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문이 열리자 냉기가 발목부터 올라왔다. 소선은 장바구니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플라스틱이 손바닥 안쪽을 눌렀고, 그 압력 때문에 손끝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천장 조명은 밝았지만, 통로마다 온도는 제각각이었다. 냉동 코너 앞을 지날 때는 피부가 얇아진 것처럼 서늘했고, 과일 코너에선 단내가 밀도 있게 코를 채웠다.
서현이 좋아하는 반찬을 떠올리며 카트를 밀었다. 멸치볶음, 계란말이, 달짝한 조림. 손이 자연스럽게 익숙한 코너를 찾았다. 채소 코너에 들어서자 흙 냄새가 먼저 들이쳤다. 물기 있는 상추와 쪽파 사이로, 아직 손질되지 않은 뿌리채소들이 비닐 속에서 뭉쳐 있었다. 소선은 손을 뻗어 봉지 하나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무게가 의외로 묵직했다. 흙이 그대로 붙어 있어서, 봉지 바닥에 검은 가루가 고여 있었다.
도라지였다.
‘손질’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은 채로, 제 모양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길쭉한 뿌리들이 서로 엉켜 있고, 껍질은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비닐을 통해 보이는 표면이 마른 나무껍질 같았다. 소선은 봉지 위를 엄지로 눌러보았다. 껍질 아래의 단단한 결이 비닐을 밀고 올라왔다. 그 순간, 손가락 끝이 아릿해졌다. 실제로 눌린 건 비닐뿐인데, 살갗 안쪽에서 미세한 통증이 솟아올라 오래된 흉터처럼 퍼졌다.
소선은 봉지를 들어 올린 채로 잠시 멈췄다. 마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이 멀리서 웅웅거렸다. 누군가 장바구니를 끌며 지나가고, 바퀴가 바닥의 줄눈을 넘어갈 때마다 ‘딱딱’ 하는 잔소리가 났다. 그 사이로, 봉지 안쪽의 도라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마찰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비닐은 얇았고, 그 안의 흙내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알싸하고 쌉싸름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자 혀 뒤쪽이 먼저 반응했다. 입안 어딘가가 이미 쓴맛을 준비하는 듯했다.
소선은 봉지를 카트에 넣었다. 봉지가 철망에 닿으며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 하나로, 집 안 거실 바닥의 감촉이 떠올랐다. 신문지를 펴놓았던 자리의 바스락거림. 손톱 밑으로 파고들던 검은 물. 물에 담가도 쉽게 빠지지 않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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