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에게 돈을 줬더니 벌어진 일
편의점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음료 하나가 2,0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1+1입니다. 같은 돈으로 두 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음료를 집어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죠.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물건이 싸지면 더 사고, 비싸지면 덜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늘 가격표를 보면서 무엇을 살지 정하죠.
그렇다면 이런 생각은 어떨까요.
원숭이도 세일을 하면 더 많이 살까요?
물론 원숭이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넨다는 뜻은 아닙니다. 2000년대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꼬리감는원숭이들에게 작은 금속 토큰을 주고, 이것을 먹이와 바꾸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쓸모 없는 쇳조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토큰 하나를 사람에게 건네면 사과나 포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원숭이들은 곧 배웠습니다.
그 순간부터 토큰은 원숭이에게 일종의 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연구진은 원숭이에게 토큰을 나눠주고 두 사람 중 누구와 거래할지 고르게 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토큰을 주면 사과를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주면 포도나 젤리 같은 다른 먹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든 토큰 하나에 먹이 한 조각을 줬습니다. 원숭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토큰을 나눠 썼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한정된 생활비로 과일도 사고 과자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다 연구진이 사과를 세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까지 토큰 하나에 사과 한 조각을 줬다면 이제는 같은 토큰 하나에 두 조각을 준 것입니다. 사과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진 셈입니다.
원숭이들은 사과를 더 많이 샀습니다.
연구진은 단순히 원숭이의 형편이 좋아졌기 때문에 많이 산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토큰 수도 함께 조정했습니다. 그래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가격이 싸진 먹이를 더 많이 골랐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바뀌면 사람들이 소비를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합니다. 어려운 말을 붙이지 않아도 원리는 간단합니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살 수 있게 되면 그쪽으로 손이 간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원숭이는 꽤 훌륭한 소비자입니다. 가격표도 없는 시장에서 가성비를 따지고 있으니까요.
실험 중에는 조금 더 수상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원숭이가 토큰을 훔치는 일이 생겼고, 한 번은 수컷과 암컷 사이에서 짝짓기 뒤 토큰이 건네진 뒤 그 토큰이 다시 먹이와 교환되는 장면도 관찰됐습니다. 다만 이것은 연구진이 계획해서 검증한 실험이 아니라 우연히 벌어진 일화이므로 너무 큰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격도 따지고, 훔치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곳에 돈을 쓰기도 했습니다.
슬슬 인간 슬롯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 같죠.
하지만 연구진이 발견한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연구진이 조금 이상한 가게 두 곳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원숭이에게 사과 한 조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대로 한 조각을 줍니다.
두 번째 사람은 처음에 사과 두 조각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토큰을 건네면 그중 하나를 치우고 한 조각만 줍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완전히 같습니다. 어느 사람에게 토큰을 내든 원숭이가 최종적으로 받는 것은 사과 한 조각이죠. 그런데 원숭이는 두 번째 사람과 거래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이유를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서는 그냥 사과 하나를 받았습니다. 별일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람에게서는 눈앞에 있던 사과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빼앗긴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들어오는 것은 똑같이 하나인데 기분은 같지 않은 겁니다.
사람도 비슷합니다.
회사에서 올해부터 매달 10만 원을 더 주겠다고 했다가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해보겠습니다. 통장에 실제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런데 괜히 10만 원을 잃은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별다른 기분도 들지 않았을 겁니다.
주식도 그렇습니다. 100만 원에 산 주식이 계속 100만 원이면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120만 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00만 원이 되면 왠지 20만 원을 잃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처음 가격으로 돌아왔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사람은 최종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만 따지지 않습니다. 방금 전까지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지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특히 얻는 기쁨보다 잃는 불쾌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이런 성향을 손실회피라고 부릅니다. 연구진은 원숭이의 행동도 인간에게서 보이는 손실회피와 비슷하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실험이 재미있는 이유는 원숭이에게 그 이름을 가르쳐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원숭이는 주식투자를 해본 적도 없고, 카드값에 시달린 적도 없고, 경제학 바카라을 읽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같은 사과 하나를 받으면서도, 하나가 사라지는 상황을 더 싫어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조금 이상해집니다.
우리는 흔히 돈 때문에 사람이 탐욕스러워지고, 시장 때문에 사람들이 계산적으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돈이 생기기 전부터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거꾸로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 토큰을 받은 원숭이에게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금속 조각이었습니다. 먹을 수도 없고, 가지고 논다고 특별히 재미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치가 생긴 것은 토큰으로 다른 것을 얻을 수 있게 된 뒤였습니다.
토큰 하나를 들고 있으면 사과를 고를 수도 있고 포도를 고를 수도 있습니다. 사과가 싸지면 사과를 더 살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토큰을 건넬지도 고를 수 있습니다. 토큰 자체가 욕망의 대상이었다기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원숭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더 많이 주는 쪽을 고르고, 싸진 것을 더 사고,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잃는 상황을 싫어했습니다. 돈이 이런 마음을 새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원래 있던 마음을 선택과 숫자로 드러나게 만든 것에 가깝습니다.
연구진도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 원숭이들은 인간처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살아온 동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돈과 비슷한 도구를 주고 선택하게 만들자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행동과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돈은 인간에게 욕망을 심어준 발명품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여러 욕망을 하나의 숫자로 연결해준 발명품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원숭이에게 돈을 줬더니 원숭이가 인간처럼 변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줬더니, 원래 인간과 비슷했던 부분이 들켜버린 것입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원숭이도 돈을 욕망했을까요?
정확히 말하면 토큰이라는 쇳조각 자체를 원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원숭이가 원한 것은 사과였고 포도였으며, 더 많이 얻고 빼앗기지 않는 것이었을 겁니다. 토큰은 그 욕망들을 서로 바꿀 수 있게 해준 도구였습니다.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통장 화면에 찍힌 숫자를 바라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위험에 대비하고 싶고, 하기 싫은 일을 거절할 수 있고 싶어서 돈을 원합니다.
돈은 이런 욕망을 한곳에 모아놓습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선택이 숫자로 드러납니다.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무엇을 포기하는지, 무엇을 잃기 싫어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화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짧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얻고 싶고, 가진 것을 잃기 싫고, 같은 값이면 더 좋은 것을 고르고 싶은 마음은 그보다 훨씬 오래됐을 겁니다. 돈의 역사는 수천 년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탐욕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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