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의 정체, 밸류 엔지니어링
1947년,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구매 엔지니어 로렌스 마일스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 자재가 없었다. 원래 쓰던 소재를 구할 수 없으니, 대체재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쩔 수 없이 바꾼 그 소재가, 더 쌌다. 그리고 종종 더 좋았다. 마일스는 멈칫했다. 그동안 우리는 대체 무엇에 돈을 쓰고 있었던 것인가. 그는 깨달았다. 비용을 줄이는 길은 품질을 깎는 게 아니었다. 그 부품이 진짜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서 하나의 기술이 태어났다. 가치공학, 밸류 엔지니어링(Value Engineering). 가격은 낮추되 기능은 그대로 지키는, 혁신적 아이데이션의 과정이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가격은 낮추고, 기능은 그대로.
요구된 기능은 한 치도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 그 기능을 구현하는 방법을 다시 설계해 가격을 끌어내린다. 80년 전 한 엔지니어의 발견이, 오늘 입찰장에 선 우리 중소기업에게 그대로 유효하다.
수주하려면, 먼저 가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가격은 대개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대표이사의 경험과 감. 오랜 세월 쌓인 그 감각은 분명 자산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회사의 운명을 가르는 입찰 가격을, 정말 한 사람의 감으로 던질 것인가.
감으로 가격을 만들면, 갈 수 있는 길은 셋뿐이다. 그리고 셋 다 막다른 길이다.
첫째, 싸게 써서 따낸다. 운 좋게 수주한다. 그리고 실행하는 순간부터 밑지기 시작한다. 애초에 만들 수 없는 가격을 던졌기 때문이다. 저가수주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둘째, 그 가격에 맞추려고 품질을 깎는다. 무리한 원가 절감은 불량을 부르고, 불량은 반드시 고객 클레임으로 돌아온다. 단가 몇 푼을 아끼려다 신뢰를 통째로 잃는다. 셋째, 안전하게 비싸게 쓴다. 그리고 입찰장에서 떨어진다. 한 번도 일해보지 못하고 진다.
저가수주의 저주, 품질 클레임의 부메랑, 고가의 탈락. 감으로 만든 가격은 이 세 갈래 앞에서 매번 길을 잃는다. 빠져나갈 길은 하나뿐이다.
가격을 받지말고, 만드는 것이다. 가격을 만드는 것이 실력이다.
이기는 회사는 입찰 전에 가격을 만든다. 사양과 스펙을 한 줄 한 줄 정확히 들여다보고, 이 일을 우리가 실제로 얼마에 해낼 수 있는지 계산해 가격을 빚는다. 입찰 전에 스펙을 정확히 살핀다는 것은, 수주한 뒤에도 실행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정직하게 가격을 만들었는데도 졌다면?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 경쟁자는 실력으로 이긴 게 아니라, 스펙을 제대로 보지 않고 가격을 긁은 것이다. 그 프로젝트는 그들에게 재앙이 된다. 그래서 가격을 만드는 것은 실력이다. 그것도 가장 정직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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