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 추억이야기
"할머니, 누가 나고 누가 할머니 증손녀게?"
나는 할머니 눈앞에 자신 있게 내 딸의 아기 때 사진을 들이밀었다.
"엄마도 잘 구분 못 하더라."나는 기대에 찬 얼굴로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눈이 잘 안 보이시는 할머니는 작은 눈으로 연신 유심히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보셨다.
"누구야, 소임이야?"
"아니! 할머니 증손녀 예진이! 나 어릴 때랑 똑같이 생겼지, 할머니?"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내 딸 사진과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금은 다르지만 내 딸은 내가 어릴 때와 무척 닮았다. 어떤 사진은 내가 봐도 혹시 내 어릴 때 사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은 것들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빠는 가끔씩 내 딸에게 "소임아"라고 부르기도 하셨다. 말수 없고 빈말 못 하는 우리 언니마저, "진짜 너 어릴 때랑 닮았다. 근데 너 어릴 때보다 예뻐."라고 하기도 했다. 나 어릴 때보다 예쁘다는 말에 "흥!"이라고 했지만 사실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낫다는데 기분 안 좋을 부모가 있을까.
할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뻐, 소임이가 최고로 이뻐."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내 외모에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은 아닌데 할머니는 왜 그렇게 예쁘다는 말을 달고 사셨을까 가끔 궁금했다. 할머니는 진심이셨을까? 아니면 손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셨을까? 할머니가 적어도 열 번은 넘게 한 이야기가 있다.
"으찌나 이쁜지. 글쎄 신문사에서 우리 애들 사진을 다 찍어 갔잖아."
할머니는 마치 어제 일인 양 매번 의기양양하게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 언니와 할머니와 함께 남산에 놀러 갔을 때 어떤 기자들이 할머니를 쫓아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무서워 나와 언니를 할머니 뒤에 숨기자, 그 기자들이,"저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저희 00신문 기자예요. 애들 사진 한 장 찍을게요, 할머니."하더란다. 할머니는 미심쩍어하며 옆으로 비켜 주셨는데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나와 언니를 두고 사진을 찍어 갔고, 그 사진이 바로 다음 날 우리가 보던 00일보 첫 장에 올라왔다고 한다.
그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스크랩해 액자에 넣어 놓은 그 신문 기사 속 사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사진 속에 우리 언니는 은행나무 아래 서 있고 나는 앉아서 은행나뭇잎을 만지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소임이 유치원에서 원장 선생님이 전화가 다 왔어. 이거 소임이 아니냐고. 그리고 데리러 가 보니까 유치원에 그 사진을 다 붙여 놨어."할머니는 마치 내가 미스코리아라도 된 듯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나는 새삼스레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내가 이쁘다고 해?"
할머니는 무슨 그런 이상한 말이 있냐는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이쁘니까 이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니가 봐 봐, 엄청 이쁘지. 귀엽지."
나는 괜히 할머니 말에 딴지를 걸었다.
"나 어릴 때 사진 보니까 별로 안 예쁘던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이신다.
"안 이쁘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이쁘고 그랬지. 볼도 손도 오동통한 게 엄청 귀엽지! 얼굴도 손도 엄청 귀염상이었어. 그러니께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어 갔지, 안 그래?"
할머니는 약간 삐진 듯이 언성을 높이셨다. 이렇게 할머니와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옆에 이제는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와 나의 딸이 들어왔다.
"할머니, 그럼 예진이(딸 이름)가 더 이뻐, 내가 더 이뻐?"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내 옆에 앉은 딸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할머니는 못 들으셨는지 그냥 다른 곳을 쳐다보며 고개만 살짝 끄덕하셨다. 그리고 증손녀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예진이 이쁘지? 엄마 닮아 이쁘지. 공부도 잘허지?"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딸은 간식을 먹겠다며 주방으로 가고 나도 간식을 챙겨 주러 일어나려는 순간, 할머니는 다급하게 나를 향해 속삭이셨다.
"니가 더 이뻤어. 예진이 보다 이뻤어. 그렇게 귀엽게 생길 수가 없어."
