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탈출

강원도 고성 삼포해수욕장

by글날 스케치MOON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주변의 디지털 음성을 모두 단절시켰다. 태평양과 연결된 동해안의 수평선은 나와 시선이 점점 멀어질수록 그 푸르름이 깊어간다.

4년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반가움이 앞서서였을까? 출발하기 며칠전부터 소소한 몇 개의꾸러미가 캠핑카 구석구석에 빼곡히 찼다. 마침내 2박3일간 3명의 의식주를 챙긴 자동차는 새벽 6시15분 강원도 고성으로 출발했다. 이번 강원도 여행은 우리 가족들에게 어떤 새로운 추억거리를 선물해줄까?

운전석 창문너머 하늘색깔만 보면 이미 마음은 동해바다 앞에 도착한 것 같은데, 현실은 1시간째 서울 강변북로에서 끙끙거렸다. 연휴까지 합쳐진 주말 새벽, 서울살이가 지겨운 도시 탈출자들은 일제히 자동차를 타고 도로로 흘러 나왔다. 멍청한 T-map은 '최단시간 추천' 이라며 구리와 남양주 시내길로 차를 안내했고, 결국 출발 3시간이 지났음에도 춘천조차 도착하지 못했다. 왼다리는 클러치, 오른다리는 엑셀과 브레이크, 발로 피아노 연주를 하듯 나와 남편의 두다리가 7시간 동안 기괴한 변주곡을 연주했다. 휴게소 한번 들어가는 것 조차 명절 대이동 수준의 거대 인파를 연상하게 했고, 휴게소 입구 1km 전부터 차량들의 꼬리가 이어졌다. 심지어 이 어처구니 없는 행렬은 고성에 도착하기까지 지속되어 당초 예상 도착 시간이던 오전 10시를 훌쩍 넘기고 정오까지 지났다. 뭐야 다들 나처럼 고성에 가는 거야? 고성 가는 길에 고생이 굳이 따라온 걸 보니 아마도 이번에 추억거리가 제대로 생기려나 봐.

출발 후 6시간쯤 지났을 시점 쿨쿨 자던 고2 아들이 마침내 깨어나,

"뭐야, 아직도 도착 안 했어? 10시반에는 도착한다며... 엄마 지금 12시도 넘었어. 얼마나 더 가야 해? 나 배고픈데..."

"여기서 아직 한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아. 이거 과자라도 좀 먹을래?"


오는 내내 푸르던 하늘이 드디어 동해안 짙푸른 바다와 맞닿으며 눈이 시원해질 만큼 강렬한 푸른 빛을 내뿜었다. 속초 톨게이트 이후부터 고성으로 올라가는 국도길에서는 창문을 열어 잠시 밖을 응시했다. 푸른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가 들어와 코 끝을 건드렸다. 출발하며 지금까지 느끼던 피로감이 물러가면서 기분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5월의 강원도 바람은 창 밖으로 뻗는 내 손바닥 가득히 만져지다가, 주먹을 움켜지는 순간 포근하던 덩어리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백사장 앞에 놓인 두 대의 카라반, 그리고 그 옆에 자리를 마련하여 담소를 나누던 친구 부부와 또 다른 한 팀의 모습이 보였다. 친구는 우리 차가 멀리서 보이자마자 반색하며 일어나 양손을 머리위로 크게 흔들었다. 무려 4년 만에 만남인데 지난 시간보다 오늘이 더 길게 느껴졌던 건 아마 오늘 여기 오기까지 걸린 7시간의 간절한 기다림이 더해졌기 때문일테지. 친구의 지인이라며 소개받은 가족들도 고성에 자주 캠핑 오는 동네 친구라고 했다. 캠퍼들은 이런 낯선이가 합석한 자리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다. 자연스레 식사와 담소를 나눴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고성의 캠핑을 시작했다.

친구 부부는 초등학교 시절 이후 아들의 훌쩍 자란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언니, 아들 너무 잘 키우신거 아니에요? 벌써 어른이 다 됬네.”

