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건디 : burgundy

가장 오래된 눈물이 굳어 만든 색

by구시안
639ddceb-2858-466b-9123-8fc42a1d7c6b.png


가장 오래된 상처는 붉은색을 닮지 않았다.

그것은 한때 살이었던 것이 공기와 만나고, 계절의 수많은 결을 통과하며 스스로의 열기를 식힌 끝에 도달한 어떤 침묵의 명칭에 가깝다. 선홍빛의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고인 검고 묵직한 물 웅덩이, 혹은 마르지 않은 멍의 이면. 나는 그것을 버건디라 불렀다.


이름 없는 유령들이 머무는 방에는 언제나 이 색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일이 없으므로, 오직 남이 남긴 빛을 삼켜야만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후 네 시의 비스듬한 볕이 낡은 벨벳 커튼의 올 사이로 스며들 때, 방 안의 공기는 한순간에 무거워진다. 그건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중력의 문제다. 공기 중에 떠돌던 가벼운 명랑함이 그 짙은 붉음의 인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마루 밑으로 속절없이 침전되는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자각(自覺). 나의 시들지 않는 문학이라는 꽃잎을 위해. brunch + 351日.

1,68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9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1화페인즈 그레이: Payne’s G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