그전에 했던 질문을 잊고 있던 나는 무슨 말씀인가 잠시 멈추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증손녀 앞에서 차마 손녀가 더 이뻤다고 말씀은 못 하셨지만 할머니는 속마음을 꼭 말씀하고 싶으셨나 보다. 내가 박장대소를 하자 할머니도 옆에서 삐뚤어진 큰 앞니를 보이며 크게 웃으셨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는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원천이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아무 조건 없이 사랑만 줄 수 있을까? 내 기억에 할머니는 나에게 바라는 점이 없었다. 내가 땡깡을 부려도 숙제를 안 해도 다리 아프다 졸리다 징징거려도 할머니는 무조건 내 편에 서 계셨다. 그리고 예뻐해 주셨다. 나는 아직 손주를 볼 나이가 되려면 멀었기 때문에 한참 후에나 알게 되겠지만 나에게도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할까 의심이 되기도 했다.
목숨만큼 귀하고 귀중한 우리 아이들이지만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특히 내가 너무 바쁘거나 아픈 시기에는 더 그랬던 것 같다. 손주는 무엇이길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식보다도 더 이쁘고 사랑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감정이, 그 사랑의 원천이 몹시 궁금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원천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에게와는 다르게 엄마에게는 사랑 표현을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에게 이쁘다고 한다든가 엉덩이를 두들긴다든가 한 기억은 없다. 당연할 것이 엄마는 성인이고 나는 아이였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나는 큰 착각을 했다. 할머니는 당연히 엄마보다 나를 더 사랑할 거라는 착각. 그것이 착각이라고 깨닫는 데까지는 거의 30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나와 손주들을 보기 위해 엄마는 한 번씩 내가 사는 미국에 오시곤 한다. 오실 때마다 바리바리 음식들, 옷 등을 싸 오셨는데 그중 내가 가장 반겼던 것은 할머니께서 직접 기르고 짰다던 참기름이었다. 참기름이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그 참기름만 있으면 밥만 먹어도 너무 맛있었다. 더 많이 가지고 오면 좋겠지만 할머니께서 크게 밭일을 하시는 게 아니라 수확해 기름을 짜면 일 년에 딱! 한 병만 참기름이 나온다고 했다. 엄마가 가시고 나서도 나와 남편은 그 참기름이 너무 맛있어 조금이라도 오래 먹기 위해 소중히 아껴 먹었다. 그 당시 첫째만 있을 때였는데, 우리 첫째가 간장 계란밥에 그 참기름을 비벼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나는 조금만 뿌리고 아끼고 아껴 첫째가 먹는 밥에만 듬뿍 뿌려 주곤 했다.
그 후, 첫아이와 함께 할머니 댁에 방문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에 할머니께 이야기했다.
"할머니, 유준이(아들 이름)가 할머니가 보내 준 참기름을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 우리도 그 참기름이 너무 맛있어서 항상 아껴 먹어. 감사해요, 할머니."
그러자 할머니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뒤에 있던 엄마를 쳐다보셨다. 엄마는 조금 당황한 듯이 얼른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무슨 챔기름? 내가 느이 엄마 준 거? 엄마 준 챔기름?"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엄마를 위해 딱! 한 병 나오는 참기름을 매년 짜시고 그 딱! 한 병 나오는 귀한 참기름을 엄마만 먹으라고 준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 귀한 참기름을 입에 대지도 않고 죄다 본인 딸들에게 줬던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그 참기름을 한방울도 먹지 않고 다 손주들에게 준 엄마에게 조금 섭섭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때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나를 제일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어찌 보면 자식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살면서 지금까지 할머니가 가장 이뻐하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꽤나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서른이 다 됐을 때에도 그 사건은 꽤나 충격이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나를 제일 이뻐한 이유도 내가 엄마의 딸이라서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말에 내리사랑이라고 하더니만, 옛말 틀린 것 하나 없었다. 결국 내가 엄마를 통해 건네받은 참기름처럼 할머니는 엄마에게, 엄마는 나에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 후 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쯤, 할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역시나 나의 안부를 가장 먼저 물으시고 나의 걱정을 가장 먼저 하셨다. 그러나 통화가 끝날 때쯤, "엄마 미국 가면 잘 보살펴줘."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우리 엄마 역시 임신한 내 몸 걱정뿐이었어서 산후조리를 하러 오시는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에게 또 다른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산후조리를 해 주러 미국에 오시는 엄마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말씀에 '역시 할머니가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엄마였나 보다'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어디선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엄마를 만들었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면 이보다 현명한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자신의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손녀를 사랑했다.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손녀를 보며 행복해할 딸을 위해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이뻐, 최고루 이뻐"라고 하시지 않으셨지만 나는 할머니가 주신 사랑을 통해 엄마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을 느낀다.
나 역시 손주가 태어나면 내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