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없는, 어떤 것들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을 삼키고 있을까?

by수키

“레베카가 밤마다 들려준 이야기들이 용기로 가득했다면, 그건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 위에서 고래를 쫓는 모험을 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용기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레베카는 알기 때문이에요.”

그림바카라 《레베카》는 케이트 비턴 작가의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레베카는 남편의 부재를 마주하며 슬픔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용기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을 삼키며 바람이 흔들어대는 집을, 가족을, 그녀 자신을 지켜냈을까.


나의 엄마는 그림바카라 속의 레베카와는 달랐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일을 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딸 넷을 낳아 키웠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작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내가 대학에 다닐 때쯤의 일인 것 같다. ‘같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두 분이 자주 싸운 장면, 엄마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 아빠가 그런 엄마의 멱살을 잡았던 장면 같은 것들이 몇 장의 사진처럼 떠오를 뿐이다. 그걸 본 내가 무얼 했는지, 화가 났는지, 슬펐는지, 두려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엄마가 다시 내 삶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엄마를 맞았다.


엄마는 어떤 아저씨와 그의 자식들과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내 기억 속 엄마는 한없이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그동안 혼자가 아니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엄마의 생일이나 명절을 챙겨 만나곤 했다. 우리의 만남은 주로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엄마 옆에는 아저씨가, 직사각형의 테이블 맞은편에는 남편과 아이와 내가 앉았다. 아저씨의 말들이 조금씩 장황해질 무렵, 엄마가 아저씨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아빠 얘길 꺼냈다.

“네 아빠는 그래도 청소는 다 해놨어.”

엄마가 갑자기 왜 아빠 얘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눈만 껌뻑거리는 내게 엄마는 설명을 덧붙였다.

“네 아빠는 야근하고 와서도 집 청소를 잘했어.”

엄마의 말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저씨에 대한 불만처럼 들렸다. 의아했다. 엄마의 기억 속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아빠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아빠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집안일과 아이들을 잘 챙기는 바카라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내게 아빠는 그저 폭력적인 사람이었는데. 엄마는 내가 아빠와 만나고 오면 무엇을 먹는지, 요즘 아빠는 뭐 하고 지내는지, 같이 사는 여자와 사이는 좋은지 물었다. 그럴 때면 옆에 있는 아저씨 눈치가 보여 짧게 대답했다.

엄마를 만날 때면 늘 아저씨가 함께 왔다. 아저씨는 네 자매 중에서도 나를 가장 편애했다. 내가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아이도 자신을 잘 따른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그 편애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엄마 아빠의 이혼에 아저씨가 얽혀 있었지만, 지금은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은 엄마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그런 마음을 슬쩍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가 서운해한다는 이유로 늘 같이 나왔다. 그러고는 아빠의 이야기를 묻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자신을 위하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명절을 앞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아빠 집에서 하루 자고 엄마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그 뒤로 하루에 한 번씩 전화가 걸려왔다.

“언제 온다고?” “날짜가 자꾸 헷갈리네.” “아, 맞다. 그때였지?” “그날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점점 바뀌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뭔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명절의 일정은 이랬다. 연휴 첫날 증평에 있는 아빠 집에 간다. 하루 자고 아침에 청주에 있는 엄마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저녁은 서울 시댁에서 먹는다. 이 빼곡한 일정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몇 번을 다시 연락했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전화했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엄마가 가장 보고 싶었던 때는 내가 엄마가 되던 2016년의 여름이었다. 임신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의사의 말에 일을 마친 저녁이면 근처 체육센터 공원에서 만 보씩 걸었다. 배가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두세 번으로 나누어 걸었다. 그런데 그게 탈이 났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갔는데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119 구급차에 실려 평소 진료를 받던 병원으로 향했다. 내 상태를 살핀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겨 바로 입원했다.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다. 다시 몸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야 집에서 꼭 쉬라는 의사의 당부를 듣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버님의 생신 모임으로 가족들과 밖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37주 0일이 되던 날 첫 수술로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그러나 내 품에 안을 수 없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가장 나중에 만들어지는 장기가 폐인데, 그때 의사의 말에 따르면 폐가 다 만들어지지 않아서 자가 호흡이 안되니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출산은 했는데 축하를 받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 몇몇에게만 전화로 알렸다.

“아기 낳았어.” “응, 잘 낳았지.” “난 괜찮아.” “응, 나중에 천천히 보러 오면 되지.”

그때 그렇게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 싶다고 말해도 엄마가 와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병원에 두고 퇴원한 뒤,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그 마음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삼켰다. 삼킨 마음이 쌓일수록 내가 단단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잘 버텨냈다고 믿었다.


그러다 가끔 생각한다. 엄마와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을 삼키고 있을까, 하고.






+ 이야기 나눈 그림바카라

레베카(원제: REBECCA)

케이트 비턴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위즈덤하우스(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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