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떠나는 남미 여행기
해치워야 했다.
공을 들일수록 빛을 잃고 험한 것이 되어버린 나의 원고처럼, 어느덧 여행 그 자체를 즐기는 방법을 잃어버린 내게 ‘남미’는 해치워야 하는 여행지였다.
7월의 어느 날, 별 볼 일 없는 웹소설 작가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던 내가 불현듯 남미로 떠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다들 한 번쯤은 그랬을 것이다. 어렸을 적 받은 칭찬이나 상장 같은 것들이 마치 내게 특별한 재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일.
나도 그랬다. 글을 쓰는 일이 무슨 내 삶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인 세계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나처럼 소싯적에 글 좀 쓴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그 사이에서 나는 간신히 ‘작가’라는 명패만 붙들고 있는 낙오자에 가까웠다.
연예계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이런 것이었다. 화려하고 빛나는 소수의 몇몇 아래에는 수없이 아무 이름도 없이 갈려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작가들의 세계에서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모르며, 안다 하더라도 별 흥미도 없을 그런 작가.
물론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방식이나 단어를 조합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오래 생각했다. 이 단어가 슬롯적 분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이 내용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우습게도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내가 글을 통해 비판하고 싶었던 것들도 어느새 모서리가 깎여 있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사라지고,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을 대신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문장들만 남았다.
색깔이 있다는 건, 그만큼 날카로움을 갖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점점 부족한 재능과 노력을 부족한 기회의 이유로 삼길 여러 해, 나는 10년 동안 한 길을 파면 성공한다지만, 성공하기는커녕 도전조차 못하게 되는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정말 방법을 모르겠더라.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을 빛내며 언젠가는 작가가 되리라는 꿈을, 내가 소원했던 방식으로 소원했던 만큼은 이룰 수 없는지. 순수히 글을 사랑한다면 명성 같은 건 무시할 수 있을 텐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하는지. 순수했던 애정마저 잃어버린 성인의 나는 매일 늪으로 빠지고 있었다.
그 무렵 웹소설 심사용 원고 하나를 완성해 제출했다. 보통이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작품을 준비하거나, 심사에 넣은 작품의 다음 회차를 썼을 것이다. 늘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침 공모전에서 한 번 낙방한 작품이라 비축분도 제법 있었다. 굳이 당장 다음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가 생겼다. 아마 나는 그냥 지겨웠던 것 같다. 하염없이 한양행을 재촉하는 과거시험 N수생처럼,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한다는 것이 피곤했다. 그래서 문득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이라는 선택지가 내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원래도 여행을 좋아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과 생활도 때려치우다시피 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몽땅 털어 영국에서 한 달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최근에는 일본이나 대만, 싱가포르처럼 비교적 가까운 곳만 다녔다. 오랜 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여행지는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다들 그렇듯 돈과 시간이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달이었다. 나는 어쨌든 한 달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먼 데를 가볼까?
미국?
유럽?
……그냥 일본에서 한 달 살이나 할까?
본래는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고 계획을 짜지, 빈 시간 동안 어딘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라를 고르는 적은 처음이었다. 어릴 적 지구본을 돌리며 가상의 여행을 하던 것처럼, 구글 지도를 빙글빙글 돌렸다.
조건은 나름 명확했다.
1. 혼자 한 달을 돌아다닐 예정이니 안전해야 했다.
2. 너무 많은 돈이 들지 않아야 했다.
3.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 좋다.
그렇게 나는 세 조건 가운데 마지막 하나밖에 충족하지 않는 남미를 골랐다. 치안에 관한 소문은 흉흉했고, 이코노미석 왕복 항공권만 300만 원이 족히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사실 오래전부터 입버릇처럼 말하기는 했다.
“언젠가 남미에 가보고 싶어.”
“마추픽추는 꼭 한 번 보고 싶어.”
어렸을 때는 세계의 불가사의를 다룬 바카라이나 방송이 유행했다. 그래서인지 쉽게 갈 수 없는 곳, 잉카 문명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마추픽추는 유난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숨겨진 도시. 신비로운 공중 도시. 그런 수식어들이 어린 나의 심장을 뛰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특이하고 신비한 것에 쉽게 혹하는 아이였다. 오죽하면 동생과 <마법천자문>을 읽은 뒤 붓을 들고 허공에 한자를 써가며 서로에게 가상의 마법을 날리곤 했다. 심지어 서예 붓도 아니었다. 그림 그릴 때 쓰는 서양 붓으로.
아무튼 그렇게 잊고 살던 마추픽추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여자 혼자 남미를 한 달 동안 돌아다닌다? 허구한 날 등이 굽도록 의자에만 앉아 있어 체력도 별로인 데다, 어릴 적처럼 무작정 떠나기에는 신중함과 겁만 잔뜩 늘어난 내가 과연 그곳을 갈 수 있을까. 당연히 고민됐다.
그런데 한번 남미 쪽으로 기운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아니면 두 번 다시 못 갈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자꾸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처럼 남미가 미칠 듯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가고 싶다고 말했던 곳조차 결국 포기하는 건가’ 하는 묘한 자괴감이 더 컸다. 그 생각이 등을 떠밀었다.
“그래. 가지 뭐.”
정말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이때도 끝없이 속으로는 '진짜 가?'라며 망설이고는 있었지만, 뭔가 나 스스로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밀어붙였다.
나름대로 완벽한 대바카라도 세웠다.
‘계획을 아주 철저하게 짜고,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이면 그래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지 않을까?’
‘강도가 협박하면 저항하지 말고 가진 걸 다 주자.’
이때의 나는 남미를 거의 무뢰배들이 활보하는 미지의 대륙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년, 짧아도 석 달은 필요하다고 믿던 내가 출발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남미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렇게까지 걱정하며 올라탄 남미행 비행기에서 내가 처음 마주친 사건은 뜻밖에도 강도도, 소매치기도 아니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갑자기 컵라면을 뜯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