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더 유용한데 왜 굳이 선물을 할까?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될까?

가끔 선물을 골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생일이나 집들이처럼 빈손으로 가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뭘 사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옷은 취향을 타고, 화장품은 뭘 쓰는지 모르겠고, 먹을 것을 사자니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되나?


생각해보면 돈만큼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10만 원짜리 향수를 선물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그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돈이었다면 반값인 5만 원에도 사지 않았을 물건입니다. 저는 10만 원을 썼는데 친구가 얻은 가치는 5만 원도 안 됩니다.


반면 현금 10만 원을 주면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향수를 사고 싶으면 향수를 사고, 치킨을 먹고 싶으면 치킨을 먹으면 됩니다. 카드값을 내도 되고 저축해도 됩니다.


그렇다면 해결바카라은 간단해 보입니다. 선물 대신 돈을 주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인류는 이미 돈이라는 아주 편리한 물건을 발명했습니다. 이제는 송금 버튼 몇 번이면 몇 초 만에 돈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생일선물을 사고, 집들이 선물을 들고 가고, 명절이면 선물세트를 주고받습니다.

돈이 훨씬 유용한데 왜 굳이 선물을 하는 걸까요?


어쩌면 선물은 처음부터 돈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 돈은 거래를 끝내고, 선물은 관계를 이어간다

식당에서 10만 원짜리 밥을 먹었다고 해보겠습니다.

제가 밥을 맛있게 먹고 카운터로 가서 10만 원을 냈습니다. 이것으로 거래는 끝입니다. 식당 주인은 다음 달 제 생일에 10만 원을 돌려줄 필요가 없습니다. 저 역시 식당 주인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돈의 굉장한 장점이죠. 얼마짜리 서비스를 받았는지 계산하고 그만큼 돈을 지불하면 서로 주고받을 것이 사라집니다. 돈은 복잡한 관계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줍니다.


그런데 선물은 조금 이상하게 작동합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을 받으면 다음번 친구 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결혼식은 더 노골적입니다. 친구가 제 결혼식에 축의금 10만 원을 냈습니다. 몇 년 뒤 그 친구가 결혼합니다. 얼마를 내야 할까요? 아마 많은 사람이 10만 원을 떠올릴 겁니다. 실제로 축의금은 누가 얼마를 냈는지 엑셀로 기록해두는 경우도 있죠. 나중에 상대방의 경조사가 생겼을 때 참고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계약서는 없습니다. 친구가 생일선물을 주면서 상환기일을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축의금 봉투에 연 3%의 이자가 붙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뭔가 남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돌려줘야 한다는 부채의식입니다. 선물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공짜는 아닌 셈입니다. 돈을 지불하면 채무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선물을 받으면 아주 느슨한 채무 하나가 생깁니다. 언제 갚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갚을 필요도 없습니다.

생일에 받은 선물은 다음 생일의 선물로 돌아갈 수도 있고, 결혼식 축의금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 한번 도와주는 것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갑니다. 돈은 거래를 끝내는 데 좋고, 선물은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데 좋습니다.



2. 선물은 꼭 친교의 의미로만 주고받는 게 아니다

오늘날은 선물을 받고 비슷한 가격의 답례를 하지 않았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선물의 상호성이 훨씬 강했던 과거 슬롯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선물은 그냥 주고 끝나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동등한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받았다면 받은 쪽에도 그에 걸맞게 답례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서로 선물을 주고 다시 돌려주는 과정 자체가 두 사람이 우호적인 관계이며 서로 대등한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상대방이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비싼 선물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포세이도니오스가 남긴 켈트족에 관한 기록에는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을 받은 귀족들이 등장합니다. 선물의 가치가 너무 커서 도저히 그에 걸맞은 답례를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비싼 물건을 공짜로 받았으면 횡재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관습에서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을 받는 것은 단순히 비싼 물건 하나를 공짜로 얻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등한 답례를 할 수 없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는 뜻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셈입니다.