먼 고성까지 함께 온 아들의 마음이 친구 부부에게도 전해졌을까, 자신들의 고마움을 전하며 맛있는 식사와 시원한 음료로 화답했다. 그리움이 채워지고, 또 허기가 채워지면서 그제야 캠핑의 시간도 차곡차곡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생활형 캠퍼로 지내고 있던 친구 가족은 예상대로 단란했고, 서로에게 다정했으며, 머물고 있는 자리 곳곳에 웃음도 많았다. 1년 52주 중 40주(주말)는 캠핑장에서 생활하는 이 대단한 4인가족은 외부적 환경에도 강했고, 본인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와 그 곳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꼈다. 머무는 장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았고, 자녀들과 함께 자신의 몫을 어떻게 실천하고 채워야 하는지를 몸으로 직접 가르쳐주고 있었다.

캠핑의 진가는 어둠의 공기를 만나야 비로소 깊고 진한 밤의 빛이 흘러 나온다. 그 빛은 서로가 나누는 대화의 밀도를 높여주고, 상대의 말소리에 집중하게끔 도와주며, 내면 속 미묘한 감정의 움직임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춘다.

아들은 챙겨온 통기타를 연주하며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 몇 곡을 삼촌들 앞에서 뽐냈다(사실 바닷가에 앉아 기타치고 노래 부르려고 고성까지 기꺼이 놀러 왔다). 예상치 못했던 아들의 장기자랑 덕에 삼촌들의 지갑이 잠금 장치를 풀었다. 또 불러 달라는 깨알 앵콜도 기꺼이 승락하며 아들도 자신의 시간을 즐겼다. 다섯명의 어린 초등생들도 덩치 큰 형(오빠)이 신기했는지 모래사장의 장난감에서 떠나 어른들과 함께 귀를 기울였다. 우리 모두의 캠핑 첫 날은 저 바닷물에서 노니는 파도의 얕은 움직임처럼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캠핑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자세히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오래전부터였다. 대학교 4학년이던 23살, 지금은 남편이 된 그때의 남자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갔던 것이 우리의 첫 텐트 캠핑이었다. 그 이후로 결혼하고 출산 전까지 1년에 한번쯤 캠핑을 다녔고, 아이가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다시 캠핑을 재개했다.

우리는 어린 아들에게 땔감용 장작패기를 알려주고, 부싯돌을 이용해서 나무에 불 붙이기를 알려줬다. 한정된 자원만으로 밖에서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어떤지, 밤에 잘 때는 텐트 안에서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알려줬다. 아이는 추운 겨울에는 어떻게 장작을 태워야 오래 태울 수 있는지를 배웠고, 나무 장작을 태울 때 연기가 덜 나도록 태우는 방법도 배웠으며, 나무 장작불에 어떻게 고기를 구워야 안 태우고 잘 익는지도 배웠다. 마시멜로우를 불과 가까이 몇 초 동안 구워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알았고, 라면은 몇 시에 어떤 그릇에 먹어야 제일 맛있는지, 텐트가 바람에 안 넘어가려면 몇 개의 못을 어디에 어느정도 깊이로 박아야 하는지를 알게 됬다. 빨랫줄은 어느쪽에 걸어두면 좋은지, 불편한 밖에서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 주변에 벌레가 못 오게 하려면 무얼해야 하는지, 바람과 추위는 어떤 방법으로 막아야 효과적인지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줬다. 자기 몸보다 1.5배나 큰 롱패딩을 입고 겨울냄새를 맡으며 모닥불을 피우던 어린 아들은 그 후로도 10번의 겨울과 10번의 여름을 더 보내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아빠보다 더 커진 체격과 힘이 생겼고, 이번에도 그 에너지를 아낌없이 캠핑장에서 쏟아냈다.

20~30대 때의 나도 낯선 풍경과 낯선 언어가 좋았고, 쏼라쏼라 무식한 내 영어를 용감하게 입밖으로 뱉어 낼 수 있는 해외가 좋았다. 낯선 세상과 낯선 문화가 재밌었고, 여행을 계획하는 사전 계획표는 30분 단위로 엑셀칸을 채웠다. 그 무엇보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언제나 행복했다. 지금도 가끔 해외여행이 그리울 때면 영종도 인천공항을 다녀오기도 한다. 공항에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거나, 공항 근처 호텔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공항 가까이 있는 해수욕장에서 비행기의 이착륙을 바라보기도 한다.

