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이 지나간 자리의 온도
단것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가장 화려하고 무해했던 계절 하나를 문고본의 바카라장 사이에 조용히 갈무리하는 일과 같다. 청춘의 언저리에서 우리가 탐닉했던 모든 자극. 설탕이 가라앉은 바닥의 끈적함, 인공적인 바닐라 향이 혀끝을 맴돌던 기분 좋은 어지러움은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부유하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느 늦은 오후 홀로 맞이한 침묵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설탕을 지운 블랙커피는 냉혹할 정도로 투명하다. 그 속에는 쓴맛이라는 생의 본질적인 골조만이 옹골차게 남아, 마시는 이의 내면을 가감 없이 비추어낸다. 단맛이 거쳐간 자리에 남는 것은 기분 좋은 도취가 아니라, 지독히도 솔직한 고독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극단의 쓴맛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된다. 식어버린 머그잔의 테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미지근한 온기가, 세상의 그 어떤 감언이설보다 진실하다는 것을.
기억이란 종종 이 오래된 커피의 온도와 닮아 있다.
끓어오를 때는 그 뜨거움에 델까 두려워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차갑게 식어버린 후에야 그 결핍을 안타까워하며 두 손으로 감싸 쥐게 되는 것. 혀끝을 아리게 하던 단맛이 사라진 자리엔, 삶의 쌉싸름한 연대기와 깊고 푸른 품위가 고요히 가라앉는다.
사람은 모두 조금씩 달콤함을 덜 어내며 어른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런 기교도 섞이지 않은 쓴 물 한 모금 속에서, 세상이 건네는 가장 깊고 오래된 위로를 배운다.
커피는 식어가면서 오래된 것들의 냄새를 낸다.
처음에는 뜨겁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했던 것들이 있다.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으면 손끝까지 온기가 번졌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오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착각을 했다. 그때의 우리는 커피가 식는 속도보다 빠르게 서로에게 말을 건넸고, 아무 의미 없이 웃었으며, 다음 날도 같은 자리에 앉을 것처럼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커피는 아무 말 없이 식는다.
식는다는 것은 온도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뜨거웠던 시간의 모양이 조금씩 무너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입술을 데일만큼 선명했던 것이 이제는 미지근한 쓴맛으로 남아 있다. 설탕을 한 스푼 넣어도 달아지지 않는다. 이미 식어버린 것에는 단맛조차 오래 머물지 못한다.
나는 오래된 커피를 마실 때마다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사람도 커피와 닮아서 처음에는 뜨겁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이고, 늦은 밤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하루가 전부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정이라고 부르며, 더 오래 지나면 그저 한때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름이 무엇이었든 결국 남는 것은 온도다.
얼마나 뜨거웠는지, 얼마나 오래 식지 않았는지, 그리고 식어버린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그 온도를 기억했는지.
어쩌면 기억이라는 것은 식어버린 커피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잔을 비우지 않은 채 바카라상 한쪽에 두고, 몇 시간 뒤 다시 바라보는 것. 이미 마실 수 없을 만큼 식어버린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그 안에 커피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그 커피를 마시던 사람이 아직 내 안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식은 커피를 그대로 마신다.
쓴맛이 오래 입안에 남는다.
뜨거울 때는 몰랐던 맛이다.
모든 것은 식으면서 본래의 맛을 드러낸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며 알게 되었다.
사람도, 사랑도, 젊음도, 한때의 꿈도 그렇다. 뜨거울 때는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없다. 어떤 첨가물도 없는 그 온도에 맛을 내기 위해 탈 것은 필요가 없었다.
젊은 날의 설탕 속에서는 감정에 취해 있었고, 미래를 믿었으며, 영원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 온도가 내려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커피가 식는 것을 서운해하지 않는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 대로 좋았고, 식은 것은 식은 대로 오래 남는다.
다만 오래된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킬 때면 생각한다.
지금의 온도도 제법 괜찮다고.
그리고 빈 잔을 한참 바라본다.
설탕처럼 달콤했던 시간은 이미 녹아 사라졌는데,
이상하게도 쓴맛만은 끝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왠지 더 좋아졌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