"이걸 받아. 넌 어차피 나한테 이만큼 갚지 못하겠지만."


선물이 갑자기 호의가 아니라 도발이 됩니다.


상대가 준 것보다 더 좋은 선물로 답례하면서 위세 경쟁을 벌이는 슬롯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상대방은 무리해서 더 비싼 답례를 하거나, 자신이 아래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아예 관계를 깨는 선택지 사이에 몰릴 수 있습니다.


이런 선물의 논리는 서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동아시아의 조공 관계에서도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왕조에는 후왕박래(厚往薄來)라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후하게 주고 적게 받는다는 뜻입니다. 주변국이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면 황제는 그보다 후하게 물품을 내려주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졌습니다.


처음 들으면 조금 이상합니다. 황제라면 힘이 가장 센 사람인데 왜 굳이 더 많이 돌려줬을까요? 바로 그 행동 자체가 위계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가 바치는 물건을 탐내서 받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가져온 것보다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

주는 쪽의 여유가 곧 권력의 표현이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1785년 청나라 건륭제는 조선이 정기적인 조공 외에도 축하나 감사의 뜻을 전할 때마다 공물을 계속 보내자 이를 그만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청 조정에서는 이미 이런 경우 공물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조선은 계속 예물을 갖추어 보냈고, 받아들이지 않은 공물이 쌓이기까지 했습니다.


참 묘한 장면입니다.


조선은 신하 된 예를 다하겠다며 계속 가져다주고, 황제는 천자의 위신에 맞게 적게 받고 많이 베풀겠다며 이제 그만 가져오라고 합니다. 조선이 계속 예물을 갖추어 보내면 청나라 역시 황제의 위신에 걸맞게 그보다 후한 하사품을 내려야만 합니다. 조선에서 들어오는 공물이 늘어날수록 청나라 입장에서도 돌려줘야 할 물품과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품위유지를 하려고 자꾸 적자를 보는 상황이 마뜩찮았을 겁니다.


서로 많이 받으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더 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셈이죠.


앞서 본 사례와 방향은 반대입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을 던지는 것이 상대를 아래에 놓는 방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위계가 이미 정해진 조공 관계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돌려줄 수 있는 쪽이 우위임을 보여줬지요. 방향은 반대지만 원리는 비슷합니다. 누가 더 많이 줄 수 있는가가 곧 관계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감각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갑자기 300만 원짜리 시계를 선물했다고 생각해보면 됩니다. 기쁘기 전에 이런 생각부터 들 것 같습니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주지?"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마 이런 생각이 따라올 겁니다.

"나중에 뭘 해줘야 하는 거지?"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담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상대가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치게 비싼 선물을 한다면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정도를 줄 수 있는데 너는 이 정도를 돌려줄 수 있나?"

선물이 경쟁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좋은 선물은 무조건 비싼 선물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해야 합니다. 선물은 공짜 같지만, 받는 사람에게 답례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떠넘길 수도 있습니다.



3. 돈은 가치를 너무 정확하게 보여준다

어차피 선물의 가격을 신경 쓰고, 비슷한 수준으로 돌려주고, 때로는 누가 더 많이 주는지를 가지고 관계의 위계까지 표시한다면 그냥 돈을 주고받는 편이 훨씬 간단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돈으로 바꾸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지난 2025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신라 천마총 금관 복제품을 선물한 적이 있었죠. 한국 측은 금관이 지도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정상회담 직전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비판하는 'No Kings' 시위가 대규모로 열리던 때였죠.


덕분에 외신들은 이 선물에 꽤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특별한 선물이라며 감사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번 바꿔 생각해보겠습니다. 한국 정부가 금관을 준비하지 않고, 그 금관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만큼 달러를 봉투에 넣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넸다면 어땠을까요?

"대통령님, 이거 가지십시오."

