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는 끄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재는지를 바꾸는 것이다.
십 분도 못 가 화면을 다시 뒤집었다. 화면 안에는 아는 이름들의 좋은 날이 줄지어 있다. 합격, 이사, 어느 바닷가. 그날 내가 한 일은 어디에도 올라가지 않는다. 새벽 한 시까지 남의 좋은 날을 넘기다 잠들었다. 다음 날 달라진 것은 눈 밑뿐이다.
그 뒤로 몇 번은 스위치를 찾아봤다. 알림을 끄고, 앱을 지웠다가 사흘 만에 다시 깔았다. 비교가 멈추지는 않는다. 확인하는 시간만 새벽으로 옮겨 간다. 정보가 끊기면 마음은 더 부지런해진다. 보이지 않는 자리를 상상으로 채운다. 그쪽이 늘 더 화려하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종종 겪는 일이 있다. 열차가 멈춰 서 있는데 창밖이 스르르 뒤로 흐른다. 내가 밀려나는 줄 알고 창틀을 짚는다. 고개를 돌려 보면 움직인 쪽은 옆 선로의 열차다. 내 열차는 그대로 있다. 우리가 뒤로 밀렸다고 느낄 때, 실제로 움직인 것은 옆 선로다.
착시를 깨는 방법은 창밖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시선을 플랫폼 기둥에 두면 된다. 기둥은 움직이지 않는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 하나만 잡아 두면 내 열차가 섰는지 갔는지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 단체방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옆 선로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지나가고, 그중 어느 것도 내가 어디쯤 왔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자제력이 아니라 기둥이다.
내 기둥은 어제의 나다. 이 기둥은 매일 하나씩 새로 선다. 어제 저녁의 나와 오늘 저녁의 나 사이에는 잴 수 있는 거리가 있다. 같은 사람이라 눈금이 맞는다. 남의 하루에는 눈금이 없다. 몇 번을 갈아엎었는지, 어떤 밤을 지나왔는지 사진에는 적히지 않는다. 우리가 견주는 것은 남의 하루가 아니라 남이 고른 한 장이다.
오늘 하루 중에 어제의 나보다 반걸음 나아간 자리는 어디였을까?
비교하는 눈을 없애려 애쓰던 시절보다, 그 눈을 어제 쪽으로 돌려 둔 뒤가 한결 견딜 만하다. 부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를 끌어내리는 대신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그 방향이 오늘 저녁에 할 일 하나를 알려 준다.
첫째, 부러운 마음이 올라오면 지우려 하지 말고 한 줄로 번역해 보기로 한다. '부럽다'를 '나도 저것을 원한다'로 바꿔 적으면 감정이 목표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종이든 휴대폰 메모든 상관없다. 이름이 붙은 마음은 덜 아프다.
둘째, 그 사진을 올린 사람에게 축하 한 줄을 보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속으로만 삼킨 부러움은 안에서 상한다. 열 자면 넉넉하다. 말로 꺼내 놓으면 부러움의 크기가 한 뼘쯤 줄어들고, 보내고 나면 그 사람이 경쟁자 자리에서 내려온다.
셋째, 잠들기 전에 오늘 끝낸 일 한 줄을 메모장에 적어 두는 편이 낫다. 잘한 일이 아니라 끝낸 일이면 된다. 그 한 줄이 내일의 기둥이 된다. 일주일이 쌓이면 남의 소식보다 내 기록이 길어진다. 흔한 실수 하나. 기둥을 세우겠다며 다이어리부터 사 오는 일이다. 첫 줄은 대개 종이가 아니라 손에서 시작한다.
어제의 나와 나란히 서면, 반걸음도 분명한 앞이다.
▷ 오늘 하나만 : 잠들기 전에 오늘 끝낸 일 한 줄을 적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