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템플스테이

by서윤재

템플스테이 자원봉사자로 지내면서 절에 오신 다른 분들께 어떻게 축서사에 오게 되었는지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어떤 절에 가야 하냐고 AI에게 물어봤더니 축서사를 알려줘서 왔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셨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기대했던 답변은 절에 아는 분이 있어서 왔다거나, 누군가의 소개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부산 등 멀리서 오시는 분들은 특정 스님과의 인연으로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도 누군가의 소개나 특별한 계기가 있어 이 먼 절까지 오게 된 것이냐고 물으셨던 것이다.




자원봉사자로 축서사에 머무는 동안 절에서 만난 분들은 늘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자원봉사를 하며 머무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은 모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반드시 알게 될 날이 올 거라며, 지금은 그저 편안히 잘 지내보라고 말해주셨다. 그런 말씀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단순히 누군가를 소개받아 만나게 되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의 일이 일어나기까지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필요하고, 그 모든 것이 만나야 비로소 하나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먼 축서사까지 와서 장기간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하셨다.




축서사는 내가 지금까지 다녀왔던 다른 사찰과는 분명히 다른 곳이었다. 사찰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그동안 여러 절을 찾아다녔다. 절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와불사나 백일기도를 안내하는 플래카드인 경우가 많았다. 축서사에 처음 왔을 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낯설었다.




축서사에서 만난 특별한 풍경 중 하나는 '혜성카페'였다. 축서사에는 방문객들이나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무료 자판기 커피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자판기의 이름은 무려 '혜성카페'이다. 이 자판기는 보탑선원 아래에 위치하는데, 혜성스님이 운영하기 때문에 혜성카페라고 불리며, 이 절의 유일한 카페이다.




커피는 한잔에 겨우 100원인데, 자판기 앞에는 100원짜리가 한가득 들어있는 그릇이 있다. 자판기를 이용할 때에는 바로 이 그릇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 넣으면 되기 때문에 사실상 무료 자판기이다. 스님께서 자판기 안에 들어온 동전을 다시 꺼내 그릇에 담고, 커피나 율무차 같은 차의 관리도 직접 하신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까지도 차로 20분 정도를 가야 하는 곳이기에, 이런 음료 자판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깊은 산속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것을 마련해 두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템플스테이 방사를 청소하면서 나온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주차장 옆 쓰레기장까지 가야 했는데, 쓰레기를 들고 오가면서 이 자판기 앞을 지나곤 했었다. 가끔 여유가 생기면 이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뽑아 마시며, 드넓은 바다의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오는 소백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저 행복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자판기 주변에는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도록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그곳에 앉으면 멋진 소백산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며 지내는 동안 느낀 것은, 이 절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는 것이었다.




템플스테이 팀장님께서는 매일 찾아오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절에 대해 설명해 주는 투어를 진행하셨는데, 나는 자원봉사자였기 때문에 절에 온 지 한참이 지나도록 투어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 머물다 보니 오히려 절에 대해 궁금해져 어느 날 투어에 함께했다. 템플스테이 팀장님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축서사는 깊은 산속에 자리한 작고 가난한 절이었다고 한다. 남아 있던 전각도 많지 않았고, 해발 800m의 깊은 산중에 있어 눈이 많이 오면 길이 끊겨 고립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던 축서사에 무여스님이 오셨다. 무여스님은 이곳의 맑은 기운을 알아보고 누구나 와서 마음을 쉴 수 있는 수행도량을 만들겠다는 뜻을 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뜻에 공감한 사람들이 모이고 시간이 쌓이면서, 한때 작고 황량했던 산중의 절은 지금의 축서사가 되었다.




거대한 아미타삼존불과 사리보탑, 여러 전각과 선원이 들어선 지금의 축서사를 바라보며, 과거 이곳이 작고 가난한 절이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거대한 화강암 벽면에 높이 13m, 폭 15m 규모로 새겨진 대형 마애불인 아미타삼존불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불상이 6년이라는 오랜 작업 기간을 거쳐 2019년에 완공되어 봉안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사찰에서 보는 거대한 불상이나 석조물은 모두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축서사의 아미타삼존불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거대한 불상에도 누군가의 오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무여스님은 이 거대한 불상을 제작할 조각가를 오랫동안 설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름난 조각가에게 제작을 의뢰했지만 거절당했고, 스님은 돈과 시간은 상관하지 않으니 꼭 만들어달라며 오랜 시간 설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 탄생했고, 지금도 문수산의 거대한 바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축서사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무여스님은 축서사가 천년도량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의 축서사를 조성해 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금의 축서사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극적이었다. 2003년 축서사의 보물인 괘불탱화를 보수하던 중 내부에서 붉은빛을 띤 희귀한 진신 적사리 2 과가 발견되었다. 이를 모실 탑을 짓기로 결심한 무여스님의 정성에 감동해, 2005년 미얀마 사리박물관에서는 부처님의 불두사리 108 과를 축서사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인 진신사리는 2007년 완공된 5층 사리보탑에 봉안되었다. 이후 미얀마 불교계와의 인연으로 추가로 기증받은 진신사리는 대웅전 뒤편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아미타삼존불의 내부에도 봉안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축서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직접 모시는 적멸보궁이 되었다. 수많은 신도들과 함께 조금씩 비용을 모아 불사를 이어가며 지금의 축서사를 만들어온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눈앞에 펼쳐진 축서사의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축서사는 화려한 볼거리나 기복 기도보다 수행과 참선에 중심을 둔 사찰이다. 대중교통으로는 쉽게 닿기 힘든 문수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전국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축서사는 우연히 오게 된 곳이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와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축서사의 역사와 무여스님이 천년도량을 꿈꾸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온 과정까지, 이곳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짧게 다녀가는 여행이었다면 축서사의 이런 이야기들을 이렇게까지 알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며 축서사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탑과 아미타삼존불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은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바다와는 멀리 떨어진 봉화산 자락이지만, 해발 800m에서 겹겹이 펼쳐진 소백산맥을 내려다보면 마치 바다의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일몰 무렵 구름에 둘러싸인 소백산맥을 바라보고 있으면, 수묵화 속에 그려진 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산은 끝없이 겹쳐 있었다.




축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범종소리였다. 특히 해 질 무렵 문수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정말 웅장하고 맑았다. 종을 칠 때 종 주변에 서서 그 육중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리의 파동이 몸 전체를 관통해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웅장한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잠시 멈추고, 번뇌와 잡념도 함께 멀어지는 것 같았다.




불가에서 종을 치는 것은 어둠에 갇힌 대중을 깨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의 범종은 무여스님이 종소리에 만족하지 못해 두 번이나 종을 깨고,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완성했다고 한다. 두 번이나 다시 만들 정도로 좋은 소리를 원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특별한 종소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는, 축서사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한 번쯤 다시 이곳을 찾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소리였다.




축서사는 해발 800m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 구름 속에 둘러싸여 있기도 했고, 때로는 발아래로 펼쳐진 구름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맑은 날 밤이면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가득했다. 새벽예불을 가는 길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수많은 별에 감탄하곤 했다. 너무 좋은 풍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가끔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늘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축서사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으로 하루가 충분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현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래 지내도 괜찮은 걸까 생각했다. 아직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는데, 템플스테이를 하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