아마 외교 현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는커녕 이게 무슨 농담이냐는 반응부터 나왔을 겁니다. 심하면 선물이 아니라 뇌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하죠? 금관 대신 같은 금액의 달러를 줬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경제적인 효용은 오히려 높아집니다. 그런데 선물로서의 가치는 박살납니다.


돈은 가치를 너무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금관에는 한국의 역사, 지도자의 권위, 상대방에 대한 예우 같은 여러 의미를 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만 달러를 주면 1만 달러입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이런 의미가 담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라는 말이

"당신에게 1만 달러를 지급합니다."로 바뀌어버립니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친구가 하루 종일 이사를 도와줬다고 해보겠습니다. 고마워서 10만 원짜리 고기를 사주면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는 친구를 붙잡고 현금 10만 원을 건넨다면 어떨까요.

"오늘 고생했다. 이거 받아."

좋아하며 받는 친구도 있겠지만, 친구 간에 무슨 돈이냐며 손사래치며 꺼려하는 친구도 있을 겁니다.


10만 원짜리 식사와 현금 10만 원은 가격으로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현금을 주는 순간 친구의 호의에 가격이 붙습니다. 오늘 네가 나를 도와준 노동의 가치는 10만 원이다. 본래 호의였던 행동이 갑자기 거래가 됩니다.


상품을 사고팔 때는 가격이 명확할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는 가격이 너무 명확해서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선물은 그 가격을 한 겹 가려줍니다. 친구에게 10만 원짜리 밥을 사더라도 우리는 그 식사의 가격과 친구의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맞춰보지 않습니다.


생일에 7만 원짜리 선물을 받았다고 다음 생일에 반드시 7만 원짜리 물건을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충 비슷한 수준이면 됩니다. 그 애매함이 중요합니다.

돈은 가치를 정확하게 표시하기 때문에 유용하고, 선물은 가치를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돈보다 못해서 살아남았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돈이 선물보다 유용한 것은 맞습니다. 무엇으로든 바꿀 수 있고, 보관하기도 쉽고, 상대방의 취향을 잘못 짚을 위험도 없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사고파는 세상에서 돈은 거의 모든 것을 밀어냈습니다. 쌀을 들고 가서 신발과 바꿀 필요도 없고, 제가 가진 물건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가격만 정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선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선물이 돈보다 못해서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은 너무 정확합니다. 10만 원을 주면 정확히 10만 원을 준 것이고, 10만 원을 받으면 정확히 10만 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돈은 서로 주고받을 것을 계산하고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탁월합니다.


선물은 반대입니다. 가격을 조금 흐리고, 언제 돌려줘야 하는지도 흐리고, 무엇으로 돌려줘야 하는지도 흐립니다. 10만 원짜리 선물을 받았다고 정확히 10만 원짜리 선물을 다음 달 25일까지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다음 생일에 선물을 하나 하고, 결혼하면 축의금을 내고, 집들이에 초대받으면 휴지라도 하나 들고 갑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정산되지 않은 호의가 사람 사이를 계속 오갑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기도 하고, 누가 더 많이 줄 수 있는지를 두고 체면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참 비효율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비효율 때문에 선물은 돈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합니다. 돈은 값을 매기고, 정산하고, 관계를 끝냅니다. 선물은 값을 흐리고, 갚을 것을 남기고,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래서 돈이 아무리 편리해져도 선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돈은 빚을 갚는 데 탁월하고, 선물은 빚을 남기는 데 탁월합니다.




참고문헌

Graeber, David. Debt: The First 5,000 Years. Brooklyn: Melville House, 2011.

Miller, William Ian. Humiliation: And Other Essays on Honor, Social Discomfort, and Violence.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 pp. 15–16.

Waldfogel, Joel. “The Deadweight Loss of Christma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83, No. 5, 1993, pp. 1328–1336.

『청고종실록(淸高宗實錄)』, 건륭 50년(1785) 정월 관련 기사.

『정조실록』, 정조 9년(1785) 관련 기사.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헌혈한 사람한테 돈을 주면 혈액부족은 없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