했다.
이상했다.
예전 같았으면 가슴이 철렁했을 말인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4살의 나는 남편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 삶부터 치웠다.
내 온라인 게임을 치우고, 내 부끄러움을 숨기고, 내가 가진 돈을 내놓고, 그 상황을 없애버렸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는 내게 어떤 곤란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 삶부터 치우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군가 나를 한심하게 본다고 해도
그 사람의 시선을 피해 내가 있던 자리에서 도망가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일을 하면 된다.
돈이 부족해지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고, 작은 집에서 살아야 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누군가에게 내가 실패한 사람처럼 보여도 그건 그 사람의 눈일 뿐이다.
남편과 살면서 길러온 내공도 있다.
좋든 싫든 나는 살아내는 법 하나는 꽤 배웠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의 망둥어가 그렇게 작아졌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소리쳐도
내가 당장 뛰쳐나가지 않으니까.
“큰일 났어!”
“그래?”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야!”
“알 수도 있지.”
“망했어!”
“아직 안 망했는데.”
“여기서 빨리 나가!”
“싫은데.”
24살의 나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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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순간이 되더라도 내가 아쉬운 사람이 되지는 말자.’
늘 최선을 다해 살되 상대방에게 아쉽지 않은 사람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 아쉽지 않은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내가 아쉬워지기 시작하면 누군가에게 비굴해져야 하고,
그 비참함과 싸우느라 또 많은 시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희한하게도 이 말을 잘 알아먹었다.
자기들도 누군가를 위해 크고 작게 무언가를 해보면서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24살의 나는 나에게 꽤 아쉬운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나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경험도.
도움을 청하는 법도.
부끄러움을 견디는 힘도.
문제가 생겨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도.
그래서 도망쳤다.
그러고도 살아남았다.
지혜가 말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맞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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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이 조금 더 성숙한 남편이었다면
오래전 이야기를 듣고
“그때 당신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어려서 그랬다.”
그 정도는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함께 살아온 사람은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왜 이것도 모를까.
왜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까.
언제쯤 철이 들까.
언제쯤 자기 행동을 돌아볼까.
그가 좀 더 성숙한 인격을 갖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 기다림도 내 욕심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그의 몫이다.
그가 변하든,
안 변하든.
나는 그 사람이 달라지기를 기다리느라 내 삶의 구성까지 그대로 둘 필요는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삶 안에서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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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 애썼던 걸까.
그냥 세월 속에서 잊힌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괴물이 너무 무서워서
그 시절의 장면들을 문 뒤에 밀어 넣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었다고 여기면서
앞으로만 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혜를 만나 그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이번에는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오래전 장면 하나를 바라봤다.
회사를 떠나는 24살의 내가 있었다.
부끄럽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기 자리부터 버리고 뛰쳐나오는 아이 같은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커다란 괴물이 소리치고 있었다.
‘빨리 가.’
‘여기 있으면 위험해.’
그때는 그 목소리를 거스를 힘이 없었다.
그래서 갔다.
지금은 그 괴물이 망둥어다.
녀석은 여전히 어항 안에서 가끔 팔딱거린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제 녀석보다 커졌다.
잊으려 애쓰니 잊혀졌던 것 같고,
다시 떠올리니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억 속으로 도망치지도 않았고,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지도 않았다.
잠깐 그때의 나를 바라봤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구나.’
그리고 망둥어를 한번 쳐다봤다.
‘너도 그때부터 있었구나.’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다시 지금의 내 삶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