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붕괴

2026. 8. 9.

by한상훈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권리는 대부분 거래를 통해 획득했다. 참정권은 군복무, 참전으로 얻었고, 링컨의 노예제 해방을 위해선 산업화된 슬롯에서의 흑인 인권이 필요했다. 반면 노예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 이득이 되는 남부군의 입장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았기에 내전은 불가피했다. 인간이 한 걸음씩 더 많은 보편권을 얻는 과정은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경제적 논리, 즉 교섭권을 가진 이들과의 거래를 바탕으로 시행되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노동력이 필요 없어진 산업이라면 노동자들의 파업에 응하느니 회사를 폐업하고 새로 만드는 것이 경제적 선택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는 시민들의 노동력과 더불어 그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1표로 구성되는데, 과연 이것이 앞선 시대에서도 유효할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이유는 선명하다. 인간 노동력이 정말로 필요하겠냐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중의 교섭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을 보자. 권력자의 주요 수익원은 국가가 가진 국부, 자원 그 자체다. 반면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면 권력자라고 해도 세수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지 않고는 자신의 계좌를 넉넉하게 만들기 어렵다. 반면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중동의 석유 수출 국가들 및 천연자원을 판매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중앙아시아,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국민들이 가지는 교섭권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슬롯는 극단적으로 수직화 되어 있으며 계층에 따라 압도적 부의 격차가 생기고 또한 권력자 입장에서는 국민들에게 어떠한 편의성 혜택을 주는 것이 경제적 이익을 주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로봇의 발전은 이미 수많은 산업의 민중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의 총숫자를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 이미 일자리는 좋은 품질의 일자리와 사실상 생존 경계선에 머무는 일자리 두 종류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다. 안정적인 중산층이라는 말은 화폐 가치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로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슬롯는 거대한 엘리트주의 슬롯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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