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즈 그레이: Payne’s Gray

말하지 못한 것들이 가라앉는 색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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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가장 먼저 눈멀고 어둠이 허리를 펴는 시각, 물컵 속에서 번져나간 몇 방울의 검정과 인디고가 서로의 목을 끌어안고 침전하는 법을 배울 때, 세계는 하나의 진짜 색을 얻는다. 그것은 찬란했던 여름의 엽록소가 남김없이 썩어 문드러진 자리나, 맹렬하게 타오르던 숯이 스스로를 부정하며 겨우 남긴 재의 온도가 아니다. 윌리엄 페인이라는 화가가 백색의 도화지 위에 세상의 모든 슬픔을 한 번에 쏟아붓지 않으려 타협한 끝에 찾아낸, 푸름을 품은 유령이자 가장 무거운 침묵의 색.


그 색은 늘 사물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녹슨 철제 난간의 녹아내린 이음새, 오래된 외투의 팔꿈치가 닳아 번들거리는 면목, 혹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머금은 차가운 습기 속에서 페인즈 그레이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것은 검정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기억을 품고 있고, 회색이라 이름 붙이기엔 너무 깊은 슬픔이 가라앉아 있어서, 단 한 번도 세상의 중심에 서 본 적 없는 자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견뎌내는 긴긴 겨울밤의 옹이와 같다.


우리가 우리의 가장 치명적인 비밀을 발설하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 때 흘러나오는 피의 색이 결국 저러할 것인가. 고요는 소리가 없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소리를 삼키고도 저토록 짙푸른 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를 압도한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부재를 애도하며 창가에 적어 내려간 편지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 펜 끝에서 묻어나와 종이의 결을 따라 스며드는 저 서늘한 결빙의 무게를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결국 모든 찬란한 채도가 스스로의 화려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져갈 때, 도화지의 밑바닥에서 고개를 드는 것은 언제나 이 창백하고도 완벽한 심연이다. 빛을 등진 채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그늘의 문장으로, 페인즈 그레이는 오늘도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는 세계의 진짜 밑낯을 그려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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