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이야기가 들립니다.
학교에서 왜 투자를 가르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과격하게 나가면 학교는 쓸데없는 것만 가르치고 정작 돈 버는 법을 안 가르친다든가, 학교야말로 금융문맹을 만드는 곳이라든가, 국가는 국민들이 투자로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자산시장이 한창 좋을 때만 유독 자주 들린다는 점입니다. 주식도 부동산도 잘 오를 때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 시대에 뒤처진 선택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자산시장이 크게 무너지고 나면 학교에서 왜 투자를 가르치지 않느냐는 불평도 신기할 만큼 조용해지죠.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국가가 국민들을 가난에 묶어두길 원할 리가 없습니다. 국가 입장에선 양도소득이든 금융소득이든 사람들이 투자해서 세금을 내면 이득이거든요. 국내 산업과 자본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국가가 국민을 의도적으로 금융문맹으로 만든다는 음모론은 편의주의적인 설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투자를 함부로 가르치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널리 인용되는 투자전략 하나를 인용해보죠.
"미국의 대표 기업들에 골고루 투자하는 펀드를 매달 꾸준히 사 모아라."
금융투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들어보셨을 조언이죠? 워렌 버핏과 존 보글이 개인투자자에게 권하는 투자 방법이고,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와 논리도 많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매우 강건한 투자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 문장을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넣는 순간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왜 한국 학교에서 미국 주식 사라고 가르치죠?"
"요즘 같은 시대에 코스피를 사라고 가르치는 게 맞습니까?"
"미국 주식만 가르치는 건 너무 편향된 거 아닌가요? 전 세계에 분산해야죠."
"주식만 투자입니까?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훨씬 중요한데요?"
"집이 없으니까 금융자산 투자로 먼저 집 살 돈을 만들어야죠?"
"굳이 부동산 투자까지 필요할까요? 월세 살면서 주식해도 되는데?"
아마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각 주장에 동의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분이 계실 겁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한국에선 교육에 대해서 누구나 한마디씩 하고, 투자에 대해서도 누구나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 둘이 만나는 순간 슬롯가 합의할 수 있는 '모범적인 투자교육'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어려워지죠.
투자의 세계에는 분산투자와 집중투자, 패시브와 액티브, 가치주와 성장주, 기업가치 분석과 차트 분석처럼 서로 다른 방법이 공존합니다. 워렌 버핏은 소수의 뛰어난 기업에 집중했고, 그가 높이 평가했던 존 보글은 평생 저비용 인덱스펀드를 강조했습니다. 누구 한 명만 옳았던 것도 아닙니다. 자산시장은 슬롯의 축소판과 같아서 돈을 벌고 잃는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많거든요.
문제는 학교가 슬롯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된 내용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데 있습니다.
구구단이나 지구의 공전에는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투자에는 돈이 걸려 있습니다.
학교가 특정 투자방법을 모범적인 방법으로 소개하는 순간부터 금융회사와 투자업계, 학계와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끼어들 여지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논란을 피하기 위해 완벽한 중립만 추구하면 이번에는 주식, 채권, 펀드, 보험의 특징을 줄줄 외우는 수업이 되기 쉽습니다.
학생들은 정작 자기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모르면서 '채권은 정부나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권이다' 같은 문장만 외우게 되는 것이죠.
옳으신 말씀.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투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선행 지식이 필요합니다.
복리 개념만 해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국 지수와 등비수열을 만나게 됩니다.
분산투자가 왜 위험을 줄이는지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수익률의 공분산과 상관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자산 두 개를 섞었는데 왜 전체 위험이 줄어드는지 제대로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금세 고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을 넘어갑니다.
물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수식으로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학생에게는 비유와 일상적인 사례로 설명하면 됩니다. 실제 교육도 원래 그렇게 시작해서 점차 정교한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다만 투자에서는 조금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 이해한 곱셈구구는 시험에서 몇 점을 잃는 걸로 끝나지만, 잘못 이해한 투자는 실제 돈을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투자는 안전하다", "분산투자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 "주식은 결국 우상향한다"처럼 입문자를 위해 단순화한 설명이 어느 순간 투자자의 확신으로 굳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르치자니 대부분의 학생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된 투자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꽤 난감한 문제입니다. 저도 투자는 평생교육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합리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투자 이야기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할까요?
저는 오히려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어떤 투자상품을 사야 하는지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요?
어쩌면 학교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좋은 종목을 고르는 방법이 아니라 돈이 걸린 상황에서 좋은 판단을 내리는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확률과 기댓값을 생각하는 법, 하나의 결과만 보고 원인을 단정하지 않는 법, 광고에서 사실과 주장을 구별하는 법, 큰 보상에는 대개 큰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 당장의 욕구를 참고 미래의 보상을 기다리는 습관 같은 것들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의사결정에 필요한 도구들은 이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학 시간에는 확률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고, 국어 시간에는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며, 슬롯 시간에는 시장과 금융의 기본 원리를 배웁니다. 도덕 시간에는 절제와 바카라임도 다룹니다. 어느 것에도 '투자기법'이라는 이름은 붙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투자자에겐 중요한 소양이자 미덕이죠.
학교에서 하는 금융교육은 예전보다 훨씬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예전에는 증권사를 찾아가야 살 수 있었던 금융상품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몇 번만 누르면 살 수 있습니다.
레버리지 상품과 파생상품, 가상자산처럼 큰 손실을 낼 수 있는 자산에도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교육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다만 저는 공교육의 목표가 투자로 돈을 잘 벌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산이 오를지 맞히는 능력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말 뒤에 어떤 위험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는 능력, 이해하지 못한 상품에는 돈을 넣지 않는 태도, 한 번의 성공을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지 않는 습관이 먼저입니다.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전재산을 걸었다가 크게 불행해지는 사람을 줄이는 일은 공교육이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학교가 모든 학생을 뛰어난 투자자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망가지지 않는 투자자가 될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
아마 학교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투자교육은 그쪽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