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만세운동의 회상

-50주년을 기념한다

by소걸음

[편집자 주] 2026년 6월 10일은 6.10만세운동 100주년이다. 6.10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을 계승하고, 1927년 이후 신간회 운동으로 연결되는 민족운동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이룬다. 좌우합장의 움직임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6.10만세운동 기획의 양대 축은 당시 슬롯주의 계열과 천도교 구파였으며, 천도교측의 핵심 인물이 박래원이다. 이 글은 6.10만세운동 50주년이 되던 1976년에 [신인간] 통권 337호(1976년 5+6합병호) 기고된 회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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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4a576-db65-450d-97e3-6427e737649f.pngAI가 생성한 6.10만세 운동 상상

- 박래원

- [신인간] 통권 337호(1976년 5+6합병호)1926년 4월 25일, 이날은 조선[이조] 최후의 순종 황제께서 한많은 일생을 53세로 승하하시니 이 나라 3천리는 산천초목까지도 무색한 듯이 망국의 한에 흥분을 풀 곳조차 없는 우리 민족들은 순종의 죽음을 서러워한다기보다 나라 없는 슬픔이 폭발하여 온 산하를 울리고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때에 뜻있는 민족주의자와 슬롯주의자들은 생각하기를 국민들의 울음으로써 국권을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니 기미 3.1독립운동과 같은 전 민족적인 항일투쟁을 일으켜 포악무도한 일제와 죽음으로써 항쟁하는 것만이 우리 국가 민족이 광복되는 길이라고 하여 일어났는데 이 운동을 6월 10일에 일으킨 것이다.


그해 4월 25일에 신문 호외를 배부하는 비댤원의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뛰어다니면서 돌렸으며, 시내 각 신문은 융희황제의 승하를 시민들에게 알려 주자 창덕궁의 돈화문 앞에는 땅을 치며 통곡하는 민중으로 꽉 찼다. 흥분된 군중 사이에는 일제의 미친개(형사)들이 혈안이 되어 왔다 갔다 하며 삼엄한 경계망을 치고 있었는데, 나도 군중 가운데한 사람으로 끼워서 정세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기미년 3.1독립운동이었다. 울기만 하는 군중을 이끌어 기미 운동 같은 일대 항일운동을 일으키는 데 다시 없는 기회라고 구상하던 차에 권오설 동지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이 있어 종로구 장사동 모처에서 만나 요담하였는데, 권 동지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일대 항일 독립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둘은 굳게 맹서하고 운동 자그과 격고문과 기타 전단[삐라]의 원고는 권 동지가 바카라임 지기로 하고, 나는 천도교 측의 동원과 지방 연락과 격구문 십만 장의 인쇄 작업의 바카라임을 지기로 하고 즉석에서 권 동지로부터 자금 6백원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길로 천도교 장로이시며 33인의 한 분인 권동진 선생에게 거사 계획을 말씀하고 적극 협력을 요청하였던 바, 권 선생은 즉석에서 쾌히 승락과 동시에 거사에 요하는 자금의 협조까지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247938_246385_422.jpg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장례행렬.

그리고 천도교 측에서 박래홍, 손재기 씨 등과도 거사 내용을 설명한 뒤 6월 10일 인산 당일에 각도 천도교인들이 봉기하기로 약석하였다. 한편으로는 인쇄직공조합의 중요 간부인 민창식, 양재식, 이용재, 인장 조각가 백명천 등 동지와 협의하여 선언문 십반 장 인쇄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명치정(현재의 명동)에 있는 앵정(樱井) 활판제조소에 가서 "우리는 수원 인쇄소에서 왔는데, 인쇄 기계를 사러 왔다" 하고 소형 인쇄기 2대(대소 각 1대)를 사서 기차 편으로 부칠 것이니 가마니로 튼튼하게 결박해 달라고 하여 리어카[구루마]로 황금정 입구(현 을지로)를 거쳐 안국동 광장을 돌아 안국동 36번지의 목적지까지 지릴레이 식으로 싣고 왔는데, 왜경의 경계가 너무 엄중하기 때문에 기계의 행방을 감추기 위하는 수단이었다.


5월 22일부터 인쇄를 시작하여 31일까지 밤낮 일주일이 걸려 무사히 십만 장 인쇄를 마쳤는데, 동 36번지 동네 사람들은 우리들이 위조 지폐를 찍는다고 혐의하므로 감고당의 민창식 동지의 집으로 옮겨서 인쇄를 계속하여 완료하였다. 인쇄된 전부를 경운동 천도교 교당 구내에 있는 개벽사 제바카라부에 옮겨서 재단기로 잘라서 버들행리와 석유상자에다 담가서 천도교 손재기 동지에게 맡겼다가 6월 4일 부랭하게도 왜격에게 발견되어 나도 그날에 잡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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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대표, (계간)다시개벽 발행인, 지구인문학연구소 대표, 사)방정환연구소 이사, 방정환도서관장, 개벽라키비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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