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일지: 앓음, 닳음, 아름다움.

2일 차: 강릉 정동진해수욕장 - 동해 천곡동 (261008)

bySimGGyu

숙소는 괜찮았는데 이상하리만큼 잠에 들지 못한 밤을 보내고서 맞이한 아침, 그래도 쉬었답시고 허벅지 이하에 위치한 신체 부위들의 컨디션이 회복됐다. 그래서인지 오르막길이 첫 도입부로서 나를 반겼다.


여행을 다니며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각자의 노력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당장은 열심히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을 못 받았다 생각하는 시기이지는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잘 살았다 싶은 날이 오기를.


대로변을 따라 걷던 중, 좌측으로 비탈길이 나타났다. 지도를 보니 내가 가야 하는 길과 연결되는, '바우길9구간(헌화로산바카라길)'이라 명명된 도로이길래 호기심에 몸을 틀었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바다를 끼고 내내 걸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걸음을 이어나가다 보니 꽤나 오랜 시간 바다를 멀리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 구간은 마냥 억울해해서는 안 되는 게,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라는 유료 구간을 이용했으면 바다를 따라 이동할 수 있기는 했다. 바다정도야 며칠은 더 볼 테니까 하며 패스한 결과로써 산을 타야만 했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돌을 잘못 밟아 발목을 두 번 접질렸는데, 원래부터 발목이 안 좋아 접질린 정도로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의외의 장점(?)이 상황의 악화를 억제했다. 다르게 말하면 평소에도 발목을 접질렸을 때 받는 고통을 안고 사는 중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접질린 고통을 느껴본 적은 없으니 비교가 불가하지만, 더욱 심한 통증은 느끼므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역시 시야에 바다가 들어올 때면 '잘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문제라면 이동해야 하는 거리의 1/5밖에 안 걸은 시점이었다는 거지만.

바위 틈새마다 샅샅이 부딪히며 흩어지는 파도를 보다 워터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양치질을 신경 써서 한다 해도 워터픽을 사용하는 건 차원이 다르더라. 아무래도 벌써부터 잇몸이 안 좋은 탓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양치질을 잘하도록 하자.


금진해변을 막 지나치면 다시 육지로의 이동이 시작된다. 이때 자전거를 타고 반대로 주행 중인 서양인 남성을 만났는데, 그쪽에서 먼저 목례를 건네시길래 나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다 나와 가까워지니 '안녕!'이라 말하고 지나치시더라. 타국에서도 열심히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이 길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시 멈칫했는데, 정동진 주변에 약국이나 대형 매장이 없어 관리용품을 보충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참고 가야 한다 생각해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옥계역 뒤 사거리를 따라 이동하는 건 위험해 보이길래 역의 바로 뒤편에 나있는 시골길을 따라 이동하려 했더니 목줄이 없는 강아지가 달려들 듯 짖어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아지가 도로로 나오기 전에 내가 그를 앞질렀다는 건데,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럽다. 출발 전부터 대비했던 몇 가지 준비들 중 하나가 들개를 마주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기는 했으나, 쟤는 너무 자그마한 발바리가 아닌가..?

그래도 강아지가 확실히 똑똑한 게, 눈을 마주치지 않고 길을 지나갈 땐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잠깐 몸을 돌리자마자 곧바로 다시 짖기 시작하더라. 강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진만 대충 찍고 몸을 틀었는데, 자그마한 아이는 나의 멀어지던 뒷모습을 한참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동해안은 동해안이라서,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오고, 그러면 다시 '잘 걷고 있구나.' 하며 안심이 된다.

하지만 강릉 옥계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해안 도로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차도만 이어져 있어서 한참을 무념무상하게 걸어야만 했다.


드디어 동해 입성. 일반적으로 국토대장정을 하시는 분들이었다면 하루 만에 돌파했을 거리였는데, 확실히 발목이 안 좋다 보니 속도가 많이 떨어진다.

이쯤에서부터 종아리 아래로 달린 것들이 나의 것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종아리에 달려 있으니 따라서 움직이는 것에 가까웠달까. 한참 전부터 배도 고팠는데, 갈 수 있는 곳이 전방 말고는 아무 데도 없었으므로 앞으로 가기만 했다.


