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름이 흐릿해졌다

by소선
9화. 친구의 이름이 흐릿해졌다.png




도라지의 쓴맛이 혀 뒤쪽에 남아 있었다. 물로 씻어내지 않은 맛은 입안을 얇게 마르게 만들었다. 소선은 싱크대 가장자리에 기대어 손을 다시 한 번 훑었다. 손톱 밑의 검은 기운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비누 거품을 문질러도, 물이 지나가도, 손끝 어딘가에 끈적한 잔여가 붙어 있었다. 유리 볼 위의 접시가 덮여 있고, 그 아래에서 도라지는 소금물 속에 조용히 잠겨 있었다. 부엌 불은 낮춰져 있었고, 거실 쪽 TV 소리는 밝게 흘렀다. 화면 속 웃음은 벽을 타고 부엌까지 번졌다가, 타일 위에서 금세 얇아졌다.


서현은 소파에 반쯤 누워 있었다. 다리를 접고, 발끝을 쿠션에 올린 채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엄지로 화면을 위로 밀 때마다 빛이 얼굴 아래를 스쳤다. TV가 갑자기 소리를 키우면 서현의 눈동자가 잠깐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손안의 화면으로 내려갔다. 소선은 도라지 껍질이 든 신문지를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종이가 접히며 내는 바스락거림이 TV 소리 사이에서 유독 또렷했다.


소선은 거실로 걸어가며 손을 수건으로 닦았다. 젖은 수건이 손등을 스치자 피부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소선은 서현의 옆에 앉지 않았다. 소파 끝, 팔걸이 근처에 잠시 서서 화면을 같이 보는 척하다가, TV를 향한 서현의 고정된 시선을 따라가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요즘… 누구랑 제일 친하니.”


말이 끝나자 거실 천장 쪽에서 에어컨의 미세한 떨림이 들렸다. 벽시계 초침이 그 사이를 꿰뚫듯 착착 박혔다. 서현은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화면 위를 한 번 더 밀었다가, 멈췄다. 손가락 끝이 화면에 닿아 있는 동안에도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대답이 이미 화면 어딘가에 떠 있다는 듯.


“그냥… 다 똑같아.”


서현의 목소리는 낮았다. 문장 끝이 단단하게 닫히지 않고, 공기 중으로 풀려 나갔다. 소선은 “다”라는 단어를 붙잡으려다 놓쳤다. ‘누구’라는 질문에 ‘다’가 돌아오는 모양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물건 같았다. 소선은 TV 소리가 갑자기 커진 순간에도 서현의 입술만 봤다. 입술이 닫히고, 다시 스마트폰 화면으로 빛이 내려앉는 걸 봤다.


“그럼… 점심은 누구랑 먹어?”


질문이 이어지는 방식이 스스로도 서툴게 느껴졌다. 소선은 손가락을 주먹 안에서 말았다가 펴며, 손톱 밑의 검은 기운을 다시 확인했다. 서현은 눈썹을 아주 조금 올렸다. 반응이라기보다는, 화면 속 글자를 더 읽기 위해 눈을 좁히는 동작에 가까웠다.


“그때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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