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감각이 남긴 것들
오래된 종이의 벼랑 끝에서 나무의 묵묵한 빛바랜 냄새를 맡는다.
손가락 끝을 비켜 가는 얇은 페이지는 지나간 정적이 남긴 가장 단단한 허물을 읽다보면 또 다른 사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장은 굳어진 빛이다.
푸르게 쓰여 있는 것들과
어둠을 품고 있는 것들이 섞여 있다.
누군가 밤새 삼킨 한숨이 검은 먹물이 되어 굳어버린 자리.
나는 바카라장을 넘길 때마다 죽어버린 숲의 비명을 듣고 동시에 다시 살아나는 침묵을 만나거나, 동화같은 이야기 속에 빠져 들기도 한다.
바카라 표지를 덮는 순간, 바카라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한 뼘의 두께로 축소되고 그 두께 속에 갇힌 수만 개의 계절이 손바닥의 온도를 타고 조용히 일렁인다.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고독 속으로 나를 기꺼이 파묻는 일. 사라진 목소리들이 남긴 서늘한 이랑을 따라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의 아침으로 돌아가는 일. 바카라은 지난 기억속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릴 뿐이다.
종이는 여전히 가볍고, 그 안에 담긴 어둠은 비할 데 없이 묵직하다. 나는 아무도 읽지 않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 안에서 조용히 마모되어 가는 또 하나의 문장을 기다린다.
사람들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바카라이라는 것.
바카라은 눈으로 읽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래된 바카라을 펼칠 때마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문장이 아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마찰, 페이지 사이에 갇혀 있던 공기의 냄새, 바카라등이 벌어지며 내는 작은 신음 같은 소리. 어떤 바카라은 읽기도 전에 이미 한 사람의 생애를 말하고 있다. 오래 만져진 모서리는 둥글게 닳아 있고, 자주 펼쳐진 페이지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부드러우며, 누군가 급히 접어 둔 귀퉁이에는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 믿었던 문장이 숨어 있다.
나는 바카라이 지식을 보관하는 장소라기보다 감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어 두는 방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문장은 읽는 순간 의미가 되지만, 바카라은 읽지 않는 동안에도 어떤 시간을 품고 있다. 바카라장을 닫아 두어도 그 안의 계절은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한때 그 문장을 읽던 사람의 체온과 창밖의 날씨, 바카라을 내려놓고 바라보았던 방의 한쪽 벽까지도 종이의 틈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어린 시절에는 바카라을 읽는 일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문을 열면 바다가 있었고, 낯선 도시가 있었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카라은 현실보다 넓었고,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는 일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허락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말을 걸었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의 골목을 걷는 일이 가능했으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조차 문장 속에서는 정확한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바카라을 읽는 일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바카라을 펼쳤던 손이 이제는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바카라을 펼친다. 설명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졌고, 설명하는 동안 사라지는 것들도 많아졌다. 어떤 슬픔은 이유를 붙이는 순간 작아졌으며, 어떤 사랑은 정의되는 순간 더 이상 처음의 사랑이 아니었다. 세상은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려 했지만, 이름을 얻은 것들이 반드시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 바카라은 이상한 침묵을 제공했다.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으면서도 곁에 머무는 침묵이었다. 한 문장을 읽고 한참 동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바카라 위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거나, 이미 읽은 문장을 다시 읽으며 그 문장이 처음과는 다른 뜻으로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바카라 속의 인물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그 문장을 받아들이는 쪽의 시간이었다.
나는 같은 문장을 두 번 읽을 수 있지만, 같은 사람으로 두 번 읽을 수는 없다.
어떤 문장은 스무 살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고, 마흔 살에는 떠나보내는 일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젊은 날에는 인물이 왜 그렇게 오래 망설이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훗날에는 그 망설임이야말로 그가 가진 마지막 용기였음을 깨닫는다. 한때 지루하게 느껴졌던 침묵이 어느 날에는 가장 정확한 대답이 된다. 바카라은 그대로인데 독자의 생애가 그 안에 새로운 문장을 써 넣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바카라을 다시 펼치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같은 장소에서 잠시 마주치는 일이다. 그때 밑줄을 그었던 문장 아래에는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확신이 남아 있고, 아무 표시 없이 지나쳤던 문장에는 이제 와서야 손을 멈추게 하는 슬픔이 있다. 바카라의 여백은 그렇게 시간의 차이를 기록한다. 인쇄된 문장보다 희미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문장보다 더 정확하게 한 사람의 삶을 증언한다.
