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간극을 살아가는 일
기억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는 항상 타인의 체온이 남긴 서늘한 궤적이 존재한다.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사람들이 남긴 것들이다.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주는 일인 동시에, 외딴 방의 창문을 통해 타인의 풍경을 가만히 건너다보는 일에 가깝다.
어릴 적 가만히 손바닥을 다른 사람의 손바닥에 마주 대어보던 기억이 있다. 지문과 지문이 닿는 그 아주 좁은 경계면에서 느껴지던 묘한 미동. 그것은 내 피의 흐름도, 상대의 맥박만도 아닌, 두 개의 삶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파동이었다. 그 미세한 떨림이야말로 타인의 존재를 입증받는 첫 번째 감각이자,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서글픈 확인이었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이질적인 계절처럼 불쑥 찾아온다. 내가 구축해 놓은 정밀하고 단단한 언어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나만의 고요를 뒤흔들며 들어온다. 그들이 가져온 서스펜스와 다정함,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피로감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윤곽을 발견한다. 빛이 사물에 부딪혀 비로소 제 모양을 드러내듯, 나라는 사람의 굴곡과 모서리는 언제나 사람이라는 밀도 높은 벽에 부딪힐 때만 또렷해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 거리를 끊임없이 조율하는 묵묵한 노동이다.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스쳐 흉터가 남고, 너무 멀어지면 스치는 온기조차 닿지 않아 냉기가 뼈를 찌른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의 어둠을 품고 서 있는 것. 붙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타인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밀어내려 손을 거두는 순간 나 역시 아득한 허공으로 내던져진다.
결국 사람과 살아간다는 감각의 본질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 있다. 상대의 내부로 온전히 걸어 들어갈 수 없다는 그 아득한 절망을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건너편에 서 있는 타인을 향해 나지막이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서로의 빛을 통과시키며, 서로의 그늘을 마지못해 감싸안는 일.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가만히 돌아본다. 나를 거쳐 갔거나 여전히 내 곁을 서성이는 수많은 존재들. 그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과 흩어진 온기 속에서, 나는 오늘 밤도 타인이라는 아득한 바다를 조용히 항해하고 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나뭇잎의 떨림이 오래도록 남듯, 타인이 내 삶에 남기고 간 충격과 파동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정막 속에서 잔물결로 솟아오른다. 타인의 존재는 나라는 유한한 존재의 지평을 넓혀주는 유일한 균열이다. 그 균열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타인의 온기일 수도, 견디기 힘든 상처일 수도 있지만, 그 무엇이든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고 세상을 향해 숨 쉬게 만드는 거친 숨결임은 분명하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마주할 때 마음은 깊어진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성벽 안에서는 어떠한 생명도 싹트지 못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해와 틈새야말로 온갖 감정과 서사가 피어나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나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일은, 나의 일부를 기꺼이 잃어버릴 각오를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타인과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조금씩 스스로를 손실해 가는 서글픈 과정인 동시에, 타인이라는 풍요로운 세계로 자아를 확장해 가는 기적 같은 일이다.
마침내 한 시절이 지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왔을 때, 손끝에 남은 서늘한 촉감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손을 놓아버린 자리마다 다시 고요가 차오르지만, 그 고요는 타인을 알기 전의 고요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것은 타인의 숨결이 번졌다가 스러진 흔적이요, 누군가의 삶을 가만히 통과해 왔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다.
사람과 살아가는 감각이란 결국, 마주 쥔 손을 언젠가 놓아야 함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그 온기를 온전히 머금는 일. 멀어지는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며, 서로의 아득한 깊이를 가만히 인정해 주는 그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수용의 태도일 것이다.
식탁 위에는 늘 두 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차갑고 하나는 미지근해지는 속도가 달랐다. 사람과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가 견디는 공기의 온도는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에게 타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아니라, 내 피부 표면에 새로 돋아나는 흉터에 가까웠다.
나를 이루던 기존의 결을 찢고 들어와 자신의 모양대로 자리를 잡는다. 그 과정은 온화하지 않다. 옷깃이 스칠 때 발생하는 아주 미세한 마찰음,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간격, 밤마다 거칠어지는 상대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모두 내 신경의 끝자락을 예리하게 베어낸다.
사람을 견딘다는 것은 결국 그 생소한 소음과 냄새를 내 몸의 일부로 길들이는 일이다. 타인의 생활 습관이 내 일상의 가장 깊은 골짜기까지 흘러들어와 나라는 고유한 지형을 마모시킬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실감이 묵직하게 가슴을 짓눌러온다. 그것은 다정함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감각이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거짓말을 포기할 때 타인의 진짜 윤곽이 보인다.
저 낯선 존재는 내 구원이 될 수도, 내 완벽한 안식처가 될 수도 없다. 그저 나와 마찬가지로 밤이면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는 외로운 짐승 한 마리에 불과하다. 그 동등한 무력함을 알아채는 순간, 분노도 서러움도 서서히 휘발되어 사라진다.
살아가는 감각의 핵심은 닿아있는 손바닥이 아니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얇은 공기 층이다. 아무리 밀착해도 끝내 합쳐지지 않는 그 서늘한 간극을 가만히 인정하는 일.
오늘도 나는 맞은편에서 숨을 쉬는 존재의 무게를 느낀다.
이것이 남들과는 다른 나만 갖고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를 온전히 침범하지도, 완전히 떠나가지도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맥박하는 그 *타자성(他者性)이야말로, 나를 이 단단한 땅 위에 묶어두는 유일한 중력이다.
*타자성(他者性) : 나와 타인이 끝내 완전히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타인은 나의 이해와 판단만으로 온전히 규정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성질.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