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전거 여행길
맴맴맴맴 매~~앰
“준비됬어? 그럼 나 앞에서 출발할께!”
“오케이. GO!”
자전거 뒷 안장에 짐꾸러미를 실은 두 대의 자전거는 성북구 미아동 비탈진 내리막길을 출발하며 한순간에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남긴 채 앞으로 직진했다. 10차선 8차선의 서울 시내길을 벗어나는 것 조차 난이도가 높았던 출발길이지만, 22살 동갑내기 커플에게 빵빵거리는 버스와 자동차들은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가장 기본 안전 장구인 헬멧조차 쓰지 않은 용감무쌍한 우리는 서울의 매케한 공기를 가로질러 대한민국 남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충청북도 충주, 총거리는 편도 약 150km, 하루 자전거 이동거리 약 50km, 예상경비 1인 10만원.
중복을 넘어 선 7월 말,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빛은 내가 서있는 주변을 포함해서 도로 위 모든 것을 마치 용암처럼 한 순간에 녹여 버릴 것만 같았다. 하늘은 하얀 도화지에 파란색의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린 듯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했지만, 뜨거운 공기 속으로 흩어져 나온 나의 호흡은 오히려 7월의 온도를 더 올렸다. 8차선 도로는 어느새 2차선으로 바뀌고, 회색의 주변색도 점차 자연의 색으로 바뀌어갔다. 도로 옆 길가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잡풀들이 거센 여름에게 질세라 더 강렬한 청초록색 갑옷으로 온 몸을 둘렀다. 바람조차 멈춰버린 여름날의 공기속으로 매미소리가 더욱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휴가행렬 승용차들 옆으로 묘한 속도감을 느끼며 쉼 없이 페달을 굴렸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위치를 바꾸며 달리던 두 명의 20대 청춘들은 시속 15km의 느릿한 속도를 만끽하며 회색도시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성남, 광주, 곤지암, 장호원, 이천을 지나 종착지인 충청북도 충주로 이동했다.
자동차로만 다녔을 때는 한 순간도 느껴보지 못했던 도로의 경사도가 생각보다 자주 몸을 긴장시켰다. 낮은 언덕의 시작은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엄지발가락을 감싼 얇은 피부조직들은 양말이 뚫어질세라 5개 발가락을 오므린 채 바닥을 밀어냈고, 종아리에 이어 허벅지까지 올라온 묵직한 통증이 온 몸의 긴장을 더했다. 시시각각 저릿한 다리와 등에 짊어진 백팩은 내가 지금 자전거 여행중임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나를 이 통증에서 구해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살랑이던 한여름 바람은 등줄기와 이마로 쉴 새 없이 쏟아 내리던 땀의 흔적들을 슬그머니 훔쳐갔고, 내 몸은 서서히 심한 갈증과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7월 한낮의 날씨를 저항하며 우리는 점차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덧 2박3일동안 자전거와 한 몸처럼 국도 위에 있었던 우리는 조금씩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좁혔다. 하루에 50키로씩 달리기로 했으나 여름철의 더위가 그리 만만치 않았고, 일사병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하루 중 여러 번 태양을 피하는 일도 잊지 않아야 했다.
여름철 국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은 도로에서 팔고 있는 과일 상점과 밀집모자를 쓴 상인들이다. 어느 상인은 과수원에서 갓 딴 복숭아를 팔기도 하고, 또 어떤 상인은 아침부터 가마솥에 찐 옥수수와 감자를 팔았다. 휴가철 교통체증과 더위에 지쳐가는 통행자들에게 이 때 맛보는 잠깐의 간식거리가 휴가의 맛을 더했으리라. 국도 어느 과수원 앞의 좌판에는 빨간색 바구니 위로 탐스런 아오리 사과가 담겨 있었다. 잠시 쉬어가라며 말을 걸어 온 사과의 속삭임에 우리의 발걸음도 그 앞에서 멈췄다. 소복히 담긴 연두색에 끌려 휴식도 취하면서 사과를 한입 아삭하게 베어 물었다. 두 눈이 살짝 감길 정도로 짙은 산미가 혀 끝부터 올라왔고, 사과에서는 7월의 뜨거운 온도와 풋풋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우리의 청춘도 그 아오리 사과처럼 풋풋했을까.
