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신부의 지갑은 어떻게 단계적으로 무너지는가
저는 결혼할 때 꽤 많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았고, 결혼반지도 사지 않았습니다. 몇박 며칠짜리 해외여행도 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청첩장에 넣을 사진도 AI로 합성한 이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 이건 부모님에게 들키는 바람에 결국 사진관에 가서 제대로 찍기는 했지만요. 여기까지 읽고 "이 사람은 좀 심한데?" 싶으셨다면 맞습니다. 저도 결혼식 비용에 관해서는 꽤 극단적인 표본이라는 점을 미리 인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결혼식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엄청난 가격 비교를 한 것은 아닙니다. 더 싼 스튜디오와 반지를 찾아나선 게 아닙니다. 그냥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안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꽤 강력한 방법이었습니다. 300만 원짜리를 250만 원에 사면 50만 원을 아끼지만, 안 사면 300만 원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도 발견했습니다.
결혼식에서는 무언가를 하나 사기 시작하면 그다음 물건까지 비싸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분명 처음에는 예식장 하나를 골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드레스가 올라가고, 꽃이 올라가고, 사진이 올라가고, 앨범이 올라갑니다.
왜 결혼식은 돈을 쓰면 쓸수록 더 비싸질까요?
평소에 30만 원짜리 물건을 산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선이어폰 하나를 사면서 30만 원을 쓴다면 꽤 고민할 만합니다. 인터넷에서 가격도 비교하고, 리뷰도 찾아보고, 쿠폰도 뒤집니다. 3만 원만 싸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에서는 조금 달라집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2026년 9월 현재 전국 예식장 계약금액의 중간값은 1,600만 원쯤이고, 스드메 패키지는 약 300만 원입니다. 예식장과 스드메만 합쳐도 이미 2천만 원에 가까워집니다.
이 상태에서 "30만 원만 추가하면 꽃 장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30만 원이 갑자기 작아집니다.
물론 30만 원은 여전히 30만 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꼭 그렇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30만 원을 통장에 있는 돈과 비교했지만, 지금은 2천만 원짜리 결혼식과 비교합니다. 2천만 원과 나란히 놓인 30만 원은 고작 1.5%입니다.
"전체 금액에 비하면 얼마 안 되네."
이 생각이 시작되면 계좌가 사르르 녹기 시작합니다. 30만 원을 쓴 다음에는 20만 원이 더 작아 보입니다. 거기에 50만 원이 하나 더 붙어도 "결혼식이 원래 이 정도는 들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돈을 언제나 똑같은 돈으로 보지 않고 용도와 상황에 따라 따로 계산하는 경향을 심적 회계라고 부릅니다. 여행 중의 10만 원과 평소의 10만 원이 다르게 느껴지고, 결혼식 준비 중의 30만 원과 평소의 30만 원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결혼업계가 30만 원의 가격을 낮춘 것은 아닙니다. 그 옆에 2천만 원을 갖다 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것은 돈의 크기만 작아지는 게 아닙니다. 하나를 비싼 것으로 고르면 다른 것까지 싼 것을 고르기 어려워집니다. 소위 깔맞춤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예비 신랑신부의 속이 타들어가는 것이죠.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어느 날 멋진 새 옷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새 옷을 입고 보니 집 안의 낡은 물건들이 갑자기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자가 마음에 안 들고, 바카라상도 마음에 안 들고, 주변의 물건들이 새 옷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는 멀쩡히 쓰던 물건들을 하나씩 더 좋은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물건 하나가 소비를 끝내기는커녕 새로운 소비를 불러온 것입니다.
훗날 소비 연구에서는 이런 현상을 디드로 효과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도 한 물건을 산 뒤 그와 어울리는 다른 물건을 갖추려는 세트 완성 성향이 추가 구매와 연결되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결혼식은 디드로에게 새 옷을 열 벌쯤 입혀놓은 행사에 가깝습니다.
좋은 예식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기본 꽃 장식이 조금 초라해 보입니다. 꽃을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드레스가 아쉽습니다. 드레스도 한 단계 올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사진을 제대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을 올리니 앨범도 싼 것으로 하기 아깝습니다.
각각 따로 보면 전부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처음에 이 모든 것을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예식장 하나만 원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예식장을 고르는 순간 예식장의 품격에 어울리는 결혼식이 필요해집니다. 처음 산 물건이 다음 물건의 기준가격까지 올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의 옵션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드레스에 50만 원을 더 쓰는 것은 드레스에만 50만 원을 쓰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드레스와 어울리는 사진, 장식, 메이크업의 기준까지 조금씩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가장 위험한 것은 마지막에 고르는 옵션이 아닙니다. 바로 첫 번째 결정입니다.
한 번 결혼식의 체급을 올려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싼 것을 고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해집니다. 비싼 물건을 사는 데 돈이 들고, 싼 물건을 고르는 데 설명이 필요한 이상한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소비를 한 번 더 밀어주는 말이 등장합니다.
"여기까지 했는데 본식 스냅은 해야 하지 않을까?"
"드레스까지 좋은 걸 골랐는데 앨범에서 아끼면 아깝잖아."
"평생 한 번 하는 결혼식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나씩 떼어놓으면 이상한 말입니다.
앞에서 예식장에 1천만 원을 썼다는 사실은 앞으로 사진에 100만 원을 더 쓸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쓴 돈은 돌아오지 않고, 앞으로 쓸 100만 원이 가치가 있는지만 따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칼같이 끊어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돈과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인 일일수록 중간에 무언가를 빼는 것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이미 투입한 돈 때문에 다음 선택까지 영향을 받는 현상을 그 유명한 매몰비용 효과라고 합니다.
결혼식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평생 한 번.
이 말은 정말로 강력합니다. 결혼식은 대부분 다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뭔가 하지 않았다가 후회할 가능성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죠.
그러면 계산이 묘하게 기울어집니다. 안 해서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망설여지면 하는 쪽으로 갑니다. 물론 그 '조금'이 열 번 반복되면 전혀 조금이 아니게 되는 거지만요.
부모님이나 친척, 하객의 시선까지 들어오면 더 복잡해집니다. 나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도 "그래도 이건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람이 한 명씩 등장합니다. 물건 하나를 빼기 위해서는 가격표와 싸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기대와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식 비용이 커지는 과정을 업체의 바가지 하나로만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업체가 가격표를 내밀기 전부터 소비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업그레이드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에서 가장 끈질긴 영업사원은 가끔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하면서 쓴 가장 강력한 절약법은 가격 비교가 아니었습니다. 스튜디오 촬영을 더 싼 곳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안 했습니다.
양가 부모님이 "평생 살면서 한 번뿐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 부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한 번뿐인 사치를 안 하면, 두고두고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식이 중요하고,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고, 멋진 드레스를 입는 데 큰 즐거움을 느낀다면 거기에 돈을 쓰면 됩니다. 돈은 원래 자신에게 가치 있는 곳에 쓰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결혼 준비를 할 때는 한 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추가하려는 50만 원짜리 옵션이 정말 50만 원짜리 선택인지 말입니다.
그 선택 때문에 다른 것까지 한 단계 올리고 싶어진다면 실제 가격은 50만 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항목 하나를 통째로 없애면 그 물건의 가격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오던 소비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돈을 적게 쓰는 사람은 반드시 가격 흥정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에는 기꺼이 돈을 쓰고, 무엇은 처음부터 게임에서 빼버릴지를 정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결혼식 비용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기술은 협상이 아니라 삭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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