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 같은 싸움을 20여 년째 합니다

싸움이 매번 똑같다면, 싸움이 문제가 아니다.

by시선
시작은 설거지였는데, 끝은 늘 "당신은 맨날 그래"입니다. 할 말을 서로 외울 정도로 똑같은 말이 오갑니다. 지기 싫어서 입을 닫으면 며칠이 조용해지는데, 그 며칠이 싸울 때보다 더 무섭습니다. 20여 년을 왜 같은 데서 맴도는 걸까요?


우리 집 싸움은 빨래에서 시작될 때가 많았다. 수건을 반으로 접느냐, 셋으로 접느냐. 처음엔 분명 수건 얘기였다. 그런데 몇 마디 오가고 나면 "당신은 늘 그래"가 나왔고, 거기서부터는 수건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지지 않으려고 입을 닫았다. 입을 닫으면 이기는 줄 알았다. 그렇게 사흘이 조용했다. 그 사흘이 싸운 날보다 길었다.


열 번쯤 반복된 싸움은 대사가 정해져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내가 무슨 말로 받는지, 내가 어디서 입을 닫는지 둘 다 안다. 그때마다 나는 규칙을 하나씩 만들었다. 수건은 셋으로, 빨래는 토요일에. 규칙은 두 달쯤 지켜졌다. 두 달이 지나면 우리는 또 같은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날도 수건으로 시작한 다툼이 이틀째 식어 있던 밤이었다. 일이 꼬이면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은 늘 아내다. 아내는 개다 만 빨래 바구니를 옆으로 밀어 두고 말했다.


"나 수건 얘기한 적 없어. 내가 힘들다고 하면, 당신은 끝까지 듣기도 전에 고칠 것부터 찾잖아.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달라고, 이십 년 넘게 그거 하나 말하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아내의 말에 대답은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끝까지 들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이십 년 넘게 같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엉뚱한 대답만 고쳐 가며 내놓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얼마 전 한 팀원이 발표자료를 세 번째로 들고 왔다. 매번 같은 대목에서 내 펜이 멈췄다. 문장을 다듬어 오면 그다음 문장에서 또 멈췄다. 같이 앉아 첫 장부터 넘겨 보고서야 알았다. 문제는 문장이 아니었다. 표지 다음 장의 한 줄, '이 사업이 왜 필요한가'가 발주처가 원하는 방향과 어긋나 있었다. 맨 앞에 있는 줄은 이미 읽은 줄로 여겨져 아무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팀원도, 나도 그랬다. 그래서 눈에 걸리는 문장만 고치다 돌아가게 된다.


매번 같은 데서 막힌다면, 고칠 것은 문장이 아니라 맨 앞의 전제다.


우리 부부 싸움도 그랬다. 수건이든 설거지든, 아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힘들다는 말을 고치려 들지 말고 먼저 들어 달라는 것. 나는 그 간단한 말을 알아듣는 데 이십 년이 넘게 걸렸다. 그 뒤로 수건 규칙은 더 만들지 않는다. 고칠 것은 수건이 아니라, 듣지 않던 내 귀였다.


지금도 목소리가 올라가면 나는 규칙부터 떠올린다. 고칠 거리부터 찾는 버릇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빨래 바구니는 아직 세탁실 문 옆에 있다. 볼 때마다 그날 밤이 떠오른다.


첫째, 싸움보다 먼저 나오는 신호 하나를 찾아 둔다.

목소리가 반 톤 올라가거나, 둘 중 하나가 하던 일을 멈추거나. 지난번 싸움의 첫 두 마디만 되짚어 봐도 보인다. 신호를 알아채면 그다음이 짧아진다.


둘째, 같은 장면에 들어섰다 싶으면 자리나 시간을 바꾼다.

서 있었으면 앉고, 밤이면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룬다. 외워 둔 대사는 무대가 바뀌면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는 같은 말이 나오고, 자리를 옮기면 다른 말이 나온다.


셋째, 끝내는 방식을 미리 하나 정해 둔다.

누구든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면 그날은 거기서 접는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기고 지는 판이 없어지면 입을 닫을 이유도 없어진다. 끝이 정해져 있으면 싸움은 길어지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피하는 게 좋다. 싸움을 멈추려고 규칙을 또 하나 만드는 일이다. 규칙이 늘면 어길 일도 늘고, 어긴 일은 다음 싸움의 첫 마디가 된다.


20년 넘게 같은 일로 싸웠다는 건, 그만큼 오래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오늘 하나만 : 지난번 다툼에서 상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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