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엄마, 나 어젯밤에 너무 무서운 꿈을 꿔서 잘 못 잤어요."
둘째 아이가 울상을 하며 품에 안겼다.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둘째는 사춘기가 시작되려는지 요즘 부쩍 꿈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말을 한다.
"저도 밤에 잠이 안 와서 잘 못 잤어요."
첫째 아이가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눈을 비비며 옆에 털썩 앉아 내게 기댄다. 아기 때부터 눕히면 자던 둘째와 달리 첫째는 잠에 무척 예민했다. 정말 "등 센서"라는 것이 존재하는 건지 첫째는 아기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겠다고 버둥거렸고 나는 꼼짝없이 포대기에 첫째를 동여매고 왔다 갔다 작은 원룸을 종종거렸다.
"하... 자장 자장..."
아이를 재우는 건지 아이가 나를 재우는 건지 너무 피곤해 눈도 못 뜨며 집 안을 걸어 다니던 그때가 생생하다. 아이가 잠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인내심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우리 우리 아기는 코코 쟁이래. 세상에서 코코 제일 잘하는 아기..."
피곤에 찌든 쉰 목소리로 실제와 정반대인 희망 사항을 노래로 만들어 불러 주며 나는 힘겹게 첫째 아이를 재우곤 했다. 첫째는 만 3세까지 나와 함께 잤고 둘째가 태어나던 해부터 분리 수면을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잠에 예민한 편인데, 첫째를 키우면서 하도 잠을 설치고 깨다 보니 누적된 수면 부족 때문인지 그 후 한동안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으로 바뀌었었다.
다들 잠든 고요한 새벽, 두 시간마다 깨는 첫째를 들쳐 업고 거실을 걸어 다니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까지 새벽에 할머니를 깨운 나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할머니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신 거야..."
우리 아이들 탓을 할 것 없는 것이 나 역시 잠에 굉장히 예민한 아이였다. 아직도 다섯 살 무렵 꿨던 용이 승천하는 꿈이나 초등학교 때 꾸었던 귀신 꿈이 생생히 기억난다. 꿈을 꾸는 날에는 어김없이 벌떡 일어나 나는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 할머니. 나 꿈꿨어."
그러면 할머니는 몇 초도 안 지나 벌떡 일어나 앉으셨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얼굴이었지만 짜증 한 번,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나를 옆에 눕히고 토닥토닥 나의 등을 쓸어내리셨다.
"괜찮어. 울 애기 괜찮아. 다시 자. 코 자."
어느 정도 크고 난 후에 나는 언니와 방을 같이 쓰고 할머니께서는 반대편 작은 방으로 옮기셨지만 나의 새벽 기상은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 나 쉬 마려워."
"할머니 나 배 아파."
"할머니 나 잠이 안 와."
다양한 이유로 나는 곤히 잠든 할머니 방문을 벌컥벌컥 열었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나를 따라 화장실에 같이 가거나 문을 활짝 열고 화장실에 있는 나를 기다려 주셨다. 어릴 적엔 내가 깨면 할머니도 당연히 자연스레 잠이 깨지는 건 줄 알 정도로 할머니는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그냥 들어가 자라고 언성을 높이시지 않았다. 조금 큰 후에도 나는 이불에 실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혹시 누가 볼까 얼른 할머니 방으로 뛰어갔다.
"할머니 나 쉬했어."
그러면 할머니는 얼른 일어나 화장실에 데려가 나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뽀송하고 따뜻한 이불에 눕혀 주셨다. 나는 잠자리뿐만 아니라 배앓이도 자주 하고 머리도 자주 아팠던 기억이 나는데 특히 밤에 자주 그랬다. 내가 또 배앓이를 했던 어느 날, 할머니는 화장실 문지방에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며 내 손을 연신 주물러 주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할머니는 뜨끈한 바닥에 나를 눕히고 밤새 내 배를 문질러 주셨다.
"할머니 손은 약손, 소임이 배는 똥배.
할머니 손은 약손, 울 애기 배는 똥배."
