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받았는데 마음이 안 풀려요

괜찮다고 답한 날과 괜찮아진 날은 같은 날이 아니다.

by시선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고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 사람이 보낸 짧은 메시지에 아직 답을 못 하고 있고요. 이런 제가 옹졸한 사람 같아 또 불편합니다. 용서했다고 말하면 정말 풀리는 걸까요?


누나가 미안하다고 한 자리는 주차장이었다. 아내와 내가 살던 집 문제로 몇 달 서로 연락을 하지 않다가, 주말에 잠깐 보고 각자 차로 가는 길이었다. 누나가 반쯤 돌아서서 그때는 내가 심하게 했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꾸며서 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는 정말 괜찮았다. 누나는 맏이라,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은 언제나 누나였다.


그 뒤로 두 번 만났고, 두 번 다 내 쪽이 조용했다. 묻는 것에는 답을 했고 먼저 꺼내는 이야기는 없었다. 사과를 받은 사람이 왜 입을 아끼는지 나도 몰랐다. 아직 안 풀렸다고 하기에는 누나에게 미안했고, 다 풀렸다고 하기에는 입이 무거웠다. 그래서 두 마음을 한꺼번에 들고 다녔다. 명절에 누나에게 보낼 안부를 적었다가 지웠다. 몇 번 그랬다.


오랫동안 드나든 제본소의 부장님이 늘 같은 소리를 했다. 오늘 붙였어도 내일 펴세요. 갓 나온 바카라은 손에 들면 벌써 반듯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끝까지 젖혀 펴면 등이 갈라진다. 부장님은 갓 묶은 바카라을 넘길 때 늘 덮은 채로 두 손에 얹어 주었다. 급한 사람이 받자마자 펼쳐 넘겨 보면 그 바카라은 낱장이 빠져 돌아왔다. 부장님은 그 하루를 기다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풀 마르는 시간이라고 했다. 사과는 붙이는 일이고, 풀리는 것은 마르는 일이다.


우리가 괜찮다고 할 때, 그것은 다 풀렸다는 뜻일까, 이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다는 뜻일까? 주차장에서 내가 한 대답은 뒤쪽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오히려 숨이 쉬어졌다. 안 풀린 것이 아니라 덜 마른 것이라면, 내 몫은 용서를 결심하는 쪽이 아니라 그 자리를 자꾸 펼쳐 보지 않는 쪽이다.


지금도 나는 괜찮아졌는지 혼자 확인해 본다. 아직인 것을 확인하고 나면 내가 못나 보인다. 사과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한 번 더 남는다. 누나에게는 주차장에서 이미 덮은 이야기다. 그걸 다시 펴면 나는 사과를 받고도 뒤끝을 부리는 동생이 된다. 그래서 사과를 받은 저녁이 사과를 받기 전날보다 더 조용하다.


첫째, 미뤄 둔 그 메시지에는 짧게라도 답해 두는 편이 낫다. 풀렸다는 답이 아니라 받았다는 답이면 된다. 고마워, 잘 지내. 그 정도로 충분하다. 답하지 않은 메시지는 휴대폰을 열 때마다 다시 펼쳐지고, 그때마다 그 일도 같이 펼쳐진다. 나도 결국 누나에게 보낸 것은 두 줄이었다.


둘째, 그것이 떠오른 날에 달력에 점 하나만 그려 두는 편이 낫다. 무슨 사연이었는지는 적지 않는다. 한 달쯤 지나 점들을 보면 사이가 벌어진 것이 보인다. 점이 며칠째 이어져도 그건 그냥 그 며칠이다. 나아지는 것은 느끼기 어렵고, 간격은 세어 볼 수 있다.


셋째, 아직 안 풀렸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돌려주지 않기로 한다. 사과한 쪽은 자기 몫을 치렀고, 남은 시간은 우리 쪽에 있는 시간이다. 대신 그 사람과 평소 하던 것 하나를 같이 해 보는 편이 낫다. 장을 보거나 무거운 짐 하나를 옮기거나. 확인하지 않고 옆에 있어 본 시간이 뒤에 더 쌓인다.


풀렸는지 알아보려고 그 이야기를 한 번 더 꺼내 보는 실수가 흔하다. 그러면 그 하루가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옹졸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 오늘 하나만 : 미뤄 둔 메시지에 한 줄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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