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빛을 기억한다
세상에는 너무 깊어서 이름을 얻지 못한 색들이 있다. 빛이 닿지 않아 검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빛을 통과시킨 끝에 더는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게 된 색. 미드나이트 블랙은 그런 색이었다. 그것은 밤의 표면이 아니라 밤이 도달한 가장 안쪽, 모든 사물의 윤곽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지점에 존재했다.
사람들은 검은색을 부재라고 생각한다. 흰 종이 위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상태, 불이 꺼진 방, 누군가 떠난 뒤에도 체온이 돌아오지 않는 침대. 그러나 나는 검은색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흰색이 모든 빛을 한꺼번에 돌려보내는 동안, 검은색은 그것들을 제 안으로 받아들인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반드시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것들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래 품게 된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그렇고, 용서한 줄 알았으나 어느 날 문득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기억이 그렇다.
검은 사과 한 알을 본 적이 있다. 매끄러운 표면 위로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고, 작은 물방울마다 빛이 갇혀 있었다. 사과는 검었지만 그 위에 맺힌 물은 어둠보다 밝았다.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사과에서는 익어 간다는 말보다 견뎌 왔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붉은 열매가 햇빛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안, 저 열매는 무엇을 견뎌 저토록 깊은 색에 이르렀을까.
검은색은 종종 끝으로 오해받는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 모든 가능성이 소진된 자리, 희망이라는 단어가 제 목소리를 잃는 순간에 사람들은 검은색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나 밤은 낮의 실패가 아니다. 밤은 낮이 보지 못한 것들이 비로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낮에는 너무 작아 보이던 별들이 밤이 되어서야 제 거리를 회복하듯, 어떤 진실은 세상이 밝을수록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것이 선명해야만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믿지만, 때로는 어둠 속에서만 사물의 크기를 제대로 짐작할 수 있다.
나는 한때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싶었다. 사랑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식었는지, 누가 먼저 침묵했고 누가 마지막으로 돌아섰는지. 끝난 일에는 반드시 끝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원인을 알아내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결과를 받아들이면 고통도 제자리를 찾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을 거듭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문장을 다시 읽고, 무심코 지나쳤던 표정을 되짚고, 이미 닫힌 문 앞에서 아직 열쇠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서성였다.
하지만 기억은 어둠 속에서 자라는 식물과 같았다. 빛을 주면 오히려 시들어 버리는 것들이 있었다. 분명했던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졌고, 사소했던 장면은 설명할 수 없는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나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과거의 정확한 모습이 아니라, 과거를 잃어버린 현재의 나를 정당화해 줄 어떤 문장이었다.
사람은 사실을 잃은 뒤에도 이야기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이 사라질수록 이야기에 더 깊이 매달린다. 떠난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 되고, 남겨진 사람은 순결한 사람이 된다.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과거를 편집하고, 그 편집된 과거를 진실이라고 부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드나이트 블랙은 그런 이야기들이 마지막으로 가라앉는 곳인지도 모른다. 더는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지 않아도 되는 곳. 사랑이 진실이었는지 착각이었는지 판결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 애쓰는 대신, 잃어버렸다는 사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상실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극복이라는 말에는 이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숨어 있다. 그러나 한 번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더라도 같은 것이 아니다. 강물은 같은 이름으로 흐르지만 어제의 물을 다시 흘려보내지는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얼마나 넓었는지 깨닫는다. 그 자리는 빈자리로 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를 변형한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던 계절이 어느 해부터 견디기 어려워지고, 아무 의미 없이 듣던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을 데려온다. 상실은 사라지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렇다고 모든 어둠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을 수 있고, 오래 머물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고통을 미화하고 싶지 않다. 견뎌 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상처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반드시 삶을 이해했다는 증거도 아니다. 다만 어둠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시선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세상이 얼마나 밝은가를 묻기보다, 어둠 속에서도 무엇이 끝내 사라지지 않았는가를 묻는 시선이다.
검은 사과 위의 물방울들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중력의 방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그 순간을 유예하고 있었다. 가장 작은 물방울 하나에 방 안의 빛이 맺혔다. 그 빛은 사과를 밝히지 못했다. 사과의 색을 바꾸지도 못했다. 그러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작은 곡면 위에서 자신의 형태를 유지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검은색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검은색은 빛의 반대편에 있는 색이 아니었다. 빛이 도달하고도 끝내 바꾸지 못한 것, 수많은 계절과 손길을 통과한 뒤에도 자기 안의 깊이를 내어주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아주 작은 빛 하나를 받아들일 여백을 남겨 두는 것. 그것이 검은색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색을 잃는다. 한때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던 열정은 어느 날 낡은 사진의 색조가 되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했던 푸른빛은 현실의 먼지에 덮인다. 노란색은 기다림에 지치고, 흰색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여 더는 순수할 수 없게 된다. 색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다른 이름으로 바뀐다. 젊음은 후회가 되고, 사랑은 습관이 되며, 희망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작은 행동 하나로 남는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남는 색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검은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언젠가 모든 색이 제 빛을 잃고 난 뒤에도, 우리가 끝내 버리지 못한 것들이 하나의 어둠을 이룬다면, 그 어둠은 완전한 부재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끝내 하지 못한 말과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이름을 잊은 얼굴과 오래전 누군가가 건네준 사소한 친절이 함께 잠들어 있을 것이다. 서로를 용서하지 못한 시간과, 용서할 이유조차 남지 않은 시간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더는 구별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잃었다고 말하는 대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모든 것을 감추지만, 모든 것을 지우지는 않는다.
창밖이 어두워진다. 유리창에는 방 안의 사물들이 희미하게 떠오르고, 그 뒤편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낮에는 배경에 묻혀 있던 얼굴이 밤에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바깥의 풍경이 사라지자 안쪽의 내가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이 순서를 거꾸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아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검은 사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물방울 하나가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것이 사과의 표면을 따라 흐르다가 아래쪽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나는 이상할 만큼 평온해진다. 물방울은 사과를 바꾸지 못했다. 사과 역시 물방울을 붙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둘은 잠시 서로의 표면에 머물렀다. 그 짧은 접촉을 위해 어느 쪽도 영원을 약속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끝내 붙잡을 수 없는 것과 잠시 같은 표면을 나누는 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일. 그리고 그것이 떠난 뒤에도 자신이 완전히 비어 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늦게 깨닫는 일.
나는 불을 끈다.
어둠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에는 그것을 밀어내지 않는다.
미드나이트 블랙.
그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색이 아니라, 무엇이 남았는지 더는 서둘러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