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집에서 백수로 지내며 칩거하기 시작한 뒤로는 더 이상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 절에 오니 아무도 화장을 하지 않아 나 역시 꾸미지 않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그동안 메이크업을 했던 것도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절 생활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새벽에 일어나 양말만 신고 준비물을 챙겨 대웅전으로 향했다.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외모에 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
절에서는 활동복을 입었기 때문에 템플스테이 기간 내내 같은 차림으로 지냈다. 그래서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활동복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바지와 조끼 차림이었다. 안에 입는 티셔츠만 매일 갈아입으면 되었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편했다. 나중에는 잘 때도 조끼를 벗지 않을 정도로 하루 종일 같은 차림으로 지냈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양말만 신고 대웅전으로 가서 새벽예불을 드리고는 했다. 새벽예불을 마친 뒤 청소를 하러 가기 전에 선크림을 슥슥 바르고,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저녁 공양을 먹기 전에 샤워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슬롯생활을 하면서 외모를 가꾸는 데 강박에 가까운 마음이 생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고, 결점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으며, 내가 가진 전문성과 좋은 이미지를 외모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일 역시 슬롯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외모 관리를 하지 않으면 슬롯생활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헤어스타일도 여신머리라 불리는 그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분기마다 미용실에 갔었다.
미용실에 가면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스타일이 만들어졌지만, 머릿결은 계속 손상되어 갔다. 그렇게 상한 머릿결을 관리하기 위해 머리를 감을 때마다 헤어에센스와 상한 머릿결을 개선하는 제품들을 바르고, 정성스레 드라이를 해줘야만 했다. 정돈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왔으나 실업자가 되니 그런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절에 오기 전 과감히 머리를 잘랐다. 상한 부분을 전부 자르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외모 가꾸기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싶었다. 가장 저렴한 미용실을 찾아가 상한 부분을 모두 잘라냈다. 그러고 나니 손으로 빗질을 해도 걸리는 것이 없어 한결 시원해졌다. 속이 후련했다. 간신히 묶일 정도의 길이가 되자 그냥 머리카락을 늘 하나로 묶고 다녔다.
절에서는 정말 편하게 있었다. 거울도 거의 안 보고 살았다. 체중계도 없어서 매일같이 측정하던 체중도 재지 못했다. 그 덕분에 다이어트라던가 외모관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하루를 더 충실하게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했던 것 같다. 절에서는 외모보다 맡은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해내는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수행과 예불에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청소 업무도 손에 익자 다른 사람들이라면 손대지 않을 곳까지 청소하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방 안에 있는 작은 서랍장을 들어 그 밑에 있는 먼지까지 다 쓸고 나면 마음이 행복해졌다. 그저 눈앞의 할 일만 생각하면서 매 순간 평온하게 지냈다. ‘바로, 지금, 여기’라는 말처럼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도무지 그 말 뜻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절에서는 비가 오는구나, 해가 지는구나, 타종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며 그 순간에 머물 수 있었다. 공양에 맛있는 메뉴가 나오면 그걸로 기쁘고, 비가 오면 마음을 적시는 듯한 빗소리에 기뻤다. 누가 떡이라도 주면 그것에 한없이 기뻐하고, 매일같이 바뀌는 하늘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였다.
그런데 이런 평온함은 절 안에서만 가능했다. 그 평온한 마음은 지인들의 연락이 올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전 온라인 게임 동료나 대학원 선배, 아니면 지인으로부터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연락이 오면 불안해졌다. 절에서 지내면서 행복했지만, 이 휴식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계획했던 휴식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주어진 휴식이었기에, 이 시간을 진심으로 쉬어보겠다는 것조차 성인으로서 해야 할 슬롯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카라임감이 강한 편이어서 늘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회사에 다니며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일을 그만두는 것은 늘 꿈꿔왔지만, 실제로 내 선택으로 퇴사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휴식은 강제로 주어졌기에 비로소 맞이할 수 있었던 휴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휴식이기도 했다.
14년 동안 IT개발자로 일했고, 그전에는 2년 동안 인턴을 전전하며 일했다. 대학생 때부터 빨리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에 스펙을 더 쌓아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빨리 취업해서 돈을 모으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나씩 따라잡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다.
회사에 취업한 뒤에는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며 살았다. 작고 오래되었지만 대중교통 이용이 수월한 곳에 주택을 마련했고, 자동차를 샀다. 최소한 석사학위는 있어야 회사에서 진급할 수 있다고 해서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회사생활이 힘들었지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전에 관둘 용기는 없어서 늘 파이어족을 꿈꿨다. 그런데 파이어족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기반은 마련하지 못했고, 예상치 못하게 회사에서 방출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였다.
지인들의 연락은 감사했지만, 나의 이런 상황을 전달하자니 스스로도 떳떳하지 않았다. 한창 일해야 할 40대 초반의 나이에 남들 다 하는 것을 따라가며 살다가 어느 순간 그 흐름에서 도태되었다. 퇴사 후 칩거를 하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템플스테이를 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오랫동안 일해왔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인들에게 이 휴식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오면 나는 흔들렸다.
나조차도 이 휴식이 끝나면 다시 회사를 다닐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한참 돈을 벌어야 할 시기에 이렇게 쉬어도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지금 나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지만, 미래의 내가 지금 이 휴식을 보낸 것을 후회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IT 개발 일은 이제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IT 개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년 후, 아니 6개월 후의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실업자가 된 것에 집중하다 보면 인생이 크게 실패한 것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휴식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회사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회사 일에 매몰되어 내 전부를 다 쏟아붓고, 하지도 못할 퇴사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퇴사를 하면 템플스테이를 길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퇴사 후의 삶을 기다리며 살았다. 퇴사 후에야 비로소 하고 싶은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에 다닐 때의 나는 늘 지금이 아닌 미래의 삶을 생각하며 살았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언젠가 퇴사를 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지금의 시간은 그저 견뎌내야 하는 시간처럼 여겼다. 그래서 회사에서의 시간이 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죽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시간을 죽은 시간이라고 구분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되돌아보면 회사에 다닌 덕분에 내 일상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IT개발자로 일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 일을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회사를 오랫동안 다녔기 때문에 석사학위 취득 같은 새로운 도전들이 가능했다. 힘겹게 버텨내며 개발자로 일했던 시간이나 억지로 남들의 기준을 맞추려 애썼던 노력들이 무의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 14년의 시간 속에서 잘하고 싶었던 마음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남들의 기준을 맞추려 애썼던 시간들 역시 지금의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살아보는 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꿈꿔왔던 미래였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여기까지 이끈 것은 바로 나 자신일 테니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보내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더 충만하게 보낼 것인가,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는 이 귀한 시간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고, 지금처럼 불안한 시기가 인생의 전성기일 수도 있다.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을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