장호원 어느 국도길 위에서 자전거 여행 중인 대학생 2명을 만났는데, 본인들은 동해쪽으로 가는 길이라며 우리의 목적지를 궁금해했다. 10여분의 휴식을 취하며 사진도 한 장 찍고, 다시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던 우리는 서로의 여행에 안녕을 바랬다. 동해로 향해 출발하던 그들의 뒷 모습을 잠시동안 지켜봤다.
“근데, 동해까지는 어떻게 가? 나는 평지도 이렇게 힘든데... 거기까지 가려면 산을 타야 하잖아. 동해로 가려면 미시령을 넘나?”
“몰라, 알아서 가겠지, 난 우리 갈 길이 더 심란해. 지도 좀 꺼내봐, 아, 내 가방에 있었나? 여기가 어딘지 확인 해야겠어."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로 출발하면서 한 명이 잠시 뒤를 돌아봤다. 아마 내가 동해로 가는 두 사람을 염려하듯, 여자인 나의 체력을 염려하던 시선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겁 없이 자전거 여행에 뛰어든 20대들의 오지랖이었겠지.
한참 국도길을 달리던 중 HITE 맥주 이천공장이 나타났다. 몹시 갈증도 나던 차, 생산 공장이 신기해서 한참동안 정문 앞을 서성였다. 지금도 일상에서 HITE 맥주를 마주할 적마다 자전거 투어 때 맥주 공장 앞에 머물던 그 순간이 종종 생각난다.
충주시 입구로 들어서면서 저녁식사를 위해 들어선 고기부페가 기억에 선하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찾았던 그곳은 1인당 8천원이라는 훌륭한 가격으로 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천국이었다. 출발지부터 약 130km를 달리는 동안 별다르게 배를 채우지 못했던 우리는 이 곳에서 꼭꼭 묶었던 허리띠를 풀렀다. 선홍빛 육질속으로 스며든 빠알간 고추장 양념, 불판 위에 올린 고기는 편평하던 단면에 스커트 주름과 같은 자연스러운 물결을 만들어냈고, 지글거리는 소리와 흰 연기를 뿜어내면서 빠르게 익었다. 뱃속의 허기와 달콤한 고기냄새, 그리고 비가 내리는 듯한 사운드가 식당을 가득 채웠다. 양쪽 볼이 터지게 상추에 쌈싸먹던 양념고기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만약에 이 식당이 지금도 그 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꼭 찾아 가보고 싶다.
훗날, 지금은 남편이 된 그 때의 남자친구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 강가에 텐트쳐서 자고, 씻지 않은 쌀로 냄비밥도 해 먹고, 편의점 화장실에서 도둑 세수하고, 그래도 우리 거기서 머리까지는 안 감았던 것 같아.”
“맞아 맞아, 우리 그때 진짜 용감했어. 어떻게 텐트 한 개 덜렁 자전거에 들쳐매고 그 먼 거리를 땡볕에서 달렸을까? 나는 하니가 너무 좋았어. 진짜 남친만 믿고 간 거니깐.”
그 이후 우리는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도치 않았다. 물론 우리에게 자전거보다 더 좋은 교통수단이 생기면서 육체가 편한 여행으로 발전한 이유도 있지만, 4박5일의 여정으로 평생 느껴볼 자전거 여행의 보람을 일순간에 모두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전히 그때 길가에서 맡았던 풀잎 향기와 햇빛의 냄새, 국도 위를 꽉 메운 휴가차량의 열기, 그리고 아오리 사과의 맛이 기억에 남는다. 고기 부페에서 체면치레 없이 허겁지겁 둘이 급하게 식사했던 기억도 오랫동안 회상했다.
어느덧 20년이 지난 2026년 7월의 어느 날, 나는 여전히 2002년 그 해 뜨거웠던 한여름을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여행길이 매우 고됬었으나 목표 달성에 따른 강한 성취감이 고된 육체를 앞섰다. 여담으로는 새삼 우리나라 도로에는 크고 작은 언덕길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깨닳으며 자전거 여행자들을 향한 특별한 시선도 갖게됬다. 20대 한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던 자전거 여행, 아마 앞으로도 살면서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겠지만, 23살의 젊음과 열정이 좋았고, 또 함께 견딘 힘든 경험이 좋았다.
소중한 그 시절의 청춘이 그립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