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처음 만난 우리 사이에
이야기가 놓이면
시나브로 다리가 된다
아무리 낯선 사이에라도
흔하디 흔한 작은 이야기 하나 놓으면
정겨운 징검다리가 된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딛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다리가 놓이면 우린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숱한 찰나의 익명이 아닌
어린 왕자의 장미가 된다
긴긴밤이 되고 여우가 되고
별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다가 된다
그렇다고 너무 성급히
건너가려 하지 않기를
어서 건너오라고 재촉하지 말기를
혹여라도 긴긴 서사의 단 한 장면만으로
전부를 알았다고 쉬이 오해하지 않기를
조금 천천히 조심조심 건너가기를
좁고 뾰족한 것보다는 조금 넓고 평평한 모양을 골라
자연스레 넌지시 건네기를
그리고는 잠시 떨어져
기다려 주기를