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강릉 안목해변 - 강릉 정동진해수욕장 (261007)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전형적인 올빼미족인데,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찍고 간단하게 씻은 후,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스포츠 테이프를 감음으로써 국토대장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국토대장정을 하게 된다면 꼭 밀짚모자를 쓴 상태로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 출발 직전부터 지역의 전통시장에 들러 밀짚모자부터 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 강릉중앙시장이 강릉역 근처에 위치해 있더라. 정동진으로 향하려면 강릉중앙시장을 들릴 필요가 없었는데, 햇빛이 쨍쨍한 것을 고려했을 때 차라리 무리가 덜한 첫날 시장에 들르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바라던 밀짚모자를 판매하는 매장을 찾지 못했다. 모자가 없는 걸 알았다면 여길 안 왔지 싶다가도, 결과론임을 인정하고 나니 곧바로 괜찮아졌다. 언젠가의 과거에는 항상 부정적이기만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부족한 나조차도 성장이라는 것을 하기는 하나 보다.
첫날부터 기대와 달리, 강릉중앙시장에서 정동진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루트의 절반을 내륙으로 지나가야 했다. 그래도 풍경이 좋으니 걷는 내내 기분은 좋더라. 다만 햇빛이 따가워, 여정 중 선크림을 두 번은 더 덧발랐다.
이온음료를 구입하기 위해 경로에 있던 하나로마트에 들렀는데 이게 웬 걸. 사고자 했던 밀짚모자가 있는 게 아닌가. 여행의 묘미는 우연에 있음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밀짚모자를 구매하고 나니 유성매직펜을 이용해 매 날짜마다 머물었던 지역을 모자에 기록해 두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계획 인간에게 계획이란 게 존재할 리 없었으므로, 가려던 식당이 아닌 무작정 걷다 지나치려던 순댓국집에 들렀다. 이때가 3시간쯤 걸었을 때였는데, 이미 발목의 상태가 안 좋다 느껴졌기에 적당히 쉴 타이밍이라 판단되기도 했다.
맛은 있었으나, 리뷰에서 칭찬하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사실 한국에서 설렁탕, 순댓국, 돼지국밥 등의 음식들은 너무 상향평준화가 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그래도 든든한 메뉴를 선택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반추된다.
막상 해안가에 들어서서도 경사라거나 기찻길 등의 이유로 바다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도로가 보행자에게 위험하기도 해 바다를 볼 엄두를 낼 수도 없었지만.
위험성은 보행자뿐만 아니라 라이더에게도 그런 듯했다. 강원도 춘천 같은 도시는 자전거 도로가 잘 구분돼 있는데, 이 동네는 차도에 자전거 통행 표시를 그려놓고 '여기가 자전거 도로라니까?' 하며 억지 주장을 하는 느낌이었다. 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저 도로, 자전거를 타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이지 않나..?
그래도 역시, 바다는 동해 바다가 아름답다. 중간에 발목의 통증이 심해져 스포츠 테이프를 덧댔는데, 머물었던 공원(?)의 풍경과 분위기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6시간의 대장정 끝에 정동진에 도착해서 체크인 시간도 기다릴 겸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 분께서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하셨다.
사진을 확인하시고는 감사하다며 자리를 뜨셨는데, 혼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 돌아 봤더니 다른 휴대폰이 거치된 삼각대가 놓여 있었다.
'인터넷 방송인인가?'싶어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 접속해 '정동진'을 입력했더니 내가 사진을 찍어주었던 인물이 송출되고 있던 게 아니겠는가. 비록 시청자가 많은 방송은 아니었지만, 인터넷 방송을 보지 않는 나라서 신기하기도, 그럼에도 열심히 방송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말이지.
모처럼 강릉에 왔으니 초당순두부를 먹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아는 맛이 무섭듯 고소하니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정동진에 방문했을 땐 이런 구조물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참 잘 돼 있구나 싶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구조물은 직접 들어가기보단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따뜻한 라떼를 사들고 소설에 활용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런데 바다를 보고 있으니 생각보다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멍해지기만 해서 무념무상해지던... 자리를 떠나며 한 컷 찍어봤는데 생각의자 같은 느낌이 있기도 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오래 걸어야 하는데, 발바닥과 발목이 꽤나 아픈 것을 보니 걱정이 많이 된다. 그래도 절뚝거릴 정도로 무리하며 걸은 것은 아니어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여유를 가지며 걸어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