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다면

템플스테이

by서윤재

축서사에서 제일 가는 보물은 바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축서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이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보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절에서 지낼수록 축서사가 궁금해졌고, 절에 대해 찾아보다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려 대한민국 국가 지정 유산 보물 제995호였다.




구한말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기에는 867년(통일신라 경문왕 7년)에 만들어졌다는 정확한 기록이 적혀 있다고 한다. 고대 불상 가운데 제작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유물은 극히 드물어 문화재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에 유행한 8각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다른 불상에서는 보기 힘든 ‘물결식 옷주름’ 등 개성 있고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 절에 그런 귀한 문화재가 있었는데, 미처 모르고 있었다. 매일 새벽예불을 드리러 대웅전에 가는데, 대웅전에서는 석조 불상이 아닌 개금(改金) 불상(겉면에 정성스레 금박을 입힌 형태)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비도량참법을 하는 보탑선원에 있나 해서 그 곳에도 가봤는데, 역시 석조 불상은 없었다. 그때부터 축서사에서 석조 불상을 찾아다녔는데, 보탑선원 아래에 커피 자판기 위에 그 석조 불상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커피 자판기에 처음 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존재를 알고 나서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때마침 다른 보살님들이 커피를 마시고 계셔서 이 석조 불상이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러자 한 보살님이 그것은 보광전이라는 곳에 있으니 한번 보고 오라고 알려주셨다. 보광전은 대웅전 옆에 있었는데, 공사 중인 건물이라 미처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곳이다. 그 건물 안에 석조 비로자나불이 있었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 절에서 한참을 머물렀는데, 그 보물을 몰라서 못보고 갈 뻔했다.




보광전은 공사 중이라 건물 안의 바닥, 벽, 천장 모두 합판으로 덧대어져 있어 비로자나불좌상밖에는 볼 수 없었지만, 그 좌상 하나만으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알고 보니 축서사 보광전은 화려한 새 전각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이 천년고찰의 역사와 기운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핵심 공간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이 보광전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구한말인 1907년경 일본군이 의병 토벌을 빌미로 축서사에 불을 질렀을 때, 절의 거의 모든 건물이 전소되는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건물이 바로 보광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곳에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현재는 공사 중이지만, 보광전의 인등은 대웅전보다도 인기가 많아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빠르게 마감된다고 한다. 인등이란 전각 벽면에 작은 등(燈)을 달고 그 아래에 가족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일 년 내내 불을 밝히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사 중인 보광전에도 보살님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곤 하셨다. 공사 중이어서 머물기도 어려운 공간이지만, 보살님들은 기도에 필요한 깔개와 불교에서 절을 할 때 사용하는 방석인 좌복 등을 직접 가져와 108배를 올리셨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온 불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불상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존재 앞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만약 부처님 무릎에 손이라도 대면 과거 통일신라시대로 타임리프라도 할 것 같은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 불상 앞에 서 있으니, 천년의 세월에 비하면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소한 고민들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걱정들도 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회사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이 휴식은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행복하지만, 이 휴식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지 막막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지금은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한참 돈을 벌고 커리어를 쌓으며 업무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일해야 할 이 시기에, 그냥 도망치듯 쉬어버리고 템플스테이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을까. 나중에 이 휴식을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쉬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더 두렵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성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회사도 다니지 않고 쉬고 있는 것 또한 그 기준에서 제대로 어긋나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것도 늘 불편했는데, 왜 퇴사를 하고 쉬고 있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맞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늘 인생에 대한 정답을 찾고 싶었는데, 천년의 세월을 품은 이 고요한 목격자 앞에 서고 보니 정답을 찾으려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과연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내가 선택한 삶이 과연 정답인지 누군가 시원하게 알려줄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있을까. 인생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제 그만 정답을 찾기로 했다. 대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석조 불상을 보러 보광전에 다녀오라고 하신 보살님을 자판기 앞에서 다시 만나 석조 불상을 보고왔다고 말씀드리니, 보살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그래서 부처님이 널 보고 웃으셨니?"




그런데 나는 이때도 부처님의 웃는 모습을 봤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보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부처님의 미소를 봤던 것일까. 순간 또 불안해졌다. 왜 나는 부처님의 미소가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못 본 것인지, 나만 무언가를 놓치고 지나친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이것이 내 패턴이다. 남들이 했다고 하면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막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면서도 결국 하지 않으면 나만 하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진다. 하지만 부처님의 미소에 대해서만큼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 부처님의 미소를 보지 못한 것 같다는 찝찝함이 남아있었지만, 보살님께는 솔직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보살님께서는 부처님의 미소가 보이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정답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대신 축서사의 석조비로자나불은 무조건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다만 오직 일념(一念)으로 108배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108배를 올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한 번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일념으로 108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나는 새벽예불에 가서 예불이 끝나면 108배를 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딴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직 나에게는 일념으로 108배를 할 만큼 간절한 소원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살님들 사이에는 축서사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 지극정성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 단지 쉬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절에 온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축서사는 접근성이 좋은 곳이 아니어서 일상적으로 오고 가기에 편한 절은 아니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일부러 찾아와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저리도 간절하기에 이 먼 곳까지 찾아와 기도를 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다보니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빌고 싶을까.




회사에 다닐 때의 소원은 언제나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돈의 힘으로 모든 고민거리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안락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과거에는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낙산사까지 찾아가 로또 당첨과 경제적 자유를 간절히 빌고 온 적도 있었다. 내가 그토록 일확천금을 갈망했던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게 느껴지는 내 일상을 돈으로 단숨에 덮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 해 세상 앞에 떳떳하지 못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회사에서 더 이상의 진급이 어려울 것 같아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해도, ‘그래도 내 통장에는 10억이 있으니까’라는 든든한 방패막 하나만 있다면 떳떳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자산만 있다면 내 삶의 모든 결핍과 문제들이 한없이 작게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경제적 자유와는 거리가 먼 상태가 된 지금, 전국에서 오신 보살님들의 간절한 지극 정성 앞에서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든다. 실제로 내 손에 그 돈이 쥐어진다고 하면 행복해질까? 그 행복은 과연 오랫동안 지속될까? 그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길게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글이었다. 나는 내 글이 내가 있을 자리를 마련해주길 바랐고, 내 글이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어주길 바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썼다가 글쓰기를 포기하는 것을 반복했지만, 다시 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의 공간에 무언가를 쏘아 올리는 것 같았다. 내가 쓴 글이 아무에게도 도달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글을 짝사랑하면서 글쓰기가 응답해주길 기대했고, 번번이 체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글쓰기가 나에게 당장 보답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글쓰기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글을 쓰는 순간 행복해하는 나를 이제는 그냥 인정해주기로 했다. 과거에는 글을 써서 유명 작가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기를 바란 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런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다. 그저 지금은 에세이 한 권과 소설 한 권을 끝까지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언젠가 꼭 완결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금까지는 해보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다. 계속 글을 써왔지만, 바카라으로 만들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동안 가보지 못했던 글쓰기 세계의 가장 먼 곳까지 가보고 싶어졌다. 바카라 한 권 분량의 글을 끝까지 써서,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만 같다. 단편적인 글이 아니라 목차에 맞게 끝까지 써보는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생각만 해도 벅차오른다.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자,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글을 쓰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중에는 이 소원이 간절해져서 결국 초까지 켰다. 초를 켤 때 소원을 적는 란이 있었는데, 그곳에 ‘에세이와 소설 한 편을 끝까지 집필할 수 있는 신념과 용기’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을 투고까지 하고 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내 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