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밤의 정령들을
떠나감을 아쉬워하듯이
새벽이 오는 이 거리에
희미한 안개를
뿌려놓고 떠나갔지.
거리에
새벽안개가 흐르면
모든 것들은
새벽의 정령들이 되었다.
희미한 시야 속에
모두가 희미하게 보여
모두가...
나는 두려웠어.
나도 희미해질까 봐
숨을 죽였지.
그 속에 휩싸일까 봐
그 짙은....
저만치
교회당 언덕 너머로
먼 동이 터오면
모든 것은
희미한 햇살이 되었지.
어느덧
나의 시선은
새벽안개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침이 희미해져 버렸어.
새벽안개의
흔적만 남아..
1988년 겨울
그 당시에 우울함 2부작 시를 쓸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고 1의 나는
얼마나 우울했던 것일까? 너무 오래된 우울함이다.
그 당시의 처절한 우울함을 토로했던 16살의 내가 지금까지 저 안개를 헤치고
이곳까지 온 과정을 생각하면 또 한 번 나란 인간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 항상 두려웠던 건 그 우울함 속에서
"나도 희미해질까 봐"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될까 봐 그 어린 나이에
그게 너무나도 두렵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항상 안개처럼 희미함에 둘러싸여 있는 내가
동이 터 오면 안개를
"놓쳐버리고"
말까 봐 그 안개에서 벗어날까 봐 또 두려웠던 것도 같다.
그리고 나의 아침이
"희미해져 버렸어"
결국 내가 희미해져서 안개가 되었다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되었다가
다시 시작하여 오늘 여기까지 왔을 수도 있겠다.
202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