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달아서 슬픈 것들

행복이라고 믿었던 순간들의 뒷면

by구시안
구시안 독일 뮌헨.png


우유빛 커튼이 거실을 가득 채우던 오후 그 빛이 마당의 가시덤불을 지우고 있다고 믿었다.


소파에 홀로 누워 체온을 재던 시간은 세계의 모든 사금이 몫으로 가라앉는 순결한 밀물이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손끝에 닿던 온기가 오래도록 굳지 않을 석고처럼 든든했다, 그러나 슬픔은 언제나 소리 없이 방문의 나사를 풀고 스며드는 법, 열어젖힌 창틈으로 들이닥친 저녁 공기는 데워둔 안식의 마구간이 사실은 바람이 잠시 머물다 가는 허름한 외양간이었음을 일깨웠다.


빛이 닿지 않는 가구의 뒷면마다 먼지는 치밀한 서명처럼 쌓여 있었고 웃으며 삼킨 과일의 단맛 속엔 언제나 검은 씨앗이 서늘하게 숨어 허기를 키우고 있었다.


빛의 이면은 그런 것이었다.


가장 눈부신 순간이란 어쩌면 가장 깊은 어둠이 코앞까지 밀려와 눈을 멀게 한 일시적 착란에 불과했던가. 황혼이 붉게 젖어들며 집 안의 모든 모서리가 날을 세울 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품에 안고 있던 온기란 사라질 것들이 남기고 간 가장 무거운 유서라는 것을.


당분의 무덤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상에는 너무 달아서 목이 메는 것들이 있다. 입안에 넣는 순간부터 혀의 모든 미각이 곤두박질치며 기쁨과 서러움을 동시에 배달하는 질감. 그것은 설탕이 아니라 설탕이 되기 직전의 사탕수수 유액처럼 끈질기고 아린, 삶의 가장 무른 뒷모습이다.


시장 골목 구석에서 마주친 늙은 과일 장수의 대봉감을 기억한다.

껍질이 터지기 직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진물과 단내를 흘리던 그 붉고 물컹한 주머니들. 장수는 그것들을 ‘홍시’라 불렀으나, 내 눈에는 그것이 오랫동안 고여 있던 눈물이 굳어 붉은 과육이 된 형상처럼 보였다. 껍질을 벗기자마자 혀끝에 닿는 감미는 너무 깊고 아득해서, 문득 내가 삼키고 있는 것이 달콤함인지 아니면 시간의 과숙(過熟)한 부패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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