망상해수욕장에 겨우 도착해서야 물회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통증이 심해진 왼쪽 발목에 보호대를 추가로 착용한 건 덤.

사실 나는 동해에 대한 애증이 깊은데, 이는 나의 군생활지가 동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동해를 지나친 적은 있었어도 제 발로 동해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야릇하더라.

게다가 내가 근무를 했던 기간에는 강릉-동해-삼척에 산불이 크게 나 망상해수욕장을 포함한 많은 지역들이 불탔고, 나는 그 현장을 직접 봤었으므로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나 때는~' 하는 걸까 싶기도.

당시 새벽, 부대에 비상이 발령돼 대처하기 위해 정말 긴급히 행동했었는데, 아직도 승훈이와 산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탄약고 앞에서 뻗어 누운 상태로 붉게 타오르는 북두칠성을 보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여기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은데, 메인은 아니니까 이쯤에서 생략하기로.


계속 걷다 보니 묵호의 랜드마크가 된 스카이밸리가 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기억은 기둥만 세워져 있는 상태였는데, 벌써 완공이 돼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걸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싶다. (물론 복무할 땐 있지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묵호동과 천곡동이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상 걸어보니 정말 멀더라. 이래서 차만 타고 다니면 평범하게 누리고 있었던 편안함에 대한 감사를 할 줄 모르게 된다.


무조건 들려야겠다 생각했던 하평해변. 기찻길을 가로질러 들어서는 해변으로 유명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단 구상 중인 소설을 위해 조용하고 작은 해변의 분위기를 체감할 필요가 있었다.

들어섰을 때 네 명의 여성 분들이 1/2/1 명으로 넓게 나뉜 상태로 모두 누워 계셨는데, 그중 가장 입구쪽에 누워 계셨던 분의 모습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

양해를 구하고 얼굴이 나오지 않게 사진만 몇 장 찍어도 되겠냐 부탁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녀의 평화를 깨는 일이라 생각해 멀리서 풍경 사진만 한 장 남겨보았다.


그나저나 이번 경험으로 처음 알게 된 건데, 하평해변으로 들어섰을 때 좌우측으로 보이는 길이 해파랑길 코스더라. 분위기가 좋아 우측 길로 무심코 따라 걸었다가, 동해시청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34코스를 완전히 지나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후에야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모르고 갔더라면 이미 발바닥과 발목이 살려달라 울부짖던 상황에서 등산까지 하게 됐을 거라는 무서운 이야기.


드디어 익숙한 천곡동 시내에 들어섰고, 군 시절의 추억팔이를 위해 외박을 할 때마다 머물었던 숙소에 예약해 방문했다. 특가 상품인 랜덤방을 예약했는데 혼자 방문했음에도 침대가 3개인 방을 주는 게 아닌가?

외박을 나올 때면 항상 1층의 큰 방을 받아 부대원들과 놀고는 했는데, 이렇게 방문하게 되니 기분이 색달랐다.


그리고 연달아 방문한 일식집. 여기는 나뿐만 아니라 동기들과 후임들도 부대 복귀 직전에 무조건 들리던 식당이었는데, 천곡동에서 1박을 하려는 이유가 이 돈까스를 꼭 다시 먹으러 오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사실 숙소를 여기로 예약한 것도 돈까스 때문이었다.)

약 7년 만에 방문했는데도 맛이 좋더라. 너무나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그리고 이마트와 다이소를 들려 관리용품을 몇 개 구입했다. 가장 중요하다 판단된 건 역시 스포츠 테이프였는데, 하필 이 근방에 있는 다이소 매장에는 해당 물품을 판매하고 있지 않더라.

그래서 오후 8시쯤 문을 연 약국을 찾아보려 했으나 근방에 위치한 모든 약국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병원들이 문을 닫는다고 약국들도 따라 닫으면 어쩌라는 거야!'말하며 씩씩거리고 계셨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도 지도에 보이는 약국들을 다 돌아다녀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내일까지 사용할 몫이 남아있으므로, 슬 삼척과 울진 사이의 비도심으로 이동할 것까지 생각해 비축분을 구해놓기는 해야겠다.


25 km, Google Maps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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