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이 삶의 일부가 되는 시간
시간의 습작 아래 나는 슬그머니 굳어간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며 창가의 햇살에 더 이상 손사래를 치지 않게 되었을 때, 문득 삶의 한 모퉁이가 조용히 무뎌졌음을 깨닫는다. 처음에 그것은 얼마나 눈부신 경이였던가. 세상의 모든 첫 발자국에는 가슴을 울리는 불협화음이 있었고, 길가에 흘러넘치는 빗물조차 낯선 바다의 소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걸었던 길은 이내 익숙함이라는 침묵으로 덮여버린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내미는 뾰족한 서정들을 보드라운 비단으로 싸매어 감각의 저편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그것은 상처를 건너는 데 가장 아늑한 방패가 되어준다. 날카롭던 실연의 기억도, 한때 밤을 지새우게 했던 슬픔의 서늘함도 익숙해진 세월의 켜 속에서는 한 줄기 가벼운 바람에 불과해진다. 마음은 굳은살을 얻고, 영혼은 피로 없이 하루를 견디는 법을 배운다. 익숙함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연약한 존재가 삶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명한 가장 가슴 아픈 다정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평온의 그늘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는가.
익숙함은 은밀한 마모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감춰진 기적을 잊어버리는 것, 계절이 바뀌며 나무가 내뱉는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 마침내 나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보면서도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되는 것. 만성이 된 풍경 속에서 세계는 그 고유한 색채를 잃고 빛바랜 흑백의 사진으로 고착된다.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더 이상 깊이 소름 돋게 살아있지 않게 된다.
어쩌면 삶의 진정한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우리 안의 무언가가 먼저 익숙함 속에서 사멸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삶이라는 숭고한 시극(詩劇)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처음의 경이'다.
이미 너무나 잘 아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여전히 낯선 우주를 발견하는 일, 매일 밟는 보도블록의 균열 사이에서 피어난 풀 한 포기에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는 일. 익숙해진 모든 것들의 이름을 지우고, 오늘 아침 태어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시들어 가던 영혼은 다시 붉은 피를 내뿜으며 고동치기 시작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영혼이 잠드는 일이고, 다시 눈을 뜨는 것은 익숙함에 균열을 내는 작은 질문 하나에서 출발한다.
타향에서 배운다는 것은 낯선 세계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낯선 세계 안에서도 끝내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거리의 방향과 사람들의 말씨, 신호등이 바뀌는 속도와 저녁이 찾아오는 방식까지.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도 이해되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매번 해석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고, 나는 웃음이 끝나는 지점을 살피다가 한 박자 늦게 입술을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는 같은 시간 속에서도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타향살이는 나의 지도를 바꾸는 일인 줄 알았다.
국경을 넘거나,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거나,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을 더는 매일 부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몸을 옮기는 일.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다. 장소가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곧바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몸은 새로운 거리에 도착했어도 마음은 한동안 떠나온 곳의 문턱을 서성인다. 오래된 습관은 주소를 옮기지 못하고, 기억은 짐 속에 넣어 온 적도 없는데 낯선 방의 가장 깊은 서랍에서 불쑥 발견되곤 한다.
어느 날은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에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줄지어 있었고, 음식들은 내가 알고 있는 음식의 형태를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것을 골랐다. 음식이 나왔을 때 첫입은 낯설었다. 혀끝에서 생소한 향이 일었고, 씹을수록 내가 알지 못하는 땅의 기후와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씩 번져 나오는 듯했다. 맛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질적이었고, 싫다고 밀어내기에는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맛이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먹었다.
사람은 참 이상한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닮았는지를 살피고, 다음에는 다른 점을 견디며, 마침내 어느 순간에는 그 차이 자체를 하나의 맛으로 받아들인다. 처음부터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몇 번이고 마주치는 동안 거부할 이유가 조금씩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낯선 음식 앞에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문장이라는 것을, 한 끼의 식사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타향에서의 하루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흘렀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들이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자주 지나던 모퉁이의 빵집에서는 어느 시간에 빵이 가장 따뜻한지 알게 되었고, 버스 기사의 무뚝뚝한 인사에는 나름의 친절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이 우산을 기울이는 방향까지 눈에 들어왔다. 계절은 여전히 낯선 이름으로 찾아왔지만, 그 계절이 남기고 가는 냄새만큼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나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일의 다른 이름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외로움은 언제나 가장 평범한 순간에 찾아왔다. 계산대 앞에서 고향의 억양을 우연히 들었을 때, 길가에 놓인 과일의 색이 오래전 집 앞 시장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을 때, 저녁 무렵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문득 낯설게 보였을 때.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비로소 실감했다. 사람은 멀리 떠나야만 자신이 무엇을 두고 왔는지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을 때에는 배경에 불과했던 것들이 거리를 얻는 순간 선명한 윤곽을 드러낸다. 늘 듣던 말투, 무심히 지나쳤던 밥 냄새,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숟가락 하나까지. 잃어버린 뒤에야 사물들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마음의 크기를 증명한다.
