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삼성가 딸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by소임

“괜찮아, 난 뭘 해도 잘 살 거야.”


대학 시절, 여름 방학을 앞두고 지원했던 연구실에서 탈락 소식을 들은 후, 이제 뭐 할 거냐는 남자친구의 질문에 나는 1초도 고민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쥐뿔도 없는 대학생이었던 내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자 남자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한마디 했다.


“누가 보면 삼성가 딸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수상할 정도로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학과를 다니면서도 취업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부족함은 없었지만 매우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성과가 뛰어난 동기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것을 보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늘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막연히 나는 잘 살 거라는 믿음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어느 날, 문득 그때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내가 잘 살 거라고 확신했을까?’


부잣집 딸도 아니고, 특별히 촉망받던 학생도 아니었던 내가 어떻게 그토록 걱정 없이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을까. 잠든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문득 어린 시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소임이는 복이 많아. 복이 많아 잘 살 거야. 이 세상 최~~~~~고루 잘 살 거야.”




"어휴, 할머니가 얼마나 너 웅변대회 나가야 한다고 하시던지. 어쩔 수 없이 웅변대회 내보냈잖아."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릴 적 할머니는 내가 말을 너무 잘한다며 웅변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하셨단다. 할머니께서 나를 대회에 내보내려고 하셨다는 것 자체가 조금 생소한데, 다들 다니는 유치원도 울고불고 못 가겠다고 해서 뒤늦게 유치원에 다닌 내가 웅변대회라니. 엄마 역시 조금 의아했지만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웅변대회에 나를 출전시켰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대회에서 너무 긴장해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덜덜 떨다 내려왔다고 한다.


대회 이후 할머니의 웅변 이야기는 쏙 들어갔지만 그 후에도 할머니는 나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셨다. 할머니 눈에 나는 뭐든지 잘하는 아이였다. 내가 검은 비닐봉지 끝에 줄을 묶고 막대에 매달아 유령이라며 온 집 안을 휘젓고 돌아다닐 때도 할머니는 "우리 소임이는 똑똑해서 뭐든지 잘해!" 하셨고, 추운 겨울 엄마가 사다 주신 복면처럼 얼굴을 뒤덮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오징어! 오징어 모자다!"라고 하면 "우리 소임이가 머리가 좋아서 이름도 잘 지어" 하셨다. 집안일을 하시는 할머니 옆에 앉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릴 때면 할머니는 "우리 소임이는 말을 워낙 잘해서 뉴스 아나운서 해야 되겠네~"라며 엉덩이를 토닥이셨다. 할머니 세상 속 나는 언제나 옳았고 뭐든 잘했다.


할머니는 내가 잘 살 거라는 말도 매우 많이 해 주셨는데 그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 소임이는 복이 많아. 복이 많아 잘 살 거야"였다.


내 머릿속에는 지도도 나침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길치인 나는 어린 시절 손바닥만 한 유치원에서도 길을 잃어 화장실에 갔다가 반으로 돌아가지 못한 적이 빈번했다. 성인이 되고도 나의 길치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아직도 내가 십 년 이상 살고 있는 이 도시의 길을 외우지 못한다. 오죽하면 미국에 잠깐씩 놀러 왔던 내 친구가 나보다 길을 더 잘 알겠는가.


어린 시절,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걱정스레 한숨 쉬셨다.


“잘 모르면 외우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되는데, 얘는 알려고 하지도 않아. 관심도 없어.”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엄마의 핀잔이 행여 내 몸에 박히기라도 할까 얼른 내 등을 털어 내듯 토닥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만둬~! 길 좀 모르면 어때. 우리 소임이는 원래가 기사 딸린 차 타고 다닐 팔자라 그래. 그냥 놔둬.”


애 둘 엄마에 온라인 게임인이 된 지금도 나는 길치이고 길에 관심이 없다. 여전히 길치 중 최고 길치인 나는 어딘가를 가려면 남들보다 일찍 출발한다. 길을 두 번 정도 잃을 것을 계산에 넣어야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처음 면접을 보던 날에는 늦을까 봐 걱정되어 면접 전날 근처에 미리 도착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도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도 어찌나 창의적으로 길을 잘못 드는지, 정말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가끔 이런 나의 단점과 마주할 때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라 결국 피식 웃고 만다.


"그래, 이것 좀 못하면 어때. 나는 정말 기사 딸린 차 타고 다닐 팔자라서 그런가 보다."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듯 나에게도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들 때문에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 나의 장점은 할머니의 말씀을 통해 받은 귀한 자산 같다.


할머니 말씀대로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받은 할머니의 사랑이 내 마음 깊이 새겨져 아직도 할머니의 온기를 가득 품고 살고 있으니 진정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게다가 할머니의 말씀처럼 기사 딸린 차를 타고 다니니 나의 큰 단점조차 단지 조그마한 불편함으로 만들어준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친절한 기사, 내비게이션을 틀고 도시를 누빈다.


나의 내비 언니는 내가 백 번을 틀려도 절대 화내지도 짜증 내지도 않고 친절하게 다시 알려 주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엄지를 척 치켜세우고 하얀 앞니를 보이며 활짝 웃으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주문을 이제 스스로 외운다.


"나는 복이 많아 잘 살 거야. 이 세상 최~~~~~고루 잘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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