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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Lemon

빛이 너무 오래 머문 자리

by구시안
레몬 구시안.jpg

빛이 제 뼈를 깎아 만드는 빛깔이 있다,

어둠의 가장 깊은 파문에서 걸어 나온

작고 시퍼런 태양,

나는 그것을 노랑이라 부르지 않고

레몬이라 부른다.


혀끝에 닿기도 전에

눈동자를 먼저 가르는 섬광,

그것은 과육의 입술이 들려주는

지중해의 서늘한 비명.

여름의 타오름을 가두어

단단한 껍질로 봉인한 침묵 속에

얼마나 많은 햇살의 채찍질이 과즙으로 고였던가.


그 칼날 같은 시큼함은

상처받은 영혼의 감각을 깨우는

가장 선명하고 지독한 세례.


레몬의 색은 빛의 번역이 아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기어이 기쁨의 깃발을 뽑아 올린

생(生)의 가장 찬란한 단면이자,

세상이 모두 둔감해졌을 때

단 한 번의 향기로 가슴을 관통하는

가장 눈부신 응시(凝視).


사람은 때때로 견딜 수 없는 것보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빛 때문에 더 오래 아파한다.

레몬색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눈을 감게 만드는 어둠이 있고, 눈을 뜨고 있는 일조차 힘들게 만드는 밝음이 있다. 레몬은 후자에 가까운 색이다. 그것은 어둠을 몰아낼 만큼 밝지만, 그렇다고 어둠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이 선명해진 자리에서 우리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견한다. 벽에 남은 오래된 얼룩, 유리창에 겹쳐진 얼굴,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의 움푹한 자리. 빛은 사물을 드러내지만, 드러난 것들이 반드시 견딜 만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한동안 밝은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슬픔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노란색을 입고, 햇빛이 잘 드는 방을 고르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 사람들은 삶을 긍정하는 법을 일찍 배운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아침을 좋아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어제의 실패를 오늘의 일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일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밝음의 기원을 묻지 않았다. 어쩌면 빛을 좋아하는 데에도 이유가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어둠을 무서워해서 불을 켜고,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서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서 불을 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방 안의 모든 불을 켜 놓은 채 자신이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지조차 잊어버린다.

레몬색은 그 세 번째 사람의 방에 어울리는 빛이었다.


너무 밝아서 사물의 그림자가 짧아지는 방. 숨겨 놓은 것들이 제 모습을 감출 곳을 찾지 못하는 방. 그곳에서는 슬픔조차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방에서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자리에 물건을 놓고, 누군가 다녀간 뒤에는 의자를 원래의 각도로 돌려놓고, 식탁 위에 남은 물방울을 닦아 내던 시간들. 방은 늘 깨끗했지만, 깨끗하다는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정돈된 공간에서는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생각보다 적은 것이 남는다. 컵 하나, 의자 하나, 조금 비뚤어진 커튼. 그런데도 그 사소한 물건들은 한 사람의 부재를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정확하다. 물건들은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대신 그 사람이 머물렀다는 사실을 반복한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아무런 위로도 없이. 컵은 여전히 컵이고 의자는 여전히 의자다. 그 무심함 앞에서 인간만이 자신이 겪은 일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나는 그때부터 정리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동안에는 적어도 무엇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물에는 자리가 있었고, 자리를 잃은 사물은 다시 놓아주면 되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떠난 사람을 기억 속의 원래 자리에 돌려놓을 수 없었고, 이미 달라진 관계를 처음의 모양으로 정돈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방처럼 다루었다. 어지러운 생각을 치우고, 쓸모없어진 기억을 버리고, 더는 필요하지 않은 감정을 밖으로 내놓으면 언젠가 아무 일도 없었던 공간이 만들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방과 모든 일이 지나간 방은 같지 않았다.

레몬색은 그 차이를 감추지 못한다. 노란빛 가운데에는 초록의 흔적이 있고, 그 밝음의 가장자리에는 아주 옅은 흰색이 스며 있다. 완전히 익기 전의 과일과 햇빛에 오래 놓인 종이, 오래된 벽에 번지는 오후의 빛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색. 그것은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쾌함과 신맛, 생기와 피로가 한 표면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나는 그 모순이 좋았다. 어떤 색도 자신의 밝음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안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레몬을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으면 처음에는 향이 먼저 온다. 곧이어 혀의 가장자리를 찌르는 신맛이 번진다. 몸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찡그리지만, 그 순간 입안에 고이는 침은 방금 전까지의 건조함을 씻어 낸다. 나는 그 반응을 생각한다. 고통이 언제나 우리를 파괴하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어떤 자극은 몸을 움츠리게 하면서 동시에 감각을 되살린다. 다만 그것이 고통이므로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맛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낼 필요는 없듯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아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견뎌 낸 일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말한다. 오래 참았으므로 깊어졌다고 하고, 많이 잃었으므로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때때로 우리를 구하지만, 그 의미가 고통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견디지 않아도 되었던 것을 견딘 사람에게까지 그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순간, 위로는 또 하나의 의무가 된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상처가 그 사람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상처는 그저 아팠을 뿐이다. 어떤 시간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레몬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반드시 밝은 사람이 되는 일과 같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밝음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햇빛이 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도 닿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것, 가장 맑은 날에도 창문 너머의 세계에는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것, 눈부신 색을 바라보면서도 사람은 얼마든지 슬플 수 있다는 것. 밝음은 슬픔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노란색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았다.

