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틈이 그대로였다. 바깥 공기가 그 틈으로 들어오며 커튼 끝을 아주 작게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커튼의 섬유가 서로 비비며 내는 소리가 얇았고, 그 위로 벽시계 초침이 규칙적으로 박혔다. ‘착.’ 소선은 소파에 앉지 않았다. 거실 한가운데, 햇살이 바닥에 길게 누운 자리에 발을 두고 서 있었다. 맨발 아래로 바닥재의 미세한 이음새가 느껴졌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였다. 그 온도가 기분을 좌우하지 않았다. 그냥 이 집의 지금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어제 꺼내 둔 사진첩이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비닐 커버가 햇빛을 받아 흐리게 반짝였고, 모서리는 오래 접힌 자리에서 흰 선을 드러냈다. 소선은 사진첩을 만지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을 펴서, 손등의 옅은 자국이 빛을 받는 각도를 살폈다. 자국은 보였다가 사라졌다. 손을 조금만 틀면 다시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손을 내려, 허벅지 옆에 놓았다.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숨기지 않는 쪽이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벽 쪽, 서재 문 근처에 거울이 있었다. 현관 옆 거울과는 다른 작은 거울이었다. 예전에 서현이 장난감 거울을 붙여 놓고 잊어버린 것. 소선은 그 거울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창문으로 돌렸다. 창밖의 빛은 겨울의 끝처럼 연했고, 그 연함이 오히려 눈을 편하게 했다. 바깥에서 차가 지나가며 낮은 소리를 남겼다. 멀리서 누군가 보도블록을 밟는 발소리도 한 번 지나갔다.
소선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공기가 폐 안에서 한 번 식고 따뜻해지며 나갔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손가락을 맞물렸다. 손가락 마디가 부딪힐 때, 뼈가 아닌 살이 먼저 닿는 느낌이 있었다. 그 감각을 그대로 두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이 붉게 물들었다가 어두워졌다. 시계 소리는 계속 들렸고, 커튼이 아주 약하게 스치는 소리도 함께였다. 그 소리들을 바닥에 놓아 둔 채, 소선은 기억 속의 거실로 발을 옮겼다.
그 거실은 더 좁았다. 바닥의 결은 거칠었고, 소파는 낡은 합성가죽의 냄새를 풍겼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길게 뻗지 못하고, 바닥 중간에서 끊겼다. 공기는 묵직했고, 벽시계는 지금보다 더 크게 울렸다. ‘착.’ 같은 소리인데도, 소리가 바닥을 파고들었다. 소선은 그 거실의 한가운데에도 서 있었다. 발밑이 불안정했다. 그때의 자신이 늘 바닥을 확인하던 습관이 몸에 남아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며 금속이 짧게 울었다. 소선은 고개를 돌렸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지금의 소선이 아는 얼굴보다 날이 서 있었고, 어깨가 높았다. 코트의 단추가 부딪히며 딱딱한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거실의 공기를 한 번 훑고, 소선을 보지 않은 채 신발을 벗었다. 발꿈치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단단했다. 예전의 소선은 그 소리만으로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곤 했다. 오늘은 바닥을 보지 않았다. 시선을 높여,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에 두었다.
아버지의 눈이 마주칠 듯 말 듯 스쳤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사람을 보면서도 보지 않는 눈. 소선은 그 눈을 따라 도망가지 않았다. 눈을 피하는 습관이 목 뒤에서 올라왔지만, 발바닥이 바닥을 붙잡았다. 그는 자기 발가락을 한 번 펴고, 다시 바닥을 눌렀다. 그 동작이 몸의 중심을 잡았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소선은 듣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어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목소리의 무게를 지금은 그대로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거칠었고, 손등에는 작은 상처가 있었다. 손가락 관절이 부어 있었다. 그 손이 어디에 놓일지 몰라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피로의 결과처럼 보였다.
소선은 그 떨림을 보며, 자신의 손등 자국을 떠올렸다. 같은 자리의 흔적이 아니어도, 사람의 몸은 각자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를 남긴다는 걸 손끝이 먼저 알았다. 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소선은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어린 태호가 서 있었다. 예전처럼 뒤에 숨지 않았다. 태호는 소선과 같은 높이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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