여전히 내 기본 성향은 변하진 않았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내 환경이 예전과 조금 달라지며 그제서야 현실에 순응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대학생때는 자전거 짐받이에 텐트 한 채만 싣고는 국내 자전거 여행을 했고, 면허 딴지 채 2년차에 미국 여행에서 렌트카로 자동차 여행을 시도했다. 유럽에 가서는 도착한 며칠을 제외하고 당일에 숙박지를 찾아다니며 여행도시를 움직였고, 혼자 뉴욕을 여행하면서도 현지 호스텔을 예약하며 미국에 놀러 온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방과 키친을 사용했다. 뉴욕 JFK 공항에서 만났던 어떤 중년부부는 내가 끄는 두개의 캐리어와 나를 번갈아 보며,

"혼자 왔어요? 여성분이 대단하시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꼭 조심해서 다니세요"

라고 당부에 당부를 더했다. 회사를 퇴사했던 39살은 여행을 그리 두려워할 나이도 아니었지만, 뉴욕 도심은 생각보다 조금 더 안전에 주의를 해야 할 곳이기도 했다. 회상해보면 센트럴파크에서 지나가다 만난 190cm 정도 장신의 흑인의 눈짓, 맨하탄 절반이 블랙에 갇힌 대규모 정전사태와 지하철 운행 중단, 거리에 나왔을 때 사방에서 울리던 싸이렌 소리 등은 조금 무섭고 아찔한 순간이었고, 숨막힐 정도의 폭염을 지하철과 버스만으로 뚜벅이 여행을 해야 했던 고단함이 집에 대한 그리움까지 야기했다. 가방속에 들어있던 초코렛이 공항 x-ray 검사에 시간을 지체했고, 결국 시카고행 국내선 비행기를 놓친 사건도 당황스러운 에피소드 중에 하나다. 그때 공항직원이 나의 눈빛을 보며 말하길

"Oh, the flight is gone."

여비가 넉넉치 않은 얇은 주머니였으나 새로운 '공간'과 '감각'은 나의 주머니를 두 세배 가득하게 채웠다. 여행내내 나를 둘러싼 낯설음이 도리어 내 안의 활력을 끌어올렸고, 예상치 못한 좌충우돌 상황이 오히려 여행을 더 설레게 했다. 반짝이며 초롱초롱하던 나의 열정은 여행의 몰입을 이끄는 영양제였고,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잘 생각하지 못하던 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됬다며 똑똑해졌다고 착각도 했다. 그러던 내가 '다양하고 낯선 경험'을 우선하던 여행의 초점을 '삶의 쉼표' 방향으로 맞추기 시작했다.

35세의 나이에 간염 바이러스의 발병으로 건강에 큰 위기가 찾아온 남편은 그 후로도 일상 회복을 하기까지 수 년의 시간이 걸렸고, 불완전한 신체는 마음의 회복 탄력성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 역시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지만 일과 가정을 고단하게 움켜쥐던 15년간의 회사생활이 번아웃과 공황장애를 가지고 왔다. 나는 한동안 외부 소통과 모두 단절한 채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캠핑'이란 새로운 이름과 '날것'이라는 다른 형태의 여행이 우리에게 쉼표로서 손을 내밀었고, 나는 주저함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남편이 말하는 캠핑의 목적은 우리가 사는 공간(집)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깨닳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미 캠핑장 내 사이트는 여러 위험 요소에서 상당히 안정적이긴 하지만, 이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경험도 오직 캠핑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또 얼마만큼의 이국적인 여행을 경험하게 될지, 국내외의 캠핑을 즐기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이 소소한 순간들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을 향한 이해, 배려, 공감으로 축적되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데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여행은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 과거의 내가, 현재의 여행을 통해, 미래의 나를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짧은 시간동안 낯선 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이 여행의 전부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경험을 생성시키는 것은 오히려 '관광(Tour)'에 더 가깝다. 여행을 통해 갖게 되는 다양한 관점과 미묘한 감정의 흐름, 그리고 사색의 과정은 나의 그릇을 키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내가 가진 그릇 사이즈에 맞추어 알맞은 양을 올바르게 담아내는 것 역시 여행을 통해서 배우는 귀중한 가치이다. 여행은 좁았던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내면의 변화를 관찰하도록 도와주며, 유연한 삶의 태도와 확장된 가치관을 만드는 기틀을 제공한다.

씨실이란 나의 '태도', 날실이라는 나의 '가치관'이 만드는 내 인생의 카페트가 앞으로 더욱 정갈하고 단정하게 짜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