한때는 노란색이 시작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새벽, 첫 페이지,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조금 늦은 시간을 떠올린다. 하루가 이미 시작되었고, 몇 가지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아침에 세운 계획 가운데 절반도 이루지 못한 오후. 그럼에도 창가에는 빛이 남아 있고, 식탁에는 먹다 남은 빵이 있으며, 오늘 하지 못한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때.


삶은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날은 이미 무언가를 놓친 사람들에게 도착한다. 우리는 늦잠을 잔 채 아침을 맞이하고, 후회하는 말을 한 뒤 저녁을 기다리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다음에도 다음 날의 옷을 골라야 한다. 세상은 우리의 사정이 정리될 때까지 멈추어 주지 않는다. 시계는 움직이고, 계절은 바뀌고, 과일은 익는다. 그 무심한 진행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하루를 살아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제는 그 안에 다른 가능성도 있음을 안다.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해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채로도 새로운 잘못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과거를 용서하지 못했더라도 오늘의 자신을 조금 덜 미워할 수 있다는 것. 삶이 계속된다는 것은 언제나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해가 기울 무렵, 레몬색은 낮과 다른 얼굴을 갖는다. 한낮의 노랑이 사라지고 표면에 얇은 금빛이 남는다. 밝음은 줄어들지만 색은 오히려 깊어진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충분히 오래 바라보면, 처음에 보았던 것과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대상이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빛 아래에서도 사람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어제는 견딜 수 없었던 장면이 오늘은 조금 멀리 놓이고, 어제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풍경이 오늘은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시간은 때로 우리를 낫게 하지만, 때로는 단지 익숙하게 만든다. 잊었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게 하고, 더는 아프지 않다고 믿었던 곳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시 아프게 한다. 다만 시간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감정이 영원히 같은 강도로 머물지는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다른 감정들과 한자리에 놓일 수 있고, 후회는 남아 있더라도 삶 전체를 차지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없애지 않고도 그 감정이 차지하는 자리를 바꿀 수 있다.


레몬 한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껍질에는 작은 구멍들이 있고, 손으로 굴리면 표면의 울퉁불퉁한 감촉이 전해진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노란 덩어리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다. 나는 그 표면을 오래 바라본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위안이 된다. 우리가 멀리서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들에도 가까이에서만 보이는 흠이 있고, 가까이에서 흠이라고 부르는 것들 역시 조금 떨어져 보면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단정한 삶에도 말하지 못한 일이 있고, 가까이에서 보면 어지러운 삶에도 오래 지켜 온 원칙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너무 멀리서 판단하거나, 자신의 삶을 너무 가까이에서 심문한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자신에게는 끝없는 설명을 요구한다. 나는 그 불균형을 조금씩 고쳐 나가고 싶다. 나를 특별히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판단할 때 사용하던 엄격함이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밤이 오기 전, 창가의 빛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레몬색 물건 하나가 그 빛을 받아 잠깐 환해진다. 나는 그 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빛은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고, 내일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사라진다는 이유만으로 그 순간이 불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잠깐 존재했다는 사실과 영원히 남지 않는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나는 한때 오래 남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되는 말, 변하지 않는 관계, 시간이 지나도 처음과 같은 감정.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조금 더 알고 싶다. 한 번의 친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식사, 지나가는 사람에게 건넨 짧은 인사, 누군가의 하루를 아주 조금 덜 힘들게 했던 행동들. 그것들은 세상에 오래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그것을 경험한 순간만큼은 분명히 존재했다. 모든 가치가 지속성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레몬색은 저녁 속에서 천천히 옅어진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더 이상 빛을 붙잡아 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라지는 빛을 사라지게 두는 일, 끝난 시간을 끝난 채로 두는 일, 이미 달라진 자신을 처음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하지 않는 일. 그것들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을 더는 붙잡지 않아도 되는지 알게 되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평온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잃어버린 것들이 더 이상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 상태인지 모른다. 지나간 날을 부정하지 않고도 오늘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 곁에 다른 감정을 놓아둘 수 있는 상태.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어두운 구석을 인정하면서도 창문을 열어 빛을 들이는 상태.


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깥의 공기가 들어왔다. 방 안의 물건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고, 오래된 얼룩도 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빛이 빠져나간 자리에 어둠이 들어왔고, 나는 더 이상 그 어둠을 서둘러 몰아내려 하지 않았다.


식탁 위의 레몬은 어둠 속에서 제 색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레몬이 아니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밝음이란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어둠이 돌아와도 자신의 빛을 부정하지 않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아침이 오면, 나는 어제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은 채 창문을 열 것이다. 빛은 다시 들어올 것이고, 방 안의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빛 아래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굳이 빛내거나

무엇을 굳이 색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면 충분한 날이,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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