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일 차: 부산역 - 강릉 안목해변 (261006)
이왕 강릉으로 향하는 길, 해안가를 따라 이동했다 해안가를 따라 돌아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출발하는 KTX 표를 예매했다.
나의 경우에는 KTX를 평생 5번도 타본 적이 없었을 정도여서 아직도 KTX라는 고속 열차에 탑승한다는 것에 대한 로망이 살짝 남아 있는데, 그래서인지 부전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동해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살짝 들떠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창문 너머로 동해 바다가 보이도록 특실의 우측 좌석을 예매했는데, 알고 보니 이 노선, 포항을 지나기 전까지는 바다를 마주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하면서도 곧 펼쳐질 수평선을 마주하기 위해 휴대폰조차 만지지 않고 있었는데, 열차가 바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주역에 도착하는 게 아니겠는가.
경북 지역에 들어서 틈틈이 보이기 시작한 바다마저도 터널에 의해 저지되는 순간들이 많아 기대가 시들어버렸고, 끝내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듦으로써 창 밖으로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래도 뭐, 이 또한 추억이 될 테니까. 이게 무계획 여행의 장점 아니겠는가.
강원도 지역에 들어서자 기대했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바다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물론 내가 애초에 기대했던 끝없는 바다의 향연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순간순간 마주했던 장면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이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도착한 강릉역에서 숙소가 위치해 있던 안목해변까지는 약 5km였는데,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강릉에서부터 탈 것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도의 큰길을 따라 일단 걷자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강릉역 근처에 위치해 있는 한 독립 서점을 들렸는데, 방명록에 눈길이 가더라. 그렇게 펼쳐본 방명록에는 다양한 이들이 남긴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무수한 글들을 찬찬히 읽어가던 중, 하나의 간단한 메모가 인상 깊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특히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던 요즘이었기에, 순간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달까. 나도 방명록에 짧은 글을 남기고 싶었는데, 하필 마지막 페이지가 며칠 전에 쓰인 글로 마무리되어 있어 그럴 수 없어 그저 자리를 벗어났다.
안목해변 근처에는 혼자서 밥을 먹을 만한 식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무작정 대로변를 거닐다 괜찮아 보이는 햄버거집에 들어섰는데, 병맥주도 함께 판매하는 집이더라.
2년 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던 보령의 대천해수욕장에서 병맥주를 들고 돌아다니며 밤새 떠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져 자연스레 병맥주까지 사들고 가게를 벗어났다.
그런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병따개가 없었다. 나는 평소에 음주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이러한 상황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때 보령 여행을 함께 했던 지원이로부터 와 있던 문자에 답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마찬가지로 여행을 함께 했던 규은이가 당시에도 병따개가 없어 단단한 무언가에 뚜껑을 빗겨치며 맥주를 개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덕분에 나도 적당히 각이 진 바위를 찾아 조심히 빗겨치며 맥주를 개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맥주, 맛이 없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나눠마셨던 맥주는 참 맛있었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함께함으로써 발생하는 시너지의 몫이 컸던 듯했다.
끝까지 맛이 없었던 맥주를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입에 마저 털어 넣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될 터이니, 잠이나 자야지 싶었다.
번외.
모바일로 글을 작성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PC로 작성할 때와 비교했을 때 인지적인 부분에 대한 차이가 크다. 그러한 결과 문장의 짜임이 이상해서 글의 구조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글은 간단한 기록 정도의 용도면 충분하니 그냥 이러한 불완전함을 유지하기로. (언젠가 일본에서 유행이었다던 '휴대전화로 쓴 소설'의 대상작을 읽고 '휴대전화로는 체계적이면서도 복잡한 글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라는 후기를 남긴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상황인 듯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