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라지만 그것이 작은 기쁨이었다
그 흔한 사랑에 빠져 열애 중이었던, 짧고 굵었던 달콤함처럼.
이별이 지나가고 나면 입안에 오래 남는 것은 씁쓸한 맛이었다. 사랑의 모든 순간이 달콤했던 것은 아니며, 살아가며 마주해야 하는 것들 또한 늘 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씁쓸함을 지우기 위해 억지로 설탕을 타고 싶지는 않았다. 삶이 건네는 쓴맛이라면 그것 또한 그대로 삼켜볼 만한 것이었다. 어쩌면 작은 기쁨의 밀도란, 쓴맛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쓴맛까지 온전히 지나온 뒤에야 알게 되는 단맛인지도 모른다.
흔히 거대한 성취의 파도가 삶을 완전히 뒤덮을 때 행복이 도래한다고 믿는다. 삶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성공, 오랜 목마름을 한 번에 적시는 극적인 환희만이 구원의 형식인 마냥, 나는 일상의 고요를 방치하고 비워둔다. 그러나 시간의 현미경을 들고 스스로 나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삶의 실질적인 지탱은 폭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미세한 입자들의 침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나는 ‘작은 기쁨의 밀도’라 부르고 싶다.
기쁨은 넓이로 오지 않고 밀도로 온다. 늦잠에서 깬 주말 아침, 머리맡에 스며드는 미지근한 햇살의 결이나, 오래된 바카라장을 넘길 때 문득 코끝을 스치는 종이와 먼지의 묵은 향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 한 숟가락이 목을 넘어갈 때의 안온함. 이런 것들은 너무 사소해서 눈치채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허기를 채우는 가장 진정한 양식이다. 비중 없는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마음의 비중, 즉 밀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창가에 오래 머문 햇빛 한 조각이
내 손등을 데우고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잘 익은 과일의 단맛,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익숙한 얼굴.
그러나 삶은 어쩌면
그런 것들의 무게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기쁨은 가볍지 않다.
말없이 쌓인 하루의 바닥에서
끝내 나를 일으키는 것은
늘 그런 것들이었다.
현대인은 삶을 소비하는 데 능숙하지만, 그 파편들을 음미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매고, 그럴수록 일상의 결은 더욱 헐거워진다. 거대한 기쁨만을 좇는 삶은 화려하지만 텅 빈 온실과 같다. 바람이 불면 쉽게 부러지는 가지처럼, 결정적인 상실의 순간에 무력하게 무너지고 만다. 반면, 보잘것없는 순간 속에 숨겨진 기쁨의 입자들을 포착해 내는 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퇴근길 편의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의 부드러운 눈빛에서도, 찬 바람 속을 걸어 돌아온 집 문을 열었을 때의 훈기에서도 생의 충만함을 길어 올린다.
결국 삶의 무게란 불행의 총합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얼마나 촘촘하게 기쁨을 직조해 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주 미세하고 여린 기쁨들이 마음의 틈새를 메워갈 때, 내면은 단단하고 깊어진다는 사실을 달콤함 뒤에 배우게 되는 아이러니는 무엇일까.
거창한 환호가 멎은 자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시콜콜한 시간 속에서 조용히 여물어가는 그 기밀하고도 눈부신 밀도를, 오늘도 나는 가만히 그 품에 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