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건강함을 선사하기 위하여.

bysilknot

십년도 더 전, 미혼이었던 시절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입원 아동들의 모든 기록을 전산화하고 코딩화하는 작업이었다. 아동의 인구학적 특성, 가족력, 질병력, 투약 여부 등을 데이터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 같다.

단순 작업이라 쉽게 생각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그 데이터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정신질환을 가진 아동들의 가족력 중에서도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상당수의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앓았던 경험이 있었다.

어머니의 우울이 아동의 정신건강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머니의 우울로 인해 아동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녀가 없던 당시 나에게 그것은 그저 눈에 띄는 통계적 특성, 타자화된 변수 중 하나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사실 나도 우울 정서를 오래도록 가지고 살아왔다. 오랜 시간 내 감정을 들여다보며 내린 결론은, 나는 내 우울이 꽤 나쁘지많은 않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패션처럼 우울을 몸에 두르고, 때로는 그 감정을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달라졌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우울감이 나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아이 돌봄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상 덕에 그 우울 속으로 깊이 빠져들 시간도 적었던 것 같다.

심각한 정도의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던 이력도 없고, 우울증으로 인한 투약 이력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나의 정서가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래전 내 눈에 들어왔던 그 데이터가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돌봄 노동같이 감정 소모가 큰 일을 할 때면 내 표정이 다양하지 않다는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적게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조리원 동기부터 지역에서 연계해준 양육자 자조모임, 동네 사람들, 회사사람들, 대학 동기들까지. 오히려 불필요한 만남을 너무 많이 이어왔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로 깊이 파고드는 그 우울의 시간들을 피하고 싶었던 거였을까?

지나고보면 나의 감정을 오롯이 들여다보고, 다루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일상을 채우느라 정작 내 마음을 마주할 시간은 뒤로 미뤄 두었던 것은 아닐까.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불안과 분노에 휩싸이곤 하는 아이의 모습을 이따금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내 정서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지.

인지적 능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아이가 건강한 정서를 형성하고 자기 감정을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의 정서를 걱정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미처 다루지 못한 감정들을 돌보는 일이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할까.

오래전 데이터 속에서 발견했던 어머니들의 우울을 이제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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