그렇게 할머니 손의 온기를 느끼다 스르륵 잠이 들면 어느새 밝은 아침이 되곤 했었다. 내가 아플 때도 무서운 꿈을 꿀 때도 잠이 안 올 때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내 옆에 계실 것을 알기에 나는 언제나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걱정 없이 지내던 나의 어린 시절은 할머니께서 귀향하신 후 바뀌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한동안 거의 매일 가위에 눌렸는데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머리가 묵직해지고 목이 뻣뻣해지며 무언가 내 몸 위에 있는 불쾌한 느낌 그리고 귓가에 들렸던 다양한 소리들. 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가 그렇게 자주 가위에 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를 잃은 충격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가위에 눌릴 때면 괴로워하며 누워 있는 것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예전처럼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아 나를 지켜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에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이후 성격도 조금 어두워졌는데 아마도 그때 나는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물론 점차 나아지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당시 힘들었던 시간이 기억난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보이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고 나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무서웠다. 언제나 불을 꺼 놓고 계신 할머니였어서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건 똑같았지만, 할머니가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다른 기분이었다.
그 후 엄마는 하교 후 나와 함께 있어 주실 분을 구하셨고 친척분들도 다녀가셨지만, 오히려 나는 우리 할머니의 빈자리가 더 많이 느껴져 심통이 났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가 귀향하신 후 엄마는 강아지와 새, 금붕어 같은 다른 애완동물을 키우며 빈자리를 메워 주려 했던 것 같다. 엄마 말씀으론 나 혼자 집 문을 열고 들어간 건 고작 몇 번 밖에 없었다고 하셨는데 왜인지 내 기억 속에는 굉장히 오랜 기간이었던 것처럼 선명하다. 그만큼 어린 나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나 보다.
할머니가 귀향하신 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언제나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고 언제나 같은 질문을 했다.
"할머니 언제 와?"
방학 때는 우리가 할머니 댁에 놀러 갔고 학기 중에는 할머니께서 가끔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그때마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할머니가 오늘은 무슨 간식을 해 놓으셨을까 궁금해하며 신나게 집에 온 기억이 난다. 서울로 오실 때마다 할머니는 할머니만 한 배낭 안에 짐을 바리바리 들고 오셨다. 떡을 해 주기 위해 방앗간에서 만들어온 쌀가루, 곡식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주전부리들까지 할머니는 가방 한가득 사랑을 꽉꽉 담아 오셨다.
할머니는 절을 다니셨기 때문에 가끔씩 절에서 동그란 절 사탕을 가져오셨는데, 한입에 넣기에는 크기가 굉장히 커서 할머니께서 식칼로 탁! 쳐서 쪼개 주시곤 했다. 그 사탕은 잘못 먹으면 혀를 베이기 십상이라 나는 조금씩 오물오물하며 집어 먹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센베이도 자주 사 오셨는데, 나는 그중에 흰색 생강 맛이 나는 센베이를 특히 좋아했다. 씁쓸 달달한 맛이 그냥 슈퍼에서 사 먹는 과자들과는 다른 색다른 맛이었다. 나는 지금도 애늙은이 입맛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어릴 때부터 할머니 음식을 먹고 커서 그런 것 같다.
할머니가 계신 기간에 나는 매일이 천국 같았다. 학교에서의 시간이 너무 아깝고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시는 날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할머니가 가시는 날은 우리 집에서 특급 비밀이었다. 가시는 날을 알면 내가 울고불고 할머니 다리를 붙들고 난리가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가시는 날은 잘 알려 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가시고 난 후에는 꼭 전화해 곧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몇 살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화장실 문지방에 앉아 할머니 방을 보거나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며 기도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고 하늘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할머니와 제가 언제나 함께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가 저를 두고 멀리 가지 않게 해 주세요.
저와 평생 같이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할머니랑 같이 있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할머니가 내 옆에 영영 없는 세상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 세상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도는 정말 순수한 어린아이의 기도였던 것 같다. 부모의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진 못하지만 그저 순수한 진심 어린 기도.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닌 기억이 없는데 내가 어디서 기도하는 법을 보고 따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도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한다. 우리 소임이 건강하게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고 한다. 기도 내용은 달라졌지만 나 역시 언제나 소중한 마음을 담아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할머니께서 후회 없는 삶을 사시기를.
할머니께서 나눠 주신 넘치는 사랑만큼, 할머니 역시 온몸 구석구석 사랑의 온기로 가득 채워져 외롭지 않으시기를...
비 오는 창 밖을 보며 오늘도 마음 깊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