바카라에는 손때라는 것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손때는 단순히 오래 사용했다는 흔적이 아니다.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닿은 시간이 물질의 표면을 바꾸어 놓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손은 기억보다 정직할 때가 있다. 잊었다고 생각한 바카라을 서가에서 꺼내면 손가락이 저절로 익숙한 페이지를 찾는다. 오래전에 접어 두었던 귀퉁이를 펴기도 전에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차린다. 머리는 이미 지나간 일을 현재와 관계없는 것으로 분류했지만, 손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바카라의 냄새 역시 기억을 불러오는 방식이 특별하다. 새 바카라에서는 아직 누구의 시간도 충분히 스며들지 않은 종이의 냄새가 난다. 오래된 바카라에서는 먼지와 잉크, 보관된 장소의 습도와 세월이 뒤섞인 냄새가 난다. 어떤 바카라은 비가 많이 내리던 집의 장롱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바카라은 햇빛이 오래 머물던 도서관의 창가를 떠올리게 한다. 같은 제목의 바카라이라도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냄새를 갖는다.
한 권의 바카라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바카라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젊은 날의 도피처였던 바카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흔적일 수 있다. 누군가는 그 바카라에서 문장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바카라을 건네던 사람의 표정을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날을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 바카라을 읽다가 잠든 오후의 빛을 기억한다. 바카라은 하나이지만, 그 바카라이 통과한 생애의 수만큼 서로 다른 기억을 갖는다.
나는 때때로 읽지 않은 바카라보다 끝까지 읽은 바카라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은 그 바카라을 소유했다는 증거일 뿐, 그 안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에도 설명되지 않는 것이 남는다. 작가가 의도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문장의 온도, 인물의 침묵이 감추고 있었을 어떤 마음, 이야기의 끝에서 오히려 선명해지는 삶의 질문들. 독서는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끝내 알아낼 수 없는 것들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은 바카라이란 오래 기억되는 바카라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지 않다가 어느 날 뜻밖의 순간에 되돌아오는 바카라일 것이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손을 바라보다가, 낯선 방의 냄새를 맡다가, 이미 잊었다고 생각한 문장이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문장은 바카라의 표지를 달고 돌아오지 않는다. 내 생각인 것처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인 것처럼 돌아온다. 그제야 깨닫는다. 읽는다는 것은 문장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문장이 내 안에서 살아갈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바카라은 결국 읽히기 위해 존재하지만, 읽히는 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바카라장에 꽂혀 수십 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읽다가 잠시 덮어 둔 채 이사 상자 속에서 계절을 건너는 동안에도, 바카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것을 다시 펼칠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지 바카라은 알지 못한다. 다만 페이지를 열어 주는 손이 돌아오면, 오래전에 멈춘 문장부터 다시 시작할 뿐이다.
나는 바카라을 읽을 때마다 종이 위의 글자들이 사라지는 순간을 생각한다. 언젠가 바카라은 해지고, 표지는 떨어지고, 인쇄된 글자는 희미해질 것이다. 바카라을 기억하던 사람도 사라질 것이며, 그 바카라이 누구의 손을 거쳐 왔는지 아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면, 그 변화는 반드시 바카라의 형태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속에, 쉽게 내리지 못하는 판단 속에, 오래 기다릴 줄 아는 마음속에, 이미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의 하루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바카라이 사라진 뒤에도 바카라의 감각은 남는다.
오래된 페이지를 넘기던 손의 움직임, 문장을 읽다가 문득 멈추었던 눈,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바카라을 읽던 저녁의 적막. 그런 것들은 바카라의 내용보다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카라에서 이야기를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바카라을 읽는 동안 자신의 생애가 어떤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배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카라장을 덮으면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손끝에는 종이의 감촉이 남고, 방 안에는 조금 전까지 읽던 문장의 고요가 남는다. 창밖의 세계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아주 조금 달라져 있다.
나는 그 작은 차이를 믿는다.
한 권의 바카라이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다만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을 한 번 더 바라보게 한다면, 누군가의 침묵 앞에서 조금 더 오래 기다리게 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성급하게 밀어내지 않도록 한다면, 그 바카라은 이미 자신의 생애를 마친 것이 아니다.
바카라은 읽는 사람 안에서 다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언젠가 바카라을 전혀 읽지 않는 순간에도 문득 우리를 찾아온다. 손을 뻗어 창문을 닫는 일, 오래된 컵을 씻는 일,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 속에서.
그때 나는 바카라을 펼치지 않았지만, 바카라은 여전히 내 안에서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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