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쓸 권리도 줘야 하지 않을까?
"이번 달 용돈이야. 네가 알아서 써."
아이가 3만 원을 받았습니다.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사고, 친구와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별일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게임에 3만 원을 몽땅 써버렸습니다.
"너 용돈 다 어디에 썼어?"
"게임에 현질했어!"
"뭐? 그걸 거기다 다 썼어?"
한바탕 혼이 난 뒤, 아이는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깁니다. 한달 치 용돈을 단숨에 써버렸으니 뭔가 잘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알아서 쓰라고 했기에 정말 알아서 썼더니 혼이 났으니까요.
용돈이란 건 분명 아이에게 준 돈입니다. 정말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갔다면 아이가 어디에 쓰든 아이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돈을 주고도 사용처를 묻고, 때로는 화까지 냅니다. 아이 입장에선 부조리도 이런 부조리가 없겠죠. 어쩜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잘 아느냐 하시면, 제가 어릴 때 같은 이유로 혼나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이미 준 돈인데 왜 부모는 여전히 그 돈에 간섭할까요?
가장 쉬운 대답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물건을 사지는 않았는지, 돈을 너무 빨리 써버리지는 않았는지, 조금이라도 저축은 했는지 궁금합니다. 용돈을 주는 이유 자체가 돈 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인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영국 부모 30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데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용돈을 언제 줄지, 돈을 다 써버렸을 때 어떻게 할지 같은 규칙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축은 장려하고, 아이들끼리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은 막는 편이 좋다고 보는 부모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말하는 "네가 알아서 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이라기보다 매번 엄마 아빠에게 허락을 받지는 않아도 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네 돈이야. 네가 골라 써."
하지만 그 뒤에는 말하지 않은 문장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단,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이는 돈을 받으면서 자유까지 받았다고 생각하고, 부모는 어느 정도의 제한적인 자유만 줬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어느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서로 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돈은 선물처럼 건네지만, 실제로 다루는 방식은 선물과 조금 다릅니다.
회사에서 어느 부서에 1억 원의 예산을 줬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돈을 어디에 쓸지는 부서가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서장이 "우리 부서 돈인데요?"라며 스포츠카를 사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쓸 권한은 넘겼지만, 돈의 목적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돈도 이와 비슷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3만 원을 주는 것은 단순히 현금을 넘기는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분하고, 지금 살 것과 나중에 살 것을 고르고, 한정된 돈을 나눠 써보라는 뜻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눈에는 게임에 용돈을 전부 써버린 아이가 단순히 '자기 돈을 쓴 것'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예산을 엉뚱하게 집행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용돈을 '주는 돈'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맡긴 돈'처럼 생각하는 셈입니다. 부모가 용돈을 바라보는 심리에는 소유권 이전과 교육을 위한 위임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용돈을 줘서 얻고 싶은 건 아이가 고른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의 판단력이니까요.
그런데 판단력을 가르치려면 조금 곤란한 문제가 생깁니다.
판단은 원래 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용돈을 받자마자 다 써버렸다면 다음 용돈을 받을 때까지 돈이 없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합니다. 친구들이 간식을 사 먹을 때 못 사 먹을 수도 있습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배울 수 있습니다.
부모가 옆에서 백 번 "계획적으로 써야지"라고 말하는 것보다 용돈을 다 써버리고 돈이 없어보는 경험이 훨씬 강하게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와 돈 이야기를 하고, 아이가 어떻게 돈을 쓰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이후의 건강한 돈 관리 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썼어?"라는 질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그런 데다가 돈 쓰지 마", "앞으로는 내가 허락한 것만 사"에서 아이가 뭔가 부조리함을 느낀다는 게 문제죠.
"왜 그걸 사고 싶었어?"
"다음 용돈 날까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할래?"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저는 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등하교에 쓰라고 주신 버스비를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는 데 썼다가 한달 내내 2km 남짓한 등하굣길을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용돈보다 더 목적이 분명한 돈이었으니 잘 썼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른 셈입니다.
부모는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지출을 부모가 하나하나 결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쓰는 사람은 아이인데 결정은 전부 부모가 한다면, 아이가 배우는 것은 돈 관리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허락받는 법이죠.
아이에게 절대로 돈을 잘못 쓰게 하고 싶지 않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용돈을 아예 주지 않으면 됩니다.
부모가 돈을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물건만 직접 사주면 됩니다. 낭비할 일도 없고, 충동구매도 막을 수 있고, 게임에 돈을 몽땅 써버릴 일도 없습니다. 대신 아이가 직접 결정할 일도 사라집니다.
그러면 용돈을 아주 넉넉하게 주면 어떨까요?
용돈은 무조건 많이 준다고 해서 금융이해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오히려 중간 수준의 용돈을 받은 학생들의 금융이해력이 가장 많은 용돈을 받은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돈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가 돈을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고, 직접 돈을 관리해본 아이들이 더 좋은 돈 관리 습관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용돈을 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낭비와 후회까지 허용한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월초에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월말에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샀다가 며칠 뒤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 지출이나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박이나 불법적인 물건처럼 애초에 허용할 수 없는 것에는 분명한 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작은 실수까지 부모가 대신 막아준다면 용돈은 더 이상 연습용 돈이 아닙니다. 용돈은 아이가 큰돈을 다루기 전에 작은 돈으로 실패해볼 수 있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곧바로 아이를 운전석에서 밀어내고 부모가 대신 핸들을 잡아서는 안 되겠죠
돈은 아이가 쓰고, 부모는 물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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