무언가에 지쳐 떠나 왔음에도, 나는 가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인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움은 반드시 귀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떤 날에는 돌아가더라도 이미 예전의 내가 그곳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떠나온 동안 고향도 변했을 것이고, 그곳에 남겨 둔 사람들의 시간도 나 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기억 속의 장소는 언제나 현재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실제의 사람들은 기억보다 복잡하다. 그러므로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를 되찾는 일이 아니라, 과거가 더 이상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떠나온 곳과 살아가는 곳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이었고, 저곳으로 돌아가면 돌아온 사람이 되어 있을 터였다. 떠난 사람에게는 그런 이상한 중간 지대가 생긴다. 두 세계를 모두 알게 되었으나 어느 한쪽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자리. 처음에는 그곳이 결핍처럼 느껴졌다.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어디에도 깊이 닿지 못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뿌리가 하나의 땅에만 닿아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사람의 마음도 한 곳에만 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떠나온 곳은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었고, 내가 살아가는 곳은 매일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두 장소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을 잃지 않았기에 다른 한쪽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고향의 눈으로 타향을 보았고, 타향에서 배운 눈으로 고향을 다시 떠올렸다. 그 사이에서 세상은 내가 떠나오기 전보다 조금 더 넓어져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처음에는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거리에서 고향의 길을 찾고, 낯선 음식에서 기억 속의 맛을 발견하며, 타인의 말 속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문장을 찾아내는 일. 그러나 그것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기보다 세계를 내게 맞추려는 노력에 가까웠다. 내가 진정으로 익숙해진 것은 이곳이 고향과 닮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끝내 닮지 않는 것들을 그대로 두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떤 맛은 여전히 낯설었다. 어떤 말은 끝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침묵은 아무리 오래 곁에 있어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들을 더 이상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그 곁에 머물고, 내일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잠자리에 들며, 언젠가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오늘의 저녁을 준비한다.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함께 머무르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날도 나는 같은 식당에 앉아 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처음 그 음식을 먹었을 때 느꼈던 낯선 향은 이제 식탁에 놓이기 전부터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첫입을 삼키고 나서 나는 문득 그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오래 기다려 온 깨달음이 찾아왔다는 신호도, 새로운 삶이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선언도 없었다. 그저 음식은 따뜻했고, 창밖에는 사람들이 지나갔으며, 나는 배가 고팠고, 식사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쩌면 사람이 타향에서 견뎌야 하는 가장 긴 시간은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낯선 것이 더 이상 특별히 낯설지 않은 순간.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날이 아니라, 외로움이 있는 채로도 밥을 먹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이곳에서의 삶을 더 이상 임시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언젠가 떠날 가능성 때문에 오늘을 유예하지 않게 되는 순간.
나는 그제야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실감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수정하는 일이다. 한때는 절대로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맛을 다시 입에 넣어 보는 일,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의 표정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 새로운 계절의 창문을 여는 일. 우리는 그렇게 자신이 믿어 온 세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힌다. 그 과정에서 잃는 것도 있겠지만, 잃었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감각이 자라나기도 한다.
타향살이는 결국 낯선 땅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먹이고 재우는 일인지 모른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 이 하루를 살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익숙한 위로가 없는 곳에서도 삶의 가장 작은 동작들을 반복하는 일. 아침에 눈을 뜨고, 물을 끓이고,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저녁이 오면 돌아갈 방의 불을 켜는 일. 그 사소한 반복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내가 낯선 곳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 안의 세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이전에는 하나의 맛만을 정답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여러 맛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안다. 이전에는 고향을 떠나면 고향을 잃는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사랑했던 장소가 더 이상 나를 붙들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안에서도 기꺼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저녁이 깊어지고 식당의 조명이 하나둘 켜졌다. 나는 빈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릇 바닥에는 마지막 국물 몇 방울이 남아 있었고, 창문에는 실내의 불빛과 거리의 어둠이 겹쳐 비쳤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이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잠시 머물다 떠날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떤 장소는 익숙해진 뒤에야 비로소 그곳이 얼마나 낯선 세계였는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그 낯섦을 통과한 뒤에야 자신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을.
계산을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걸었다. 저녁의 냄새가 골목마다 달랐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은 여전히 내게 완전히 속하지 않은 언어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그 모든 것의 바깥에 서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타향이란 고향이 아닌 곳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배우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낯선 방의 불을 끄고 잠들었다. 창밖에서는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도시의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깨우는 소음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곳에서도 밤이 오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누군가는 저녁을 먹고, 누군가는 내일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내일도 이곳에서 배가 고플 것이고, 나는 다시 무언가를 먹을 것이다. 어쩌면 여전히 낯선 맛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낯섦이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낯